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단지 먹어야한다는 생각만이 그를 움직이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남자는 쉴 새 없이 밥을 먹고 있었다. 아니 차라리, 우겨넣고 있었다.
금방 넣은 수저 뒤에 올라온 구역질이 아니었다면,
그의 오른팔이 그리는 부채꼴의 동선은 멈추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쥐고 있던 숟가락을 놓고 힘 없이 고개를 떨군다.
그의 도톰하게 감미로운 입술에는 밥 푼 후 주걱마냥 덕지덕지 붙은 것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뭔가 넙적해보이나 생기있는 뺨은 아직 넘기지 못한 맨 밥알들로 한껏 부풀어 있었고,
거칠어 보이는 큰 콧날의 끝에는 스포이트에서 막 떨어지려는 듯한 물방울이 맺혀있었으나,
남자는 전혀 개의치 않는듯 했다.
사실 남자는 며칠째 이 시간이 되면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으나,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겨우 깨어나서는
냉장고를 열고 언 밥을 꺼내 녹인 뒤 그저 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때도 멈추고 또 멍해졌다.
남자는 그 날을 떠올렸다.
남자의 팔은 기계적으로 그릇과 입을 오갈 뿐이다.
마치 머릿속에서 그 날을 삼켜없애려는 듯 씹지도 않고 넘겨대고 있었다.
그 날.
남자는 여자가 떠난 자리를 눈으로 새기며 아직 그녀가 곁에 있다고 생각했다.
인덕션 위에는 끓는 물이 침대 위에는 여섯시 알람이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남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가는 한숨을 내쉬며 눈을 떼지 않았다.
손을 뻗어 담배를 가져왔다.
살짝 불을 붙였지만 제대로 타지않는 담배를 입에 문 채 쇼파에 몸을 뉘였다.
남자는 왠지 모르게 당장 무슨 일을 하지 않으면 금방 죽을 것처럼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를 떠올리기엔 가슴이 텅 빈듯한 허전함이 거슬렸지만
그렇다고 막상 떠오르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책상 옆의 버티컬 틈새로 해뜨기전 새벽 어스름 불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남자는 쇼파 뒤로 목을 꺾고 가만히 천장을 보며 벽지의 물결무늬를 따라 눈을 굴리고 있었다.
남자는 떠나기전 여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여자는 다정하지만 건조한 목소리로
어린애처럼 들떠 이것저것 말하는 남자의 말을 가로막고서는
조용히 이제 그만하자고 말했다.
남자는 풀이 죽은 표정으로 이별을 말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거짓되 보였다.
남자의 눈동자는 그녀의 눈을 들여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녀의 눈동자는 남자의 눈동자가 아닌 허공을 응시했고,
남자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그녀가 거짓을 말한다고 믿었다.
남자는 만족하고 침착한척 여자를 배웅했다.
떠나가는 그녀를 쉬 돌릴 수 있을거라 믿었다.
초점잃은 그녀의 눈동자를 본 순간에 남자는 포기할 수 없게 되었다.
남자는 마치 그 날이 가까운 과거인 것처럼 선명히 떠올랐다. 그리고 몇번이고 생각했다.
‘아, 다그쳐 그녀가 나를 똑바로 보도록 해줄껄. 그랬다면 그녀의 눈동자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줬을 텐데.’
이것은 차라리 망상에 가깝기도 하고 위로에 가깝기도 했다.
남자는 여전히 배가 고프지 않았다.
반쯤걷은 버티컬 틈새로 시큰하고 썰렁한 시월의 햇살이
무엇엔가 맞은듯 반쯤 이그러져 식탁 위를 가른다.
침묵을 깨는 것은 다시금 시작된 그의 움직임이었다.
여전히 남자는 부지런히 그 날을 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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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이런 글을 쓰셨는지는 몰랐네요. ㅎㅎ
맘대로 갖다 쓴 데다가 (쓴 걸 다시 읽어보니) 좀 구리기까지 하네요-_- 역시 원본만한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