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092006
 

아버지가 한참 짬 안될 때는 잦은 야근으로 함께 저녁을 먹지 못하고, 소소한 반찬이나마 정성을 다해 준비해놓은 어머니는 새침해져서, 한숨쉬시며 먹는 둥 마는 둥. 어린 나는 혼자 맛있다고 냠냠. 더불어 “엄마는 아빠만 좋아해. 아빠가 집에서 저녁 안 먹을땐 맛있는 반찬이 없어!” 이런 무개념의 투정들-


그리고 아버지가 지긋한 중년이 되고, 이제 큰 야망없이 칼퇴근을 하지만, 아들은 타율학습에 사로잡혀 저녁을 함께 하지 못합니다. 학교에서 찐밥을 먹으며 집밥을 그리워하고, 어머니 당신은 그런 아들 챙기느라 침대에 누워서도 자정이 되도록 현관문소리에 귀기울시다가, 문 열어주시며, 저녁 때 꽃게탕했다고, 민재(남동생)가 다 먹으려는거 너 주려고 냄비에 감춰놨다. 속이 꽉 찼드라 야. 맛있어.


그 시절을 회상하는, 지금 같으면, 목이 매여 밥을 쉽게 넘기지 못했겠지만, 그 때 저는 “꽃게 비싸잖어- 그리고 그냥 다 먹어, 괜히 남겨놓지말고, 엄마도 피곤한데 그냥 자고. 나 열쇠 있으니까. 아. 귀찮아. 이거 살 파먹기 빡세다. 그냥 간단히 먹고, 책 좀 보다가 자는 게 나을 거 같아. 어차피 자고 몇 시간 후면 일어나야하는데 뱃 속 안 좋잖아.” 고작 이런 말 밖에 못 했지요.


왜 그 땐 몰랐는지.
왜 늘 한 발자국 씩 늦기만 하는지.
왜.


대학에 가고, 아침에 아무도 밥 먹으라고 깨우지 않는다는 것도 처음에만 좋았습니다. 몇 번의 연애질이 무위로 끝나고, 아침 9시. 아버지는 일터에, 어머니는 성당의 자원봉사활동에 가 계시고, 동생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무 책상에 엎어져 자다가 수업시작 종소리에 침을 닦고, 책을 꺼내고 있는 시각. 저는 과음에 쓰린 속을 안고서, 문득 네 식구가 식탁에 모여 앉아 엄마가 끓여주신 콩나물 국에 밥 말아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그럴 수 없는 현실에, 이내 휴대폰 전원을 꺼버리고 다시 잠에 들곤 했지요.


아버지가 왜 그렇게, 무조건 아침은 다 같이 먹는다! 를 강조했는지 이제 알아요. 방학이니 좀 자게 내버려두지 왜 깨우느냐고 개기면 엉덩이를 걷어차서라도 깨우시고, 머리 감고 간다고 화장실에서 미적거릴때면, 빨리 안 오냐며 유난히도 고함을 치시던 이유를 이젠 알겠네요. 제가 고3이 되면서, 저는 6시, 동생은 7시반, 아버지는 8시, 출근 시간이 이렇게 다 달랐고, 모두 함께 아침을 먹기가 어렵게 됐지요. 그렇게 세월이 흐르며, 우리는 한 밥상에서 점점 멀어져만 갑니다.


이제 네 식구가 모두 모여 먹는 ‘일상적’인 밥은 평생 불가능할지도 몰라요. 벌써부터도 제가 오랜만에 집을 찾으면, 자꾸 특별하고 맛있는 음식을 조금이라도 더 해주시려는 어머니, 술 못하시면서도 아들왔으니 술 한잔 해야한다며 벽장에 묵혀둔 술을 따는 아버지, 형 보라고 만화책 조낸 빌려놨다며 불쌍한 군바리라고 썩소를 보이는 동생-


너무나 고맙지만 돌이켜보면 왠지 제가 손님이 된 것만 같아 서글퍼집니다.


아아- 눈물이 나고, 정말 부모님이 보고 싶은, 그런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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