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2006
 

만약 누군가가 성매매에 반대한다면, 그는 천박한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 등 적어도 현 시대의 천박한 ‘경제체제’에도 반대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우리 시대 도처에서 ‘성’은 거래되고 있다. 우리는 추잡한 욕망(매춘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말하는)에 이끌려 지갑을 연다. 돈을 잘 버는 것이 최고의 미덕인 세상에서는, 잘 팔리는 사람이 존경받기 마련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자신도 ‘팔리기 위해’ 노력하고, 사회는 그런 노력을 격려한다.


예술과 외설이 한 끗 차이라지만 그 결과로 어떤 이는 인간본연의 욕망을 표현한 위대한 예술가가 되고, 다른 이는 옥살이를 한다. 성매매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성매매에 만약 경제적 계급의 잣대를 적용한다면, 부자가 하면 로맨스고 빈자가 하면 불륜인 셈이다. 하룻밤 정사를 위해서, 부자는 자신 뿐만 아니라 상대를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대접한다. 산해진미와 좋은 술, 값비싼 선물, 고풍스럽다 못해 성스럽기까지 한 실내 인테리어가 총동원된다. 이런 식으로 몇 시간 내에, 길어야 달포 내에 부자는 상대를 구매할 수 있다.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그들자신의 행위를 “도덕률에 어긋나는 비극적 사랑”으로 포장할 뿐, 결코 성매매라는 자각에 따른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윤락녀는 복잡다양하게 전개되는 ‘성매매’를 마치 오캄의 면도날과 같이 가장 단순하고 명확한, 본질적인 형태로 드러낼 뿐이다.  돈이 없고, 그래서 시간도 없는 구매자는 윤락녀를 찾을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찾을 수 밖에 없다.”는 언제나 공격당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현 시대 남성의 성욕은 사회에 의해(잘못된 매체와 교육 등) 호도되었고, 인본주의의 관점에서는 설령 그런 본능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철저히 통제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헛점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과 유리된 공허한 주장만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장차 비교적 고액연봉자가 되고 비교적 정치적 발언권을 확보할 대학생들–그 중 특히 여성의 시각에서, 현실의 성매매는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되는 더러운 행위로 인식되기 쉬운 것 같다. 우리는 흔히 ‘문화비’를 지불하며 ‘세미나실’을 빌려 음료를 빨며 책 속에만 존재하는, 허공에 뜬 남의 인권을 걱정을 하는데 바쁘다. 자기 자신부터 돌아볼 일이다. 돈 없는 애인에 대한 친구의 푸념에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헤어지라고 대꾸하지는 않는지, 쌔끈한 마누라를 얻기 위해 오늘도 몸값을 끌어올리려 어떤 짓도 마다않고 발버둥치고 있진 않은지. 냉철하게 돌아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우리가 욕하는 더러운 성매매와 쏙 빼닮았다.


그렇다면 과제는 보다 명확해졌다. 만약 앎과 삶을 일치시켜 자기긍정 속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한다. “원래 자발적 성매매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우스꽝스러운 가정은, 우리 사회가 견지하는 경제체제와 정치체제와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분노와 같은 감정에 의해) 생성되고 있다. 위선의 탈을 벗기위해, 사회의 변혁을 도모해야 할 것인지, 자기 자신의 그릇된 윤리관념을 깨부수어야할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에 푹 빠져있는 나는, 비겁해보일지언정 후자를 택했다. 나는 인간의 숭고함이 지켜져야만 하는 절대적 도덕기준의 존재나 그것의 이행에서 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필요하다면 도덕률으로부터 벗어나 비난을 무릎쓰고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데 있다고 본다.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히 여기는 것들에 대해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성매매는 왜 윤리적이지 못한가? 성매매가 생계수단인 사람들의 성매매를 금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심각한 인권탄압이고, 나아가 구매를 하는 사람들의 자유도 침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공공선(국민건강 따위)을 위해서 금지하는 것이라면 공창제를 도입하든지 해서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야하는 것 아닌가.


나는 위선적인 사람들이 들이미는 “여성의 인권보호”와 같은 성매매금지법의 근거에는 납득하지 못 하겠다. 민주주의국가에서 살아가는 일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금지한다”라고 해야 차라리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또래 친구들이 산업현장 구석구석의 생산라인에서 박봉에 지리한 노동을 하며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당장은 학생이고 미래에도 성평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일 위험이 적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너무나도 안일한 양성평등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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