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092006
 

 (영준 씨 글을 베껴쓰며)


모 병장의 하루


매일같이 새벽근_무에 시달리기에, “각 소대 현시간 부로 기상입니다.” 따위의 당_직병의 방송에도 절대 단번에 일어나지 못한다. 병영문화혁신이 너무 잘 된탓인지 이 곳의 육군 병장은 오성장군 중 하나로 대접받기는 커녕, 전입 백일도 안 된 신병이랑 꼭 같은 취급을 받으며 사정없이 주-야간 근_무에 시달린다. 불과 반년 전만하더라도, 상병인 나는 따스한 햇살 아래서 하루 1시간 30분만 잠시 총 들고 서서 노가리를 까다 오는 것으로 근_무를 때웠는데, 지금은 적게는 3시간 많게는 5시간을 밤낮 구분없이, 각 개인의 임무 스케줄에 상관없이, 무조건 순서대로 돌리는 꽤나 비인간적인 명령서에 의해 움직여야한다. 그래, 전에는 후임병과 마음을 트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잡담을 나누는 등 근_무의 질이 높고(?), 열정적이었다면, 이제는 그냥 무조건 잔다. 서서 졸고, 앉으면 하이바 벗고 자고, 경계총 자세도 힘드니 총도 대충 안 보이는데다 던져놓고, 아님 매고 있고, 뭐 그렇다, 저질.


오늘은 최악이었다. 하필 본청 경계근_무를 전담하는 군악대까지 육역훈련가는 바람에 우리가 이번 주 내내 근_무 땜빵을 서야하는데, 내 근_무 시간이 04:00 부터 06:00 까지였기 때문이다. 우린 교대자가 없다. 여긴 야간에만 지키면 되는 곳이라서. 젠장 그럼 좀 일찍 가버리지 뭐. 졸려죽겠는데 건물의 좌우측 현관문과 정문을 열고 스위치 위치가 엿같은 가로등을 끄고, 생활관에 복귀해 내 관물대 앞에 서는 순간, 06:00. 당근병 개-섹히가 “각 소대 현시간 부로 기상입니다!” 를 조낸 크게 외치고, 스피커에 일시적 하울링마저 생긴다. 그래 다른 사람들 다 깨우고 너는 이제 잘 수 있으니 퍽이나 좋겠네, 근데 난 안 자고 있거든, 이 짬도 안되는 개-섹히. 이 병장은 아침부터 몹시도 까칠하다. 다행히 입 밖으로 말을 내뱉진 않고, 한숨만. 그리고 아침점오.


아침은 꼬박꼬박 챙겨먹는 편이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어차피 바닷물 미역국과 설익은 밥, 으깬 감자, 맛김과 김치, 그나마 괜찮은 우유 한팩이라지만, 배가 고프니까 먹는다. 아침을 먹어야, 숙변도 잘 나오고, 몹시도 피곤한 상태에서 느끼는 공복감을 나는 좋아하니까. 식당을 오고 가는 길이 신막사 건축 공사판이라서 오고가는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지만, 비온 뒤라 늪 수준의 진흙탕을 밟더라도, 전투화를 신은 야전부대 병사로서 참 잘도 다닌다. 밥 먹고 생활관에 오자마자 씻는다, 이 때 안 씻으면 쓰러져 자느라 못 씻고 사무실 내려갈 시간이라고 후임들이 깨우면 그 때서야 씻고 늑장부려야 하니까. 그런 선임병이 되진 말자. 애들은 점오 끝나고 사무실 청소 내려가서 아직도 안 올라왔는데, 올라오자마자 밥 먹고 씻고 나면 딱 담배한대 피면 또 일과하러 내려가야하는데, 오직 병장만 열외다. 병장이 좋긴 좋군. 08시 이전까지 MTV나 M.net을 틀어놓고, 책을 본다. 신문도 보고, 그러다 졸리면 잠깐 눈감고 누워있기도 하고, 병장들끼리 잡담도 하고, 그러다가 08시에 애들이랑 다같이 칼같이 사무실에 내려간다. 타이밍이 안 맞으면 매일 아침 상황보고 가는 투스타랑 마주치게 되므로 조심해야한다. 아. 종갑이는 아침 안 먹는 주의라서 점오 끝나고 내가 내려갈때까지 거의 자거나, 섹시한 뮤비가 나오면  같이 보거나 그런다.


커피고 뭐고 내려가면 일단 두 시간 정도는 숨돌릴 틈이 없다. 전자결재를 확인하고, 문서를 접수하고, 메일을 확인하고, 결_산치는 후임한테 실시/예정사항을 적어준다. 오늘 들어오는 병력을 확인하고, 자력을 받아 연명부를 만들고, 현재 사_단 부대별 병력현황과 예상손실을 일목요연하게 뽑고, 특_기별 보_직현황을 출력해서 담당간부에게 충원지시(어느부대에 몇명 보충할지)를 받는다. 늘상 이런 식으로 아침이 시작된다. ‘사병계’, 위로 두달 선임 일보계원하나 아래로 일곱달 밑 자력관리계원하나. 위로 준위 한분, 소령 한분. 기타 부관부의 수많은 병사(7명)와 간부(3명). 사람이 많아서 좋은 게 사실인데, 번잡하기도 하고, 짬안되면 진짜 고생이다. 커피만 타줘도 몇 잔이야. 아무튼 내 주요업무라면 9000여명에 이르는 사단 병 인사업무를 담당하는 일. 육군훈련소 출신 신병들이 매주 월요일이랑 수요일에 들어와서 화요일이랑 목요일에 자대로 보낸다. 그리고 2주에 한번 씩 은 한 기수 200여명 정도의 신병을 우리 사_단에서 직접 교육시키고, 우리가 능력과 적성을 판단해서 심의를 해서 특기를 주고, 애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보는 앞에서 프리젠테이션하고 난수받고, 분류해서 자대로 보낸다. 물론 매달 500여명의 사단 말년병들에 대한 전역명령을 비롯해서 진급/파견/입원/퇴원/보직조정/특기변경 등의 번잡한 일들이 있지만 절반쯤은, 아니 좀더 후임한테 잔뜩 인수인계했다. 나는 병 분류와 관련된 각종 로비와 압박을 규정에 입각(!)하여 융통성 있게(?) 처리하는, (간부 입장에서) 몹시도 중요한 업무를 도맡고, 그 때문에 전화상담이나 신병교육대 관리에 시달린다. 십일자 일보 때 빼곤 전화 몇통이면 일과가 끝나는 일보계원님보다는 못하지만 개노가다에 시달리는 자력관리계원보다야 당연히 낫다. 내 일이 짜증나는 건 다만 ‘공정한 것 처럼 보이는 데’ 있어서 한 치의 실수도 용납치 않는다는 것과, 신병들이 직접 쓴 신상명세서를 손수 정리하고, 읽어보는 등의 노가다성 작업을 집에 갈때까정 해야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분류를 마치고 명령을 내고 나면, 또 다음 분류를 준비하기 전까진 조낸 노는 거다. 차근차근 정성껏 꾸준히 하면 좋겠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늘 벼락치기 준비를 한다. 솔직히 이렇게 안하면 놀 시간이 없다. 요컨대 일과시간에는 커피나 타먹고 책마을에 올라온 글도 읽고 장난스런 리플 몇 개 달고 근무 나갔다오고 중간중간 생활관에서 30분씩 삐대고 화장실 가고 사무실 밖 계단에서 일광욕이나 하고 뭐 이런 식으로 빈둥거리다가 야근을 자처하고 내려와 전화가 안 걸려오는 걸 몹시 행복해하며 업무 반, 책마을 반, 대략 이렇게 시간이 간다.



아 점심은, 12시에 먹고 13시에 다시 사무실로 간다. 그 틈에는 무조건 독서를 한다. 안 읽혀도 손에 일단 펼쳐 놓는다. 독서실 같은 게 없고 개인용 음향기기는 무조건 불허라서 집중에 문제가 될 법도 한데, 나는 원래 굉장히 둔한 편이라서 별 상관이 없다. 오히려 여럿이 조용히 있으면 더 졸리는 스타일이랄까. 다른 사람들이 내가 마실 산소를 다 가져가는 거 같다. 전투적으로 공부할 때는 독서실, 도서관보다는 아예 집에 내 방을 훨씬 선호해왔다. (독서실같은데 가는 건, 사람만나러 가는거다.) 어쨌든 그래도 애들이 다세포소녀 시리즈물을 보거나 그러면 또 안 볼수도 없고, 종갑이를 비롯한 생활관 애들과 잡담도 재밌고 대충 한 30p 정도 읽는 게 한계인 것 같다. 독서자세가 불편한 게 가장 짜증난다. 아빠다리했다가 폈다가 누웠다가 기댔다가 엎어졌다가 침상에 걸터앉았다가 뭐 이런 식으로 자세를 바꿔주어야 내일도 모래도 책읽는 데 몸에 지장이 없다. 우린 30인실 생활관에서 40명이 생활한다. 짬 순대로 밑에서부터 잘 자리가 없으니 대략 매트리스 2개에 3명, 좀더 빡세게는 3개에 4명 식으로 끼어서 새우잠을 잔다. 구형관물대는 좁긴 하지만 그래도 한 35개는 있는 거 같다. 개막내들은 둘이서 한 관물대를 써야하는 데, 안쓰럽다.



17:30 우리 처부에 아직도 나보다 선임이 3명이나 있다. 두번째 서열의 김병장이 이제 접고 올라가자는 신호를 보내고, 막내는 어딘가 짱박혀있는 10월전역의 왕고를 모셔온다. 나는 대충 입다물고 흐느적거리며 따라 올라간다. 애들 두세명이 쓰레기봉투나 세절지봉투 따위를 껴안고 따라온다. 이열 종대를 유지한다. 발을 안 맞추는 게 다행스럽다. 바로 밥먹고, 오는 길에 PX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하나 물고 생활관에 와서, 책을 읽는다. 금새 19시가 되고 종갑이 등과 함께 막사 앞에서 줄넘기를 넘는다. 난 2000개, 놈은 3000개. 겨울은 물론 한여름에도 유난히 차가운, 지하수스러운 (수돗물이래는데 왜 그렇게 차가워) 물로 샤워를 하고 나면 20시. 그래도 요즘은 물이 잘 나온다. 매년 장마 직전에 열흘정도는 꼭 이유없는 단수가 돼서 괴롭다.


또 생활관에서 책을 보거나 전화를 하거나, (거의) 야근 신고를 하고 사무실로 간다. 당근사관에 따라서 눈치를 잘 봐서 21:30 의 점오를 열외할 건지 말건지 결정한다. 근무자집단의 성향을 거의 파악하고 있어서 보통은 안심해도 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꼬장과 도무지 논리라고는 통하질 않는 ‘까라면 까’, 개인사정이나 애정이라곤 눈꼽만큼도 봐주지 않겠다는 비전투’손실’예방차원의 ‘통제’에 대략 3~4일에 한번 꼴로 귀찮은 일이 생긴다. 내가 진술서 쓰고 개갈굼먹는건 괜찮은데 나 땜에 욕먹는 분대장들한테 약간 은 미안하다. 그래도 뭐, 벌써 우리 생활관 분대장 4명 중에 2명이 나보다 후임이다, 풋.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홀로 mp3를 들으며, 글도 쓰고, 책도 보고, 일도 하고, 중령급 이상한테만 대접하는 대추차를 훔쳐먹기도 하고, 에어콘도 틀어놓고 (진짜 최고다), 책마을도 들어오고, 대략 하루 중 가장 생산적인 시간이 20시~22시라고 할 수 있다. 22시가 지나면 또 약간 긴장을 타야한다. 사무실이 커맨드센타 바로 앞에 있어서 불빛이 새어나가면 잠 안자고 뭐 하냐고 걱정해주는 온갖 귀찮은 인물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지통장교, 지통반장, 지통실장 뭐 이런식으로 중위 대위 소령 중령 분들이 하나씩 와서 툭툭 건들며 눈치를 주고, 냉장고를 뒤지고 쓸데없는 걸 물어보고, 친한 척을 하고, 아 제기랄 신발. 게다가 우리 사무실 소령은 야밤에 찾아와서 새벽까지 자기 방에 남아계신다. 무얼하는지는 모르겠다.


어서 올라가서 자는 수 밖에. 밤길 동무로 종갑이를 데리러 간다. 종갑이네 사무실에 들어가서 문을 걸어잠그고, 히히덕거리며 책마을 이야기를 한다. 이 때 여러 사람이 안주거리가 되는데, 술이 없다. she 발. 종갑이가 좋아하는 she발 she발. 우리 꼴이 이게 뭐야. 연나 찌질해. 잠이나 자자. 책 많이 봤냐? 글은 왜 안써. 올라가자고. 나 또 두시간 자고 인나서 근무가야혀. 막사로 가는 길에 초소를 두개 지나치고, 우리는 암_구_호도 모르고 수하에 불응하지만 절대 총을 맞지는 않는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라며 단결. 경례구호까지 외쳐가며 인사를 해준다. 하핫. 손에 책을 들고 있으면 사관 보기에 눈치가 보이니까 막사 앞 전화박스나 벤치에 슬며시 올려놓고, 최대한 피로에 지친 척 신고를 후다닥 하고는 생활관으로 복귀한다.


불침번은 우릴 보고 또 수고했다 그런다. 대체 뭘? 응?


생활관에서는 모두가 누운채로 고개는 TV를 향하고 있다. 민첩하고 짬 좀 되는 사람이 리모콘을 쥐고 있다가 사관이 들어오면 얼른 꺼야한다. 돌아와요 순애씨나 포도밭 그 사나이 같은 걸 보고 있다. 짬 안되는 애들은 TV가 너무 멀어서인지 피곤해선지 눈치가 보여선지 그냥 자고 있다. 병장들은 깔깔거리며 화면 속의 여자를 마구마구 희롱한다. 나는 씻고 양치하고 애들이 다 깔아놓은 침구류 위에서 뒹굴다가, 종갑이나 다른 친구들이 담배를 피고 있는 막사 앞에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먹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피곤하면 들어와서 잔다. 가끔 연천학파가 달을 보며 부르짖고 진지한 대화를 할 때가 있다면, 딱 이 때 뿐이다.


하늘에서 별이 쏟아진다. 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어도 별을 보며 즐거워한다. 종갑이가 노루표 답지 않게,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빈다. 내가 보고 자기가 못 보면 나한테 팔라고 난리다. 안 팔어. 개색히. 너 또 그여자 생각허냐?



그러다가 졸리면 잔다. 그리고 또 반복. 언제끝날지 모르는 반복.



이 좁은 생활관에 내 책이 한 30권 정도 있는 거 같다. 구형관물대는 책을 넣기엔 너무 좁고, 관물대와 관물대 사이에 그저 책을 세워두는 게, 이 곳의 책꽂이 개념이다. 안 보는 책, 다 본 책 좀 집으로 보내야겠는데. 우린 공간활용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직접 목재를 구해다가 톱질하고, 못질하고, 드릴도 쓰고, 경첩도 사다 다는 등, 가구를 만든다.



지난해 옆사_단에서 GP사고가 있었던 연천. 철_책이 자주 뚫리는 바람에 투스타가 교체되기도 한 이 곳. 매달 준비하는 큰 새가 날아들어 얼굴에 검댕이를 칠하고 사무실 집기며 컴퓨터며 필요도 없는 문서철까지 죄다 지하 빵car에 옮기고, 물새고 축축하고 퀴퀴한 거기서 까스까스까스 같은 거나 하고, 하는 일 없이 날을 지새우고 그래도.


여기 병영도서관에는 책이 정말 많고
여기 병사들은 주적의 개념이 정말 확실하고, 갈수록 더 확실해지며
서로 가족같이 지내거나 서로가 족같이 지내거나
어쨌든 진정 살을 부딪히며 살아가니까 다이나믹하기도 하고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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