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2000
 

– 13세 선생님 –

“뿌우웅~”

이제 막 청소가 끝나서인지 물에 젖은 나무냄새가 퀴퀴하게 나는 어느 교실에 순간 누군가의 냄새가 더해졌다. 서로 서로 눈치를 살피는 친구들사이에서 문득 조용히 창 밖을 내다보고 계시는 선생님을 본 나는 “선생님이다! 선생님이 뀌셨어!” 하고 외쳤다. 아닌척하시다가 들켜 얼굴이 홍시가 된 채 이내 껄껄 웃으셨던 선생님…

햇수로 벌써 5년이나 지나버린 철 모르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직도 눈앞에 선한 듯하다.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 2년 동안을 함께 했던 나의 담임선생님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나의 선생님은 그리 크지 않은 키에 납작하고 둥글둥글한 머리와 얼굴, 깎긴 했으나 칫솔처럼 솟은 턱수염, 언제고 옆반서 밥을 얻어오지 않으면 안되게 했던 이른바 똥배를, 긴장하신 것도 아닌데 자꾸만 말 더듬던 습관을 지니신 분이셨다.

아이들의 등교가 모두 끝난 아침마다, 선생님께선 어제 뉴스에 나온 뭐, 요즘 인기있는 뭐뭐등의 화제를 가지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하여금 아이들과 공감하고 눈높이를 맞추며 하루를 시작하셨다. 점심시간에는 책상에 앉아 계신 선생님의 볼을 쓰다듬기도 했고, 여자아이들은 흰 머리카락 하나당 10원이라며 검은머리까지 뽑고 함께 놀았다.

뿐만 아니라 어느 날에는 체육시간에 운동장에서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생님께서 화장실에 가신 사이 교실 앞․뒷문을 모두 잠궈 선생님께서 교실에 못 들어오시게 해 놓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뱃속이 편치않으시다며 휴지를 들고 가신 선생님을 화장실까지 쫓아가서 못 살게 군 적도 있었다. 짓궂은 장난에도 마냥 웃기만 하시는 이러한 분이 세상에 또 누가 있겠는가. 나는 정말인지 선생님의 나의 친구, 나의 아버지인 마냥 여기며 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아이들과 장난치며 지낸다고 해서 무례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용납하시지는 않았다. 선생님은 꾸중 아닌 꾸중으로서 우리들을 반듯하게 하셨다. 친한 친구가 말을 하는 데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아이들은 모두 쉽사리 선생님의 지적을 받아들이고 이내 고치기 마련이었다. 선생님의 한 말씀 한 말씀은 그렇게 친구의 말처럼 자연스레 마음속을 파고들었던 것만 같다. 서로가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요즘 들어, 이토록 아름다운 사제지간의 정이 희박해져 가고 있는 듯해서 아쉽다. 물질적, 합리적인 것에 너무나 익숙해진 우리는 인간미와 따뜻한 정을 잃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여기 우리 선생님처럼 가끔 방귀도 뀌실 줄 아시고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여유와 인간미를 가진 선생님은 더 이상 계시지 않는 것일까?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하루하루를 지겹다고만 느끼는 우리 학생들의 몸은 이미 빠알간 피가 아닌 시컴한 기름으로 가득차 버린 것은 아닐까?

이제는 아쉬워 할 수 밖에 없는 추억들을 뒤로 한 채 새로운 학교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있는 지금, 요 며칠 전에 어느 고등학교에 입학했느냐, 요즘은 뭐 하고 지내느냐하시며 집에 손수 전화를 주신 선생님이 자꾸만 떠오른다. 언제나 자신의 일 인양 나의 일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선생님 덕택에 지금의 내가 있다하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듯 하다.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고 올바른 인간의 되라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 나의 눈높이에서 생각하시고, 나와 함께 모든 것을 함께 하셨던 나의 친구, 나의 선생님. 나는 그 때의 선생님을 나의 나이였던 13세의 선생님이라 부르고 싶다. 스승의 날이 가까워오는 지금 어김없이 나의 발길은 자연히 선생님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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