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2006
 






0.
 
  늘 그 놈이 그 놈인 그렇고 그런 술자리에서.
  그 날의 화제가 더는 얘깃거리가 안 될 무렵,
  어떤 놈 한 놈이 작업 중인 여자에 대해 주절거리다 옛 여자 얘기까지 씨부리는데
  다들 뾰족한 수가 없어 들어주고 있다보면
  언제나 술 맛과 분위기를 동시에 가라앉히는 한 마디를 듣게 된다.


  근데 닌 뭐 할거냐?


  글쎄. 뭐. 고시볼려고. / 모르겠다. 시시하게는 살기 싫은데. / 미.친. 그러니까 니가 안되는거얌마. / 대충 해. 인생 뭐있어?
  군대나 가야지 /  등드르등등.


  거 뭐 다들 지 얘기든 남 얘기든 뭐라고들 한 마디씩 거드는데. 누군가는 그럴 때 쓰윽 눈치를 보고 있다가 외쳐줘야만 한다.


  야. 됐어 됐어. 마셔! /



  아- 술도 제법 되서 소주 맛이 그리 쓸 리가 없을텐데 왜 이리 쓴 지. 아- 휴우.



1.


  저래놓고 무슨 어젯밤 우리는 인생에 대해 논했다느니, 애꿎게 “맹세”나 “사나이” 같은 낱말에 너무 무거운 의미를 부여하고,
  뭔가에 한번 미쳐보자. 열정이 필요해. 늦지 않았어. 다 똑같애. 를 되뇌여보지만 


  사실 달라질 게 없다. 그럴 수 밖에 없지 뭐.


  알랭 드 보통의 <불안> 은 대략 이런 류의 불안의 속성 – 책에서 얘기하는 불안은 “지위에 대한 불안” – 에 대해, 그 원인이나 해법에 대해서
  그의 다른 책이 대개 그렇듯이, 수 많은 유명 저작을 인용해서 풀어내고 있다.


  차례만 읽어도 내용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차례


정의


원인
  –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


해법
  –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
———–



  경제적 위치가 곧 사회적 지위를 결정지어 버리는 세상에서


  우리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길,인정받기를 원하고 (사랑결핍)
  인정받을 만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겉으로 드러나는 것 – 사치품이나 허례허식-  이라도 그럴싸해 보이려고 안달이 난다. (속물근성)
 
  행복 = 성취 / 욕망   , 행복값이 커지기 위해 성취를 무한정 할 수 없으니 욕망을 줄여야 된다는 그 흔한 그래프랑 비슷한,
 
  자존심 = 성공(노력에 의한) / 잠재력(욕망의 기대수준)  ,  윌리엄 제임스의 이런 그래프에서


  자존심이 상할까봐, 가오 떨어질까보아 항상 전전긍긍 불안해하며 성공하려고 갖은 노력을 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걸 바란다. (기대)
 
  게다가 예전에는 왕이면 왕, 농부는 농부. 부자는 부자고, 거지는 거지지. 쉽게 숙명이라 인정하고 각자들 세상에서 중요한 임무가 있는거라 서로 존중해주는 분위기였다면
  요즘같은 훌륭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사회에선,
 
  낮은 지위는 본인이 무능력해서 그런거고, 왜 무능력하냐면 노력을 안 해서 그런거고,
  심지어 게으르고, 인간이 못 되먹어서, 아예 윤리적으로 나쁜 놈이라 그런게 되버렸다. (능력주의)


  그러니 불안해하며 신경 좀 써서 지금이야 왠만큼 사는데도 앞 날은 한 치앞도 보이지 않는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불확실성)


  우리가 어떻게 불안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2.


  현실을 살아가는 누구나가 느끼는 이 불안의 해법은 저자가 굳이 늘어놓지 않아도 모두가 잘 실천하고 있는 것 같다.


  //철학의 힘을 빌리면 다 초탈했다는 듯이, 쇼펜하우어가 천박해지느니 외로워했던 것 마냥 불안에 맞서 품위를 지킬 수 있다.
  희비극 등 예술작품에 공감하며 그 치유의 힘을 이용하고, 시장경제, 자본주의 같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체제를 욕해도 좋고
  하나님 앞에 모두가 평등한거라 생각해도 좋고, 번잡한 일상을 떠나 보헤미안처럼 살아갈 수도 있다. //


  오히려 지극히 서양의 예와 그림이 소개되어 있으니 공감이 덜 가기만 한다.



  물론 어느 것도 궁극의 해법이 아님을 저자도, 우리도 너무나 잘 안다.
  우리가 어떤 삶이 다른 삶보다 더 성공적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이상, 그런 개인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에서
  “지위”에 대한 불안은 사라질 수가 없으니까.


  다만 돈이면 다 된다는 요즘 우리 세상, 세상이 미쳐버려 대체 뭐가 뭔지 모를 지경에서
  인간이 느끼는 불안의 실체에 대해 짜임새있게 설명한 이 책은
  뭐든 설명받고픈 인간의 근본적 욕망을 충실히 충족해 주고 있다.


3.


  늘 그렇고 그런 술자리가 제한된 지금


  윤은혜를 따라 씨엠쏭을 흥얼거린다.


  “괜찮아~ 잘 될거야-”


  아흑. 자꾸자꾸 따라하게 된다, 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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