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2006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은 그 천재적 위대함으로 인하여 불멸의 걸작으로 길이길이 추앙 받고 있지만, 사실 우리가 보아온 최후의 만찬은 다빈치의 오리지널이 아니라고 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복원의 명목으로 다빈치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작자들이 덧칠하고 훼손시킨 일종의 변질된 작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후세에 어떤 일이 벌어졌건 간에 최후의 만찬을 다빈치의 진본이라고 생각하며 보아왔다. 엄밀히 말하면 변질된 최후의 만찬은 더 이상 다빈치의 오리지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처럼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과 사실의 사이에는 종종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무엇이 진실인가? 진실이란 존재하는가? 이미지가 곧 진실이 아닐까? 등의 다양한 질문과 일상과 사변의 세계를 넘나드는 온갖 논의가 가능하다. 여기서는 ‘기억’의 생물학적 기초를 바탕으로 얘기를 해본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믿음과 진실의 괴리가 단지 정확한 정보나 숨겨진 사실을 미처 몰랐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만은 아니다. 다빈치의 그림이 원작에서 덧칠위에 덧칠이 되어 점점 훼손되는 것처럼 인간의 기억은 시간에 따라, 주변 환경 요소의 영향으로 망각되거나 왜곡되기 쉽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통해서나 수많은 영화, 드라마를 통해 이와 갈은 기억의 오류를 자주 접해 익히 알고 있다. 건망증부터, 단기기억상실의 메멘토, 교통사고 후 기억상실증이라는 수없이 많은 드라마 속 진부한 설정까지.


  그러나 간과하기 쉬운 흥미로운 사실은,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기억이 기억 자체의 증가나 감소, 왜곡 여부와는 별도로 우리가 어떤 사건에 대해서 얼마나 생생하게 느끼는 지 여부와 같은 주관적인 느낌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기억 심리학자들의 많은 연구에 따르면, 실생활에서 정서적으로 큰 충격을 준 사건들, 예를 들어 성수대교 붕괴나 911테러, 축구 대표팀의 월드컵 4강 진출 등에 대해서 사람들은 다른 사건과 비교하여 더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더 잘 기억한다고 느낀다.


  실제로 2004년 12월 네이처뉴로사이언스라는 해 분야 유명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은 이와 같은 기존 연구들을 뒷받침할 강력한 생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참가자에게 정서적으로 반향이 큰 사진(정서적 사진)들–무섭고 끔찍한 사고사진, 우습고 짜릿한 사진 따위–과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는 사진(중성적 사진)–일상적 풍경 따위–들을 보여준 다음, 참가자들이 두 조건의 사진들을 기억한다고 판단할 때 활성화하는 뇌 영역을 비교하였다. 실험 결과, 참가자가 스스로 기억한다는 판단은 정서적 사진들의 경우에 훨씬 증가되었으나 그 기억의 정확도는 중성적 사진과 다르지 않았다. (다채로운 끔찍한 사진 여러 장 중에서 제시됐던 끔찍한 사진을 정확히 찾아내질 못했다, 중성적 자극도 마찬가지) 그리고 재밌는 것은, 중성적인 사진들에 대해 기억한다고 판단을 내릴 때는 부해마 피질이 많이 활성화 된 반면에, 정서적 사진들에 대해서는 편도체가 활성화 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해마는 기억 형성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편도체가 인간 정서의 중추라는 것은 익히 밝혀져있다.)
 
  이렇게 똑같이 기억한다고 느끼고 판단하는데,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위와 같이 다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줄까? 간단히, 정서적인 사건에 관한 기억은 그렇지 않은 사건보다 더 “잘 기억된다는 주관적 느낌”이 강해졌다는 것을 시사한다. 연구자들은 우리가 중성적인 사건에 대해 기억한다고 판단할 때는 부해마 피질이 활성화 되면서 실제 지각했던 내용과 기억을 떠오르게 해줄 단서에 의존하는 반면에, 정서적인 사건을 기억한다고 판단할 때는 편도체가 활성화 되면서 느끼는 감정이나 지각적 예민함에 의존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목의 물음에 어떤 답을 줄 수 있을까? 중요한 사건이 더 잘 기억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주관적인 믿음일 뿐이라는 결론일까? 뜻 밖에도, 대답은 NO다. 그때그때 달라요, 이런 무책임한 답을 할 수 밖에. 왜냐하면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기억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할 경우에, 중요한 사건들은 분명히 더 잘 기억된다. 반복적인 학습은 일시적인 뇌세포의 활성화를 넘어서 뇌세포 내 단백질의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것은 정서적으로 높은 각성을 일으키는 사건에 대해서는, 정확성 여부와는 관계없이 회상 내용에 대한 주관적인 확신도가 매우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특정 사건에 대한 소식을 친구에게서 처음 들은 다음에 집에서 TV 뉴스를 보면서 자세하게 그 사건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고 하자. 몇 년이 지난 후에 그 사건을 회상하는 경우, TV를 통해 그 사건을 처음 알았다고 회상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실제 사건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고 정서적 각성을 수반하게 한 것이, 친구의 말보다 자료화면과 육하원칙에 맞추어 상황을 구체적 다양한 층위의 감각자극으로 입력해주는, TV뉴스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월드컵 4강 진출 때 거리응원을 하지도 않았으면서도, 몇 년후에 돌아보면 분명 나도 거리에서 미친듯이 응원했다고 실제로 믿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응원 뭐 그게 대단한 거라고, 안 하면 어때, 그런 식으로 자존심세운다고 구라치는거야? 너 그때 여친이랑 깨지고 앓아누웠잖아, 무슨 거리응원, 개구라쟁이” 이렇게 말해봐야 헛수고다, 당사자는 정말 그렇게 기억한다고 느끼니까.
 
  조금 중차대한 예를 들 수도 있다. 누군가가 당신이 보는 앞에서 끔찍하게 살인당했다고 가정하자. 당신은 경찰에 불려가고, 정의감에 불타서, 기억나는 모든 것들을 소상히 진술하기 시작한다. “호남형 얼굴이었어요, 키는 크지 않았지만, 단단한 체구였고, 눈이 딱 찢어진게 사나워 보였죠.”, 경찰이 달리 증거를 얻을데가 없어서 당신의 진술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면, 아뿔싸! 당신은 극적인 사건을 겪었기에, 그 모든 기억이 정말 ‘생생’하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평소에 지하철에서 스친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과 다름없이 그 기억의 정확성은 대단치않다는 것이 문제다. 오히려 평소 “범죄형 얼굴”에 대한 선입견을 지니고 있을 경우에, 그 흔한 기억의 왜곡 현상마저 끼어들 여지가 있으니, 이래서야 도통 진범을 잡을 수 있을까. 생사람 안 잡으면 다행이지. (실제로 수많은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당장 늘어놓지 못해 아쉬운) 물론 당신이 정확히 기억할 수도 있다. 목격자의 진술은 어쨌는 꽤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각설하고, 이 모든 잡스런 사실들이, 내 기억조차 이렇게 온전치 못하다니, 믿을 건 나 뿐 이라며 각박한 세상을 전투적으로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은 더욱 슬프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치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어쩌면 기억의 불완전성 덕분에 우리는 더욱 인간다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기억이든 타인의 기억이든,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이처럼 천방지축인 “기억”에 대해서 우리는 좀더 여유있고 너그러운 시선을 던져야 하므로.
 
 
  그리고 이런 차원에서, 글쟁이든, 그림쟁이든, 광고쟁이든 간에, 이 글귀는 중요한 참고점이 되지 않을까.
 
 
  짧게 써라. 그러면 읽힐 것이다.
  명료하게 써라. 그러면 이해될 것이다.
  그림같이 써라. 그러면 기억속에 머물것이다. – 퓰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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