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012006
 

  일전에 글에서 밝힌대로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의 과학자는 다윈이다. 그의 성품이나 연구자세같은 사적인 영역 때문이 아니라 승일 씨 말대로 진화론의 대단한 영향력 때문에 그렇다. 최근에 읽은, 박노자의 ‘우승열패의 신화’ –사회진화론과 한국민족주의담론의 역사– 와 같은 책에서도 쉽게 볼 수 있듯, ‘진화는 진보다’식의 진화론의 오독(의도적이든 아니든)과 인종주의, 제국주의 합리화 등의 정치적 악용은, 진화론을 위시한 일체의 생물학적, 기계론적 접근을 꽤 오랜시간동안 짬- 시켰다. 그렇지만 21세기에 들어와 인간복제나 게놈프로젝트와 더불어 새삼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어 반갑다. 복잡다양한 생명현상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단일 개체의 사소한 행동과 그 기저원리에 대하여 탐구한다는 건 내게 생각만해도 몸서리칠 정도로 흥미진진한 일이다. 난 그런 식으로 인류를 사랑하고, 알고 싶어서, 그래서 공부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오늘날 심리학이나 뇌신경과학이 진화심리학, 사회생물학으로 불리우며 열을 올리는 연구들이, 혹여 숭고한 휴머니즘에 맞서서 짐승적인 생존경쟁을 옹호하는 것으로 비춰질 때면, 섭섭하다. 그럴 땐 오히려 목적론적 입장에서 ‘생의 의지’, 도덕과 윤리를 외치며, 정상과 비정상, 선과 악, 권력과 피지배를 구분짓고 그 틀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마침내 인류의 다양성을 억지로 그 속에 구겨넣는 것이야말로 인류에 큰 해악이 아니냐고 되묻고 싶을 때가 많다.

  한편 나도 진화의 매커니즘, 세계 변화의 근원적 힘에 관하여 늘 궁금하다. 정모에서 민우씨, 희석씨가 철학의 중요성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 과학이 그 많고 강력한 이론적 함의에도 볼구하고 그저 도구적이고 기술적인 차원에 그치는 것으로 평가될까봐 촉각을 곤두세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온갖 철학적 상상력이 존재나 인식의 문제를 앞장서서 끌고 왔음이 분명하다. 현대 과학이 그 지난한 흐름 속에서 생기고, 튀어나와 이제 철학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철학은 아직까지도 지식의 종합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철학공부를 게을리하는 탓이다. 아- 공부해야지. 철학공부, 수학공부.
 
 
 
  그닥 쌈빡한 얘기는 아니지만 승일씨가 말씀하신 ‘개체변이’와 ‘자연선택’과 관련해서 떠오른 게, 리차드도킨스나 에드워드윌슨등의 이론들이다. 나 역시 대학교 1학년 때, 최재천 선생님의 ‘생명윤리와 인간본성의 진화?’인가 하는 교양수업을 들으며 이 부분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이화여대에 아예 ‘통섭관’이라는 건물이 생기고 거기에 새 둥지를 트셨다는 최재천 교수의 강의는 내가 실험심리학과 공학적입장에 매몰되지 않도록 훌륭한 나침반 역할을 한 것 같다. 아무튼 진화론이 그 진실성에도 불구, 그 매커니즘이 석연치않은 느낌이 드는 건, “그럼 우리 조상이 원숭이란 말야?” 라고 성을 내는 이들을, ‘수십만년’이라는 실로 엄청나게 오랜 세월의 힘을 근거로 설득시키는 동시에, 현 인류의 그 말도안되는 폭발적 다양성이 과연 그 산물이라는 걸 도무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탓이라고 생각한다. 몇개의 돌과 뼈를 갖고 놀던 인류가 그 짧은 시간 (굉장히 긴 시간이지만 진화론적으로 짧다는 의미) 만에 현재는 움직이며 동화상을 보는 수준이 됐다. 이렇게 인공적인 문화의 진화는 학자들이 흔히 지수함수적인 변화로 파악할만큼 폭발적이다.
   
   우리의 구체적 행동하나하나를 유전자 단위로 환원하여 설명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이다.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은 그런 맥락에서 나온다. 도킨스의 그 유명한 책 이기적유전자(1976?)가 대표적이다. 책에서 문화의 기본단위로 모방자meme를 제시한다. 용불용설은 거짓이고,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지만, 이미 많은 신화학자나 기호학자들이 밝혀냈듯, 다양한 인간 문화 사이에는 분명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모방자는 각 인간이 놓인 구체적 현실과 사회에 맞추어 그때그때 적응적으로 발현된다. [예컨대 구체적인 내용은 크게 다를지라도 어느 사회에나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금기, 공동규칙, 종교 등등] 모방자를 물려받고, 물려주는 방식으로 문화적 진화가 설명된다. 그리고 이는 유전자적 진화와 긴밀한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리고 윌슨은 ‘모방자’의 개념을 좀더 물리적차원으로 환원시켜 인간본성에 대하여(1978?)을 내놓는다. 모방자를 의미기억의 연결점, 뇌활동의 상응물로 상정하고, 우리가 물려주는 건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게 만들고 특정 행동을 상대적으로 더 잘 배우게 만드는 신경형질;”후성규칙”이라는 이론이다. 이렇게 보면 인류문명의 구체적 현상은 유전자에 직접적 원인을 갖기보다는, 후성규칙에 기초를 둔 뇌와 감각을 통한 학습과 사회행동에 기인한다. 물론 선천적으로 ‘준비된 학습’으로서 ‘후성규칙’이란 것도  유전적기초를 갖고 있고, 그것은 여전히 아리송하고, 진화매커니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그 지루한 유전이냐 환경이냐nature vs nurture 논쟁과 관련하여, 유전자맹신에 빠지지 않고, 보다 통섭적인 관점에서 승일씨가 언급한 ‘여백’을 메우기위한 노력으로 평가해 볼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유전자-문화 공진화는,
   
   유전자의 규정을 받는 후성규칙 – 문화적 습득과 그것을 전달가능케하는 감각기관과 정신발달의 규칙성- 이 있다.
   문화는 어떤 유전자가 다음세대로 전달될 것인지에 대한 결정(자연스런)을 도와준다.
   성공적인 새 유전자는 개체군의 후성규칙을 변화시킨다.
   변화된 후성규칙은 문화적 습득이 이뤄지는 방향과 그 효율성을 변화시킨다.
   
   이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다.
   
 
   
   덧붙여 유전과 진화에 관한 논의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할 사실이 있다. 그것인 다인자polygenes와 발현pleiotropy이다. (일전에 용준씨 칼럼에 리플달때는 이 용어가 기억안났음) ‘다인자’는 하나의 표현형질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여러개일 수 있다는 얘기고, ‘발현’은 하나의 유전자가 영향을 끼치는 표현형질이 다양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비록 유전자지도를 완성시켰다하더라도, 우리는 쉽게 유전자조작,변형과 관련된 결과를 단언할 수 없다.
   
   계속되는 연구가 미지의 부분을 더 밝혀낼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어쩜 우리가 놓인 세계의 동인은 우리의 인식론적 한계 밖에 있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따져들면,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 이라는 말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적합한 놈이 살아남고 살아남은 놈이 적합하다 라는 건 동어반복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이는 ‘문화’의 개념을 들어도 꼭 같다. 인간의 행위가 문화를 만들고, 동시에 문화가 인간의 행위를 만들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자연선택에는 의지가 없음을, 무목적론적 세계관을 믿는다. 진화에는 일관된 방향성조차 없다. 양자역학적 세계는 시시각각 변화한다. 나는 그런 차원에서 진화를 약자의 도태개념으로조차 보고 싶지 않다. “약자”라는 건 지극히 권력을 쥔 인간의 짧은 찰나에 유효한 평가일 뿐이니까.우리는 사회에 눌려 발현되지 못하는 유전적 끼를 많이 가지고 살아간다.  그저 극적인 환경의 변화에도 능히 대처할 수 있는 유전자 풀의 다양성 증가의 차원에 주목할 뿐이다. 자연은 사소한 차이를 전부 변별하지 않는다.  승일씨가 ‘사소한 차이’로 본 것은 관찰자인 인간의 입장에서 사소하지, 식충식물 자체에게는 생존이 걸린 큰 문제로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쓰고보니까 좀 잡문이 되버렸다. 후우-
   
   





  2 Responses to “진화론, 다위니즘Darwinism에 대하여”

  1. 유전자-문화 공진화라는 개념이 처음 대두된 이래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애석하게도 이 부분에 대해서 순수하게 진화생물학적인 측면에서 다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문화’라는 특성이 인간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것이기에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여태까지도 문화라는 건 거만한 인문학자들(…)에게 맡겨진 영역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실험적인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좋겠지만… 역시 현재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만으로는 무리이려나요;

    • 동의합니다. 생물학을 공부하는 분들은 아마도 인간의 생식행위나 신체적 특징의 변화. 식습관의 변화 등에 주목해서 “문화”를 추적하는 방법에 익숙할 것 같습니다. (제 추측) 물론 저도 그 분야의 새로운 성과를 듣지는 못했고요. 궁금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우리가 문화라고 부를 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믿음, 가치관, 태도, 의미, 종교, 관계 뭐 이런 것들은. 심리학에서도 문화 차이에 대한 발견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게 10년 남짓정도로 짧은 편이라서. 시간을 두고 경험적인 데이터를 쌓아올리다보면 그 변화 추이에서도 무언가 읽어낼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은 듭니다. 아직은 왜 이럴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 진화론? 이런 운을 띄우는 폼을 잡는데 그치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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