1월 172007
 

  모든 것을 유예시키는 강력한 근거가 군생활 2년이라는데, 저는 늘 그것에 거스르고 싶었습니다. 같은 시간과 공간을 살았던 제 삶 속 사람들과 점점 멀어져간다는 느낌은 종종 꿈에서까지 저를 괴롭혔습니다. 함께 먹고 마시며 즐겼던 지적놀음, 끝이 보이지 않던 시간, 돈, 사랑, 사상, 욕심, 고민 같은 것들을 떠나오기가 싫었습니다. 바깥에 전화나 편지로 연락을 할 때면, 다들 저 없이도 때론 웃고 울며 함께 하면서 그렇게 무던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게만 들리지 않았습니다. ‘내 몫도 없지 않은데-‘ 시간이 저한테만 멈춘것도 아니고, 사실 저도 함께 같은 하늘을 이고 있는데도 그냥, 이 큰 게임에서 퇴장당한 것 같았죠, 저만. 이런 낙담 속에서, 시킨대로 움직이는 신병생활은 하루도 채 못 되어 포기했습니다. 무진 애를 써도 울타리 밖 사람들과 늘 함께 놀아보려는 생각은 잘못이란 걸 알았습니다. 밖에서처럼 진실되게 사람을 대하고, 일하려 애썼습니다. 그랬더니 개념없는 놈이 되고, 그럼 조금씩 타협하고, 그러다보니 오늘이 됐습니다. 많은 사람을 잊었고 저 역시 잊혀졌습니다. 대신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좋은 놈이든 나쁜 놈이든요.



 
  우리집(생활관)과 직장(사무실)에서, 틈나는대로 책을 읽던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읽어야겠다는 마음만 있을 뿐 막상 펼치지 못했던 책들을 집히는대로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마음에 드는 구절, 폼 잡는 데 써 먹을만한 문구가 나오면 메모도 했습니다.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In omnibus requiem quaesivi, et nusquam inveni nisi in angulo cum libro – Thomas Akempis. <장미의 이름>을 읽다 발견한 글귀처럼 그저 무던히 읽었습니다. 괴로워도 갑갑해도, 시끄럽든 조용하든 읽었습니다. 바쁠 때는 틈나는대로 읽고, 딱히 할 게 없어서, 스트레스 받아서, 컨디션이 좋아서 등 온갖 이유로 어쨌든 읽었습니다. 시간 때우기로 읽었는데, 그런 용도라고 하기엔 주옥같은 책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책마을 사람들 덕분이겠지요. 그래도 100권을 못 채운 거 같은데, 내용은 커녕 제목조차 다 기억나지 않고 그런데 이제 끝이라니 퍽 섭섭합니다.
 
  나가면 저는 당분간 책을 읽지 않을 겁니다. 습관 때문에 무언가 계속 읽더라도, 이 곳에서처럼 아무 책이나 펼쳐서 쉽고 마음편히, 진득하게 읽지는 않을 거에요. 책의 크기, 무게, 표지, 출판사, 차례, 머리말, 수입인지를 찬찬히 살피며 음미하는 것도 자의반타의반 관두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요. 머릿 속에 너무 많은 생각들이 뒤섞여 있고 늘 결론도 없이 정돈되지 않은 채로 그걸 묵혀두다보니까, 먹긴 많이 먹되 늘상 더부룩한 배를 끌고 다니며 똥 참아 변비걸린 것 마냥 기분이 더럽습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좀 추스려보렵니다. 어른들이 너는 지금 노는건지 공부하는건지 분간이 잘 안된다고 꾸지람해도 굴하지 않고 주린 호기심을 채워가며, 재밌게 놀아야겠습니다. 아 진짜 놀고 싶었는데, 후, 마침내 전역을 하긴 하네요!


 



   책마을, 마을 사람들 때문에 정말 즐거웠어요. 옛 주민들 모두가 그렇지만, 지금 접속하는 분들만 떠올려보아도 기분이 좋아요.
 
  …박진우랑 같이 액면가 높은 대문자 METAL 뭔가 문화-취미생활에 아주 박학다식한 거 같은 조주현, 옛날엔 조주현이랑 헷갈렸는데 전부터 PC통신 얘기랑 유전자개조, 생물학 얘기로 기억나는, 아무튼 다시 돌아온 조용준, 후임한테 ‘장난전화’ 읽히고, 종민이 싸이질하면 김지민 정말 귀여울까? 하고 미니홈피 훔쳐봤는데, 염장질해도 사랑스러운 김지민, 김청하-이승일 자유 이야기 때문에 보급창에 접속했던 그 때, 정모를 앞두고, 실제로 볼 생각에 설레던 마음, 이 사람들 보면 난 정말 바보같아서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솟아나, 아무튼 승일이형이 나중에 밥은 잘 사주겠지. 숱한 전화통화, 전부 형이 걸어줬는데, 캐츠비보라며 지저분한 대학연애얘기도 하고, 그러니까 글 진짜 잘 쓰는 영기형, 또 책 보내줘서 고마운, 항문섹스를 좋아하는 귀여운 가출미소녀 현동이, 돌아보면 현동이 독서후기가 참 좋은데, 악마 주영준말고 천사같은 이영준씨, 우리 같은 학교던가요?. 같이 성인사업 하고 싶은 박재탁탁탁, 짬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기다리기 힘들어요, 정우씨의 시랑 시같은 산문이랑 요즘 방공호의 낙인데, 늘 좋은정보 알려주는 황민우씨도 안녕, 책 읽고 싶을 때 참고할 리스트 문의해도 괜찮겠죠?…
 
  
    행복을 과장하고 싶을 때는 이미 행복을 통과한 후라죠. 여기만큼 아니 여기보다 엿 같은 현실을 치열히 살아가겠다는 각오는 굳이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2년 동안 느낀 휴식감도 밖에서 흔히 부딪히는 절정감 못지 않게 소중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긴장 뒤엔 반드시 이완이 필요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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