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062009
 

  서울에 다시 돌아온 지 5일째다. 좀 정신없이 보내는 것 같다.

  일요일, 대천 바다에서 돌아와 용산역에 도착했을 때 벌써 오후 3시였다. 집에 오자마자 배가고파 근처 식당에서 콩나물국밥을 사먹었다. 전공책과는 별도로 잘 읽지도 않거나 이미 읽었어도 곁에 두어야 마음이 편안한 책들을 정리했다. 인터넷, 전화, TV가 없는 방에서 컴퓨터 조립을 완성하고 잠깐 멍 때리고 있다보니 저녁시간을 넘겼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몇 통했다. 두현이가 신촌에서 여자친구랑 놀다가 헤어지고는, BMW오토바이를 뽐내며 집 앞에 왔고 월드컵경기장을 가보고싶어했다. 그리고는 정처없이 밤길을 달려 일영에 갈 뻔하다가 방향을 틀어 돌아왔다. 실로 포르쉐의 가속력을 지닌 슈퍼오토바이였다. 타 본 오토바이 중에서는 가장 컸고, 빨랐고, 그만큼 좀 무서웠다. 야식으로 크리스터치킨과 맥주를 먹고, PC방에서 잠깐 들러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을 조사했다. 인터넷을 가입하면 현금을 18만원이나 준다니, 지나친 출혈경쟁. 돈도 별로 안 주는 메가패스를 신청했다. 입지가 좋은 내 방에서 메가패스 FTTH는 정말 문자그대로literally 100Mbps(약 12Mbytes/s)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새벽 2시에 인터넷 신청이 되다니, 그 시간에 가입상담을 받고 있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여기는 한국.

  월요일, 두현이는 오토바이로 출근하고 나는 교수님을 만나러 가는 찰나 인터넷 설치기사가 왔다. 오전 11시, 새벽에 전화하고 자고 일어나면 설치, 후덜덜. 간만에 보는 황, 옥사마 등이 너무나 반가웠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황을 졸라 팼다. 개새끼… 황과 함께 Chong과 나눈 얘기는 간단했다. 나는 마지막 학기 RA를 하기로 했고, 수요일에 수강신청점검을 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실험을 도왔고 대학원 신입생들의 스터디에 황과 옥 형과 동행해서 난 신입생 아니라서 그냥 찌그러져 있었다. 끝나고는 셋이서 술. 그 자리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영서가 생각나서 영서를 불러서 또 술.

  화요일, 오전에 TV를 설치했다. 나는 TV를 잘 보지 않는데, 그래도 TV는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기껏 EPL 중계나 보고, 혼자 밥 먹을때 사람 소리나라고 틀어놓곤 하지만 가끔 심심할 때는 꽤 적극적으로 모든 채널을 리뷰하기도 한다. 심지어 TV해악론,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생각에도 공감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사람들도 때로는 TV를 봐야만 한다. 사실 나는 가장, 정말, 절대 지루한 프로그램도 묵묵히 재밌게 볼 수 있는 사람이다. 7000원짜리 기본 아날로그 방송을 신청했는데 그냥 1년 보라고 디지털 방송을 달아줬다. 거대한 셋탑박스와 컴퓨터의 TV카드를 연결하는 기사가 어설펐지만 열심히였다. 소프트웨어 조작은 오히려 내가 도와줘야했다. -_- 컴퓨터로 TV보는 사람이 많진 않겠지. 끝내고나니 듀얼모니터에서 한 쪽에 TV를 띄워놓고 웹 서핑을 하면 시간을 죽이기 딱 좋아 보였다. 그래도 공부를 잘 해야지, 다짐한다. 디지털 방송은 EPG 정보가 매력적이다. 채널을 일일이 돌리지 않아도 편성표를 보고 탐색하는 건 정말 편리하니까. 그렇지만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 어떤 장면에 끌려 머무르는 기회는 줄어들테다.
  점심은 꽃보다남모랑 먹었다. 꽃보다남모는 내가 신입생 때 지어준 별명인데, 내가 싸이월드에 “꽃보다남모”라는 남모 팬클럽도 개설했었다. 여학우들의 가입이 쇄도했었다. 지금도 그 클럽은 남아있지만, 아 이제는 04년에 올라온 최근글만이 쓸쓸하게 페이지를 메우고 있다. 우린 그만큼 늙었다. 꽃보다남자가 인기라는데. 남모는 임고를 준비하느라 매일 학교에 온다. 나는 외국생활과 여행의 무용담을 잔뜩 늘어놓느라 점심을 2시간 동안 먹었다. 아니 다 먹고 안 일어난 거. 파리에서 암스테르담 갈 때 만난 뉴욕사는 귀여운 Molley 와 밤새 마리화나를 했던 거나 에스토니아에서 클럽에서 알몸으로 올라타는 동유럽엘프들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졌던 일… 뭐 이런-_- 남자들의 얘기 따위는 피할 수 없고… 그보다 더 많은 얘기들로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다음주 산타플래닛 모임 여행가서 술 마시며 회포를 풀어야지… 잠깐 지희도 합류했는데 다음주를 기약하며 헤어졌다. 저녁을 향상된 요리솜씨로 직접 해먹었고, 술을 하루 거를 수 있어서 기뻤다.

 수요일, 새벽에 일어나서 랩미팅용 논문을 읽었다. 어젯밤 읽다가 잠 들었는데 깨어보니 10:30 첫 랩미팅이 코앞이었다. 반년만에 전공 저널을 그것도 날림으로 읽으니 머릿 속에 내용이 잘 들어오지도 않고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여전히 잘 통제된 일련의 실험들은 인상깊었다. 꽤 길게, 철저히 하려고 노력했다고 할 수 있는 연구였다. 대망의 첫 랩미팅은, Chong이 아침에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하고 예정됐던 ERP 데모가 연기되는 등으로 좀 어수선했다. 저널에 대한 Chong의 코멘트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결국 이 연구, 그다지 새로울 게 없긴 하지만, 어쨌든 실험방식에 있어서 뇌가 기능적 표상방식으로 작동하는 게 아니냐는 시사점을 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점심은 Chong과 처음 밥을 먹었던 완차이에 단체로 갔다.
 Chong과 개인미팅 주제는 나의 수강신청이었다. 나는 이미 졸업요건을 다 채워버린지 꽤 오래되었지만, 교환학생의 대가로 조기졸업을 신청할 수 없었다. 만약 내가 휴학조차않고 교환학생도 안 가고 달렸다면 지금은 대학원 2학기였을 수 있는데. 1년을 늦춘 것이 잘한 짓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여전히 칼복학 + 1학기로 올해 가을에 졸업하는 나는 제법 성실하게 학부를 쉬지않고 마쳤다고 자위한다. 게다가 이번 학기 4과목만 들으면 연계전공도 이수할 수 있다. 선형대수, 미분적분, 확률통계와 같은 타 과의 과목, 그것도 오랫동안 손을 놓아버른 수학. 이번 학기에는 그런 기초를 다지려 노력할 때이다.
 마침내 오후 데모 때에는 11만원이라는 ERP 캡을 머리가 짧은 내가 써봤고 캡이 머리를 제대로 조이지 못해 센서가 두피에서 이격될 듯한 느낌이 좀 들었다. 이렇게 허접해보이는 앰프가 사천만원이라니… 간만에 만난 지은이는 또 컴퓨터를 손봐달라고 성화였고, 참 괴롭혀주고 싶게 보였다. 신입생 및 RA환영회로 비싼 회도 먹고, 술도 적당히 마셔서 좋았던 날이다. 랩에 대한 설명을 본격적으로 들었고 열심해 해보자는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잊지 말자.

  목요일, 느지막히 일어나 빡옹을 깨워 밥을 사먹었다. 새로운 연애욕에 불타오르는 빡옹에게서 나마저도 설레임을 느꼈다. 이런 감정도 전파가 잘 된다. 봄처녀의 싱숭생숭한 마음을 나도 느껴보고 싶다!  하지만 나에게는 나도 알지 못했고, 종종 간과해버렸던 또는 부인하고 싶은 깊은 사랑의 상처가 있는 것 같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미네르바에서 우연히 야색마를 만난 것도 진짜 반가운 일이다. 이 새끼도 전역을 하는구나… 교정을 거닐 때나 신촌 곳곳에서 여전히 아는 사람들을 자꾸 만나게 된다. 나쁜 짓을 할 수 없는 공간… 횡단보도에서는 내 아들 지훈이가 덴마크 다이어트요법을 손에 쥐고 있지만 벌써 한참은 예쁜 여친과 지나가다 나를 발견하고 반겨줬다. 내일 중국으로 출국한다고! 마주쳐서 다행이다…
  회경이형과 승이랑 저녁을 먹으며 술 한 잔 했다. 재입학 후 전공선택이나 사업얘기, 사회적기업, 오래 전 함께 했던 발표경시대회의 추억 등으로 쉴 새 없이 얘기했다. 형에게는 습관적으로 반대를 하는 나를 보니까 내가 좀 옹졸해졌다는 생각이 확실히 들었다. 한 살 더먹은 만큼 이번 학기에는 말을 아끼고 사회적 화법에도 신경을 좀 써야겠다 싶지만 이런 마음가짐은 항상 내 스타일은 아니다. 그냥 솔직하게 막말하는 게 낫나. 형을 보내고 승이랑 2차를 가서는 학내언론, 진보정치세력의 헛점, 의식 혹은 문화로서의 ‘경제’ 얘기 등을 주제로 신나게 얘기했다. 지난 학기 영준이가 나름 신선한 시도로 펴냈다는 알수없는 책을 승이도 읽어봤더랬다. 학내언론 활성화가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승이 얘기를 들어보니, 내가 너무 순진하게, 다소 말랑말랑해지더라도 일반 학생을 참여시켜 자연스럽게 관심을 고조시키다보면 되지 않겠냐는 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퀄리티의 문제랄지, 원고 청탁의 어려움이 생각보다는 훨씬 컸다. (어떤 교수는 그냥 읽을만한 책 하나 추천하는 A4 한 장짜리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야멸치게 거절했다!) 차라리 독자 타겟을 좁혀놓고 고퀄리티를 유지하면서 점차 저변을 확대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유명 진보인사들의 원고료 얘기가 나오다보니 자연히 얘기가 진보정치세력의 헛점 쪽으로 옮아갔던 기억이 난다. 진중권은 원고청탁 이메일을 읽지도 않았고 홍세화는 얼마. 누구는 얼마. 짤없이 받아가는 얘기를 하다보니 지루할 수 있지만 “진보는 땅 파서 정치하나?” 얘기를 나눴다. 맞다. 진보정치세력이 휴머니즘이라는 핑계로 주먹구구식 경영이나 행정, 비효율, 불성실 심지어는 자기들만의 세계에 갇혀버리는 실책을 범해서는 안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많은 진보집단은 지나치게 아마추어적일 때가 많다. 물론 이것은 규모면에서 서포터가 적고 금전의 차원에서도 영세한 탓이지 진보라는 컨텐츠의 오류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 점을 스스로도 혼동하거나 심지어 그동안 거둔 성과에 대해서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여 좋은 홍보거리를 놓치는 것이 안타깝다. 승이가 자세히 알려준 얘기인데, 가령 한국이 쌀 시장 개방을 안 하고 있는 것이나 의료보험제도 등은 외국의 심지어 기성 경제학연구소들로부터도 꽤 좋은 전략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수년간 시끄러웠던 세계식량위기 문제 속에서도 한국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금요일.. 혜민이랑 현준이랑 밥을 먹었다. 우 둘도 길에서 만났다. 두 우는 또다른 우를 만나러 학교에 가는 길이었다. 조만간 이 우 셋들과도 술자리가 생기겠지. 혜민이는 자타공인 일등신부감이다.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는데, 객관적으로 점수를 내면 일등하긴 할 것 같다. 동기로서 참 자랑스럽다. 하하. 이번 주에 여러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보니 확실히 나는 여전히 꽤 낭만적이거나 충동적이거나 직관적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 주변에서도 나를 깊이 알지 못하면 여기에 잘 동의 못 할 거 같다. 나는 뭔가 소중한 것. 뭔가 로망. 이런 것을 끝끝내 쥐고 있으면서 그걸 보호하려고하다보니 자꾸 무장을 단단히 하는 듯하다. 이를테면 합리적 사고, 현실적인 집요함 따위… 일견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본말이 전도되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이건 한번쯤 돌아볼 문제인 것 같다. 겁이 많아져서 그런건가? 상큼발랄한 마음가짐으로 열정이나 패기를 갖고 정면승부를 펼치기 보다는 자꾸 너무 많은 것들을 한번에 고려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지만 실은, 좀 많이, 궁색한 그런 삶의 방식에 지나치게 치우쳐있지 않은가.

  내일 아침 일찍 동생 면회를 가기 위해 이것저것 많이 샀다. 군용품점이 용산에만 있는 건가… 왜 이 새끼는 양말도 사다달라고 그러지… 어휴…

 
 

  3 Responses to “서울이라기 보다는 다시 찾은 신촌, 학교생활.”

  1. 돌아오셨군요. ㅎㅎ 이것저것 정리하다 들러보았는데, 글이 상당히 생기가 있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군요.

  2. 앗.. 내가 오토바이 타던 시절이 여기있네 ㅎㅎ

 Leave a Reply

You may use these HTML tags and attributes: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