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042006
 



 오래전부터 읽다보면 늘 마음이 불편해지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진중권도 그렇고, 김규항도 그렇다. 처음에는 세상의 진실을 알아갈수록 염세주의에 빠져드는 데서 오는 심리적 거부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다 다들 무슨 얘길 하는지 좀 알겠다는 자만이 찾아왔을 때는 벌써 지겨워진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즈음에, 점심 때면 늘 같이 밥을 먹던 친구의 말은 또 다른 생각을 하게 했다.


“같은 얘기 좀 그만해, 너 좀 세뇌당한거 같아.”


니가 뭘 알아. 너 임마 결국 신자유주의 교육의 희생물이야. 아 이 갑갑한 놈 보게. 우리가 지금 거창하게 카오스이론을 얘기하고, 인간의 자유의지가 있을까 떠들고 있지만, 결국 학점의 노예일 뿐이잖아. 그리고 우정이고 사랑타령이건간에 다 좋다 이거야. 그런데 결국 그 감정의 진실성을 돈으로 유지시키는 거 아냐? 니가 아무리 그 여자의 웃는 모습에 ‘순수’하게 꽂혔다 쳐. 아웃백에가서 밥 먹으면 그 여잔 더 잘 웃지. 게다가 우린 그 돈을 과외로 충당하기까지 해. 땅 파면 돈 나오는 셈이지, 이런 마당에 이 지겨운 얘기를 안 할 수가 있을까?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데, 너도. 나도.


아마도 ‘세뇌’란 말에 자존심이 발끈한 듯한 내가 그렇게 열을 올렸겠지만, 정말 세뇌당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놈에게 불편한 말을 하는 친구가 되버렸다. 사실 우리는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있는 것을 일치시키는 것도 버거웠다. 하물며 누군가 그 ‘하고 싶은 것’에 사회적 선악의 잣대를 들이대는데 납득 여부를 떠나 마음이 편할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불편한 마음을 감수하고서라도 꿋꿋이 살아가는 걸 서로 대견하다 느낄 무렵, 나는 군인이었고, 친구는 단과대의 부학생회장이 됐다.


시간이 많이 흘러, 이번에 김규항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여기저기 써 낸 글과 블로그에 올렸음직한 일기들을 묶어낸 <나는 왜 불온한가>을 읽을 때도 그랬다. 거의 씨네21에 실렸던 글들, 그 밖에 한겨레, 노동자의 힘, GQ나 보그 등의 잡지에 실렸던 글을 한 번에 몽땅 읽어대니, PX에서 냉동 이만원어치 먹고나서 뱃속이 질알같은 것처럼 심히 속이 불편했다. 그래선지 화장실에 갈 때 마다 들고가서 읽었더니 변도 잘 나오고해서 참 유용했다. 글 한 꼭지가 길어야 두 세 페이지인 탓이 더 크려나.


그리고 얼마간 우리가 마치 고뇌하는 실천적 지성이라도 된 것 마냥 자랑스러워하고, 대단한 고민을 하는 데 따르는 이 소소한 마음의 불편함이 대수겠냐 생각했던 나에게,


김규항이는 보다 정확하고, 그래선지 몰라도 참 짜증나는 대답을 안겨주고 말았다.


// 제도 지면에 글이나 끼적거리는 일로 사회적 허명을 얻어가는 일이 내 자의식을 건드렸고, 내 글을 제 얼마간의 사회의식을 배설하는 데 사용하는 사람들이 거슬렸고 (중략) 그럼에도 글쓰기를 아예 멈추기 못한 건 내 소박한 불온함 때문이었다. 민주화의 성과가 자본의 차지로 돌아가고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갈수록 희망의 빛이 사라져가는 현실이 만들어 준. 나를 ‘비현실적인 근본주의자’라 말하는 이도 있지만, 나는 모든 사람이 신념과 원칙에 가득 차 살기를 바라는 몽상가는 아니다. 나는 단지 사람들이 제가 사는 세상의 얼개쯤은 알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 이 책의 [머리말] 중에서



“사회의식을 배설하는 데 사용하는 사람들이 거슬렸고”


맞다. 마음이 불편한 건 나나 작가의 정치적 입장과는 관계가 별로 없다, 내가 신념과 원칙이 가득찬 사람이 아닌걸 반성하느라 마음이 불편한 것도 아닌 것 같다. 사실 전에는 분명 그래서 마음이 불편한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난 착한 놈이라 생각했는데. 결국 얼마간의 사회의식을 배설하는 것에 지나지 않은 건가 보다. 원래 마려울 때는 마음이 불편해도 싸고 나면 참 좋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여전히 일 보고 안 닦은 것 처럼 여전히 뒤가 구리다. 굳이 말하자면,


이런 (배설하는) 내가 김규항은 거슬린다고 그러니까 나도 그냥 김규항이 싫고 (똥은 싸야 살 거 아니겠니? 그럼 당신말고 다른 논객 걸 읽으라구? 직접 쓰면 더 좋다구?),


그가 보여주는 우리 사는 세상의 얼개’쯤’에 동의하기도 싫고 (마르크스는 교주가 되는 걸 원치는 않았을거야, 뭐, 넌 예수를 믿는다고?)


기발한 아이디어에 막대한 금전적 보상이 타당한 거라고 오래전부터 믿어온 나를 (지금도 부자가 되고 싶어하니까)


“급진적”이라 말하는 소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호하는 건전한 사람들은 더 싫으니


이를 어쩐담!


-부록 –


/* 사회의식을 배설하는 사람들에게
  깔끔한 뒤처리를 위한 최신 비데! 


  주의- 이 비데는 물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용법- 약, 강 중 적당한 문구를 택해 대충 쾌적하다 생각될 때까지 반복해 읽으세요.
   
    약 – 일반적인 경우 : “노블레스 오블리주 란 말도 있잖아. 역시 나부터, 내가 고민하지 않으면 안 돼, 이런 생각을 하는 난 참 괜찮은 놈이야.”


    강 – 양이 많고 잔뜩 묻었을 경우 : “좋아. 그럼 나는 부르주아나 그 똘마니가 되어서 왕창 착취해서 잘 먹고 잘 살아야겠다. 나 같은 놈이 있어야 혁명이 앞당겨지지 않겠어? 개혁이니 개뼉다귀니 해봐야 다 사기인데, 괜히 지연시키지 말자고, 나도 혁명가야!”



  부작용-


0. 자기가 배설했다는 걸 모르는 경우, 지나친 분노에 젖어 비데를 부수어버릴 수 있습니다.


1. 씻어낼 이물질도 없는데 이 비데들 사용하는 경우, 똥꼬가 찢어져 생명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제대로 프롤레타리아인 경우, 멋진 활동가라는 자아정체성이 완고한 경우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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