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2008
 

   “넌 전공 뭐할래?” 전공이 정해지지 않은 학부 입학 새내기라면 입학 전부터 올해 말, 그리고 어쩌면 내년까지도 물귀신처럼 따라다닐 질문이니 미리 눈여겨 봐두면 좋겠다. 물론 전공이 무엇인지 묻기, 전공이 없다면 무엇을 전공할 계획인지 묻는 것은 흔히 주고받는 인사말이다. 하지만 입학 초에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렴풋이 마음에 두고 있는 전공을 밝히더라도 해당 전공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게다가 누구나 희망하는 전공을 모두 배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학점 경쟁도 부담스럽다.

  전공 선택의 고민에는 일반적인 해답이 존재한다. 인기도와 사회 진출 기회의 척도만으로 전공을 고르기 보다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고려해서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보다 행복한 대학생활을 보장하고 훗날 사회에 필요한 인재가 될 가능성을 더욱 높일 것이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지만, 진로선택을 위한 상담 장면에서 “나는 뚜렷하게 정말 좋아하는 것도 없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다.”고 토로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을 보면, 실제 도움이 되는 해답은 아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자신의 진짜 꿈과 재능을 억눌러왔다. 이제 그것을 되살려야 하고, 되살릴 좋은 방법들을 찾아 직접 해보면 된다! 시트콤에 나오는 대학생의 낭만을 만끽할 수는 없겠지만 여전히 대학생활은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운 때이다. 특히 학부 1, 2학년은 자기 탐색의 절호의 기회이니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녔고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와 포부도 각각 남다르기에, 아마 전공 탐색의 왕도도 없을 것이다. 선배나 교수님과의 술자리가 계기일 수도 있고, 힘들지만 보람있었던 강의, 동아리 활동, 방학동안의 배낭여행, 부모님과의 대화 등이 결정적인 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극적인 계기없이 대부분은 이런저런 만남과 탐색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조언과 함께 스스로 고민을 계속해나가며 선택지를 좁혀갈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지금 주위 동기와 선후배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다들 그러했고, 돌이켜보면 결국 우리가 나누어야 할 중요한 이야기는 바로 대학생활을 헤쳐나가는 자세의 문제인 것 같다.

   무엇보다도 우선 바쁘고 정신없는 새내기 시절이지만, 좀더 여유있고 긍정적이면 좋겠다. 대학생이 되었다는 들뜬 마음은 수강신청 실패와 함께 사라지고, 비싼 등록금을 내고 왜 원하는 수업을 들을 수 없는 것인지 몹시 우울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을 알차게 써보겠다고 공강 시간을 고려해 열심히 짜둔 시간표가 물거품이 되었다는 이유로 왠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뒤따르는 많은 일들을 그르치는 것은 어리석다. 현행 상대평가제도 하에서 누군가는 낮은 학점을 받아야만 하는데, 그것이 절대 자신일 수는 없다는 생각 또한 철없는 고집이다. 모두들 같이 겪고 있는 새로운 인간관계, 부모로부터의 독립, 연애문제, 학업문제, 진로문제 속에서,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어 포기할 수도, 포기해서도 안 되는 것을 알고, 자기 스스로 일일이 챙겨나가다 보면 더러 실수가 생기고, 균형이 깨져서 한두번씩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입시에 초점을 두고 모든 문제를 잠시 젖혀두는 습관을 대학에서도 계속 이어나갈 수는 없다.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스스로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고, 이어지는 다음 스케줄에 몰두하면 된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대개 중고교시절에도 우수한 학생으로 학교에서 자신이 원하는 걸 성취하고, 인정받은 경험은 많지만 실수하고 경쟁에 밀려 괴로워한 경험은 상대적으로 적다. 여유있는 마음으로 자유롭게 전공탐색을 해도 늦지 않고, 늦더라도 좋은 선택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전공배정은 2학기에 전체 정원의 80%, 3학기(2학년 1학기)에 40%를 승인하도록 되어있다. 2학기 때 원하는 전공을 잘 찾고 배정도 잘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3학기까지 가도 된다. 혹시라도 훗날 자신의 전공이 영 적성에 맞지 않고 적응도 어렵다면, 소속을 변경하거나 이중전공/부전공을 할 수도 있다. 그것이 단지 취업만을 목적으로 한 시류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원하는 전공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는 나중에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실제로 3, 4학년이 되어 전공수업 때 주변을 둘러보면 의외로 타 과에서 온 사람이 굉장히 많다. 그러니 지금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데 지나치게 조심스러울 필요는 없다. 매일 음주가무에 빠져 결석을 밥 먹듯 하고 흥청망청해서는 안 되겠지만, 여유있고 긍정적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면, 결국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학교의 학사행정, 전공과 관련한 정보의 수집에 꾸준한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가령, 원하는 전공을 배정받기 위한 요건을 꼼꼼히 확인해두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중전공/연계전공/부전공이나 교직이수제도, 계열변경에 관한 것도 신청시기와 요건, 신청 후 달라지게 될 자신의 졸업요건과 생활에 대한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에 미리미리 조금씩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 좋다. 변화무쌍한 여러 학사제도에 대한 고려가 처음에 본 전공을 배정받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우리학교는 96~99학번은 이중전공이 의무였으나 00년 학부제 시행 후 폐지됐고, 해마다 꾸준히 전공이수학점을 늘려 현재 07학번 부터는 단일전공을 하든 이중전공을 하든 졸업을 위해서는 제1전공을 57학점 이수해야한다. 쉽게 이중전공을 택하기가 사실상 힘들어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서울대는 08년도 새내기부터 이중전공을 의무화했다.) 이중전공을 하려면 예외없이 계절학기와 초과학기(8학기로 졸업이수요건을 채우지 못하면 … 대충 주석 넣어줘) 를 다녀야만 하고, 자신의 대학생활을 계획하는 데 이런 큰 변화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포함한 개별 전공에 대한 소개와 정보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다음 나열하는 목록만큼은 꼭 메모해두고 틈틈이 예민하게 점검해보길 바란다. [학교홈페이지 공지사항, 학사포탈, 학부대학홈페이지, 학사지도교수와의 면담, 학부대학에서 배부하는 “Click 전공찾기”, Freshman Seminar, Gateway to College(꼭 수강하길 바람), 연세상담센터의 무료심리검사 (적성진단검사, 진로탐색검사, 성격검사, 인성검사), 2학기 열리는 각 전공별 전공설명회, 각 전공별 홈페이지 또는 커뮤니티]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 한가지 더, 진실에 대한 진득한 추구와 그에 필요한 용기가 절실한 것 같다. 학교의 교육여건상 필수로 이수해야하는 강의 중에도 100명이 넘는 인원이 함께 들어야하는 대형 강의가 있다. 그런 경우 수업 내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수 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수업의 질이 보장되지 않고, 불만이 자연히 생긴다. 그 외에도 어떤 수업이 자기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 경우도 비근하다. 그런데 그런 불만이 지나쳐 교수 전체나 해당 전공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되어서는 곤란하다. 나 역시 문학입문의 정신없는 팀 티칭에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수박 겉핥기라고 비판하고, 철학입문을 들었는데 철학함을 가르쳐주지 않고 서양고대철학사만 배우는 것 같아 ‘대학강의가 다 이런 것인가, 해당 전공이 이런 학문이구나.’ 하고 속단했던 적이 있다. 우리는 젊다보니 혈기와 의기에 복받쳐 자칫 진실을 간과해버리는 때가 많은 것 같다. 장점보다는 단점에 더 시선이 가고, 자기 눈에 얼핏 들어온 것만 생각하고 열을 올려 비판을 하기 쉽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나는대로 하는 비판은 자기 그릇을 키우지 못한다. 그 어떤 교수나 강사도 공짜로 강단에 선 것이 아니다. 상대의 이해 안될 말이 왜 나온 것인지 되짚어 생각해보고, 필요하다면 용기를 내어 직접 찾아가서 얘기를 나누고 배워야한다. 해당 전공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강의가 있는지 인터넷 수강편람에서 전공수업의 수업계획서를 조회해보고, 원한다면 청강을 해보는 것도 좋다. 취미나 관심이 같은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 활동도 마찬가지이다. 공식적인 가입기간이 지나버렸거나, 관심은 있지만 잘 할 자신이 없어 망설이고 있다면,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려 볼 일이다. 문전박대 당할 확률은 거의 없고, 아마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것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가게 될 것이다.

   언젠가부터 대학생들이 전공에 관계없이 온통 “영어능력-학벌-학점-공모전-인턴”으로 이어지는 소위 취업 5종세트를 구비하기 위해 한시도 쉴 겨를이 없다고 한다. 정말이지 주위를 둘러보면 학과공부에 푹 빠져있는 학생, 휴학없이 졸업하는 학생을 찾아보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바쁜 게 나쁜 건 아니고, 학점이 좋은 게 나쁜 것도 아니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전공과 진로를 또다시 접고, 똑같은 목표를 향해 모두가 몰려가고 있는 것이 나쁘고 그렇게 만드는 세상에 문제가 있다. 마치 대입만을 목표로 다른 것들은 잠시 접어두는 것처럼, 어쩌면 이런 식으로 평생 나쁜 일이 되풀이 될지 모른다. 그리고 새내기들은 지금 그 고리를 끊을 좋은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설령 비인기 전공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소질과 적성에 맞게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결국에는 훨씬 더 좋은 직업과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입학하자마자 취업을 걱정하고 취업 잘 되는 과를 찾아 소속변경까지 했던 동기는 졸업반인 지금도 여전히 취업을 걱정하고 있고, 자기 전공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늘 즐거워했던 동기는 지도교수의 추천을 받아 벌써 자기가 원하던 회사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새삼 진실의 위력을 실감한다. 여유있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필요한 정보를 철저하게 섭렵해가며 끈기있고 용기있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해서, 새내기 모두가 전공선택에 성공하고 행복한 대학생활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모두 파이팅!

* 2008년 [문우] 새내기맞이특별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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