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22006
 



 말의 뿌리를 생각해보는 습관에 떠밀려 문득 “학원물學園物” 이라는 장르명의 기원을 짐작해봤다. 머릿 속에 남은 수많은 야동제목의 흔적(감금학원? 따위)에 비추어 일본산이겠거니 생각한다. (왜 일본에선 학교가 학원이니까- 말이 그렇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우리나라도 포함해서) 아무튼 학교를 배경으로 한 동서고금의 수많은 문학/예술작품은 제쳐두고, 그저 “학원물”이라는 말로 묶이는 장르가 떠오른다. 대충 불량학생들이 나와서 좌충우돌하는데 사실 걔네들도 알고보면 또 착한 애들이라는 류의 이야기, 흔한 게 만화고 끽해야 통속소설정도여서, 어른들이 딴 짓 말고 점수나 올리라는 말을 완곡히 표현할 때, 그런거 보고 모방할까봐 걱정이라는 퍽이나 신경써주는 말의 대상이 되는, 학원물을 기억한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대표작 <GO>는, 작가님에게 미안하게도 내게 그런 학원물의 연장선에서 다가왔다.


스기하라가 계속되는 도전자를 상대로 싸우는 방식의 묘사는 어떻게든 이기기위해 갖은 수법을 고민하는 학원물과 닮았다. 선빵의 중요성, 부위의 적절성 – 재떨이로 눈 부위를 찍어버린다든지- 을 담담하게 털어놓는 것에서, 나는 <오늘부터 우리는>의 금발머리가 이기기 위해 상대의 눈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장면 따위를 떠올리며 웃었다. 여자애 앞에서 자못 순진해보이는 모습도 대개 그렇듯 여기서도 되풀이 된다. 대한민국 학교 足같다는 명언을 남긴 권씨도 한가인 천사님 앞에서 그랬듯 사쿠라이라는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일본 여자애한테 매이는 꼴이란 도무지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정일이라는 심약한 친구가 당했을 때 보복전을 하러 뛰어가지 않은 게 그나마 다르달까. <상남2인조>를 보며 고작 택트나 씨티100의 key를 따서 몰던 시절은 벌써 옛날이 되버렸지만, 여전히 무림고수를 보면 마음이 설레고 브레이크 댄스의 현란한 동작에 감탄하는 나는 그렇게 학원물을 추억하며 즐거워했다.


// 이름이란 뭐지? 장미라 부르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그 향기는 변함이 없는 것을
–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


맨 앞장에 박힌 이 폼나는 인용구는 결국 주인공 스기하라의 유쾌하고 경쾌한 연애담 덕분에 무게를 덜고 만다. 재일 한국인으로서 재일 조선인과 일본인으로부터 받는 핍박, 민족-국적과 관련한 개인의 정체성 문제는 소설 막판에 가서 히로인 사쿠라이가 이미 오래전에 스기하라가 농구하는 모습을 보고, 그 때 째려보는 모습에 질질 쌌다는 참 뜬금없고 쌩뚱맞은 고백으로 해소됐다기 보다는 더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게 되버린다.


// “나, 지금도 무지무지 젖어있어, 만져볼래?” //


라고 말하는 여자 앞에서, 지금 대굴빡을 굴리게 생겼나!



얼마전 명동CQN? 인가에서 했던 영화 <박치기>를 떠올려보면 – 개인적으로 정말 재밌게 봤다 – , 이건 무슨 한류에 대응한 일본의 전략적 수출이냐는 소리를 할 수도 있겠다. 학원물에 이제 <민족>이란 옷까지 입히면 한국애들이 더 통쾌해하고 즐거워하겠지?


뭐 그런 억지스런 음모론을 꺼내들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안의 날 포함하여)


니들이 대량살상무기가 난무하는 이 험악무도한 세상에서 고작 어설픈 주먹질로 의리네 사랑이네 하고 자빠진, 그야말로 “놀고있는”


<학원물>의 쌉싸름한 매력을 아느냐고 묻고 싶다. 



아- “오늘부터 우리는” 애니판 다시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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