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42010
 

  우리 출판계에서 공지영처럼 많이 파는 사람 찾기도 힘들다. 또 그만큼 많이 까인다. 지인 중 하나는 베스트셀러 작가 치곤 글을 너무 못 쓰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하지만 내가 문학에 영 젬병이라서 잘 모르겠다. 기억에 한국 문학작품들을 늘 열심히 읽던 김현동의 평을 듣고 싶다. (김현동이 보고 싶다.) 감상평이 아니라 그냥 문장력이나 문학성에 대한 촌평같은 게 궁금하달까. 사실 나는 그냥 많이 팔려서 그래서 좀 까고 있다. 물론 “공지영 까지 마라. 우리나라에서 결혼 3번, 이혼 3번 하고 이렇게 멋있게 살고 있으면 평생까임방지권 정도는 줘야되는 것 아니냐.” 는 말에는 반쯤 동의한다. 마누라가 집에서 공지영 책보는 게 싫다는 가부장적 남편 (어쩌면 이혼 당할까 두려워하는) 들이 제법 된다는 소문도 있다. 그네들에게는 그래도 전혜린보다는 낫지 않냐는 게 위로처럼 들리려나 비아냥으로 들리려나 알 수 없다.

  돈이 많다고 까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지, 비슷한 맥락에서 책이 잘 팔린다고 욕하면 되나?  그런데 타겟을 미묘하게 조정하여, 공지영에서 공지영의 책만 잘 팔리는 세상을 욕하는 것이라면 보다 옳아보인다. 몇 권 안 읽었지만 공지영은 그래도 스스로 삶을 살면서 보고 느낀 만큼, 딱 그만큼을 솔직하고 쉬운 이야기로 풀어낸다. 도무지 잘 읽히지 않는 어려운 글 — 대개는 작가가 그 거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역량이 안 됨에도 억지로 글을 짜내기 때문인 듯 하다– , 괜히 어설프게 파격을 시도하는 글들과 비교하면,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책을 내놓기만 하면 몇십만부, 통산 출판한 모든 책의 판매량이 근 1000만부에 달한다고 하니, 평단에게 섭섭할지는 몰라도 그녀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굉장히 후한 셈이다.

  공지영 이름만으로도 책을 팔 수 있을 정도라고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큰 딸 위녕 (위? 아마도 위기철과 낳은 딸인듯) 에게 쓴 편지를 묶은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는 제목부터 딱 잘 팔리는 카피다. 비슷한 걸로 류시화의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희경의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 등이 떠오른다. 예전에는 가지각색의 사랑 얘기를 쿨하게 또는 무덤덤하게 보여주던 일본 편의점 소설들이 상종가였다면 요즘은 치열하고 뜨겁게 현재를 살고 사랑하라는 일침들이 인기를 끄는 양상이다. 이러나저라나 20~30대 여성에게는 ‘사랑’이 들어가면 잘 팔리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부모-자식 얘기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등과 함께 여러 버전으로 나와 잘 팔리는 모양이다.

  한편으로 ’88만원 세대’ 라는 말로 부각됐던 세대론이 책 시장에도 어느 정도는 통한다는 생각을 한다. 취업도 연애도 잘 안 되는 힘겨운 젊음들에게, 386 작가들, 특히 잘 나가는 여성 작가들이 마구 던져대는 삶의 지혜와 구호들은 정말 간지나게 들린다. 이들이 입을모아 강조하는 카르페디엠, 방황할 지언정 상처받을 지언정 겁먹고 도망치지 말라는 당부들은,  각박한 현실에 위로가 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다시금 희망을 가져보는 계기가 되기도 할 것이다.
 
  “위녕, 힘들다고 했지? 그래 힘들지. 누구나 그 시절을 다 힘들게 보냈어. 그런데 너의 힘듦은 진정 어디서 오니? 그래 이왕 힘든 거, 힘든 시간을 나를 분발시키고 나를 향상시키는 기회로 삼아 보면 어떨까? 미안하다. 그것이 더 힘든 걸 알면서도 또 이렇게 지당한 소리를 늘어놓게 되었구나. 그러나 위녕, 사실을 말하면 엄마는 네가 이 시기를 좀 잘못 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도 돼. 너는 아직 젊고 또 많은 기회가 있을 거야. 이 한해로 너의 모든 것을 판단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도 안 되고…사랑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엄마의 미안한 사랑을 보낸다.” (공지영,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사랑할 것이다, p. 110)

  고3인 딸에게 이런 편지를 적는 엄마의 마음은 분명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하지만 냉소적으로 바라보면 그만큼 부담스러운 관심이자 부모, 인생의 선배로서의 과한 자기현시욕이 되기 쉽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다, 실패를 많이 해도 괜찮아.  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엄마 그래도 상처 안 받고 잘 되는 게 더 좋은 거 아니냐?” 고 묻는 딸 위녕의 질문은 그래서 영리하고 이런 문제를 잘 드러내준다. 실패를 각오하고 뻔히 보이는 불구덩이에 뛰어들라는 어른들이 어찌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자꾸 실패하고 상처받아도 그걸 밑거름으로 잘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은, 적어도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하지 않고, 젊은 욕심과 어리석음, 멋있게 포장해야 용기와 패기로 나도 모르게 무모한 일들을 벌여참담한 실패를 맛보고 그제서야 깨닫게 되는 고생한 뒤의 훈장과도 같은 게 아닐까. 망할 줄을 모르고 제 뜻대로 한번 확신에 차서 도박을 걸어보고 실패를 맛 보는 것과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엄마는 겁먹지 말랬으니까 애써 두려움을 참아보며 그 길을 걷는 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아래는 공지영의 딸 위녕이, 고등학생 시절 미니홈피에 적었던 글이라고 한다.


이런 남자


첫번째. 커피와 차를 즐기는 남자가 좋다.
단, 커피는 블랙커피를 마셔야한다. 설탕이 들어간 단 커피라던가, 프림이 들어가 콜레스테롤이 높은 커피를 마시는 남자는 싫다. 차는 향이 좋고 투명한 차로. 과일차도 좋지만 허브류의 차가 좋다. 단순한 녹차도 좋지만 민트티나 국화차를 마시는 남자가 좋다.


두번째. 책을 읽는 남자가 좋다.
단, 인터넷 소설은 당연히 안된다. 싸구려 연애소설도 안된다. 남들이 좋다니까 읽는 소설도 안된다. 자신만의 문학관을 가진 남자가 좋다. 신을 믿지 않아도 성경을 한번쯤 읽어본 남자가 좋다. (성경은 존재하는 최고의 문학작품이다) 진지한 작품을 읽으며 좋은 귀절에는 색연필로 밑줄을 그어놓는 남자가 좋다.


세번째. 글을 쓰는 남자가 좋다.
단, 욕설이 들어간 글은 사절이다. 잘난척 하기 위해 앞뒤도 안맞게 유명한 말들만 조합하는 남자는 더욱 질색이다. 조용하고 나긋한 글을 쓰는 남자가 좋다. 시가 아니라도 좋으니 시적인 글을 쓰는 남자가 좋다.


네번째. 담배피는 남자가 좋다.
단, 지나친 골초는 싫다. 입이나 몸에서 담배냄새가 확확 끼치는 남자도 싫다. 하루에 반갑정도만. 엑스포 피는 남자도 사절이다. (엑스포 향기는 최악이다) 담배를 뻑뻑 빠는 남자도 안된다. 여유로운 담배를 즐기는 남자가 좋다. 연기로 도넛도 만들줄 안다면 더 좋겠지.


다섯번째. 맥주와 와인을 즐기는 남자가 좋다.
단, 소주는 절대 안된다. 소주의 맛을 아는 사람은 인생의 쓴 맛을 아는 사람이다. 그 쓴맛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은 안된다. 가벼운 맥주나, 식사 전 분위기 있는 와인을 마시는 남자가 좋다. 와인의 향을 느낄줄 아는 남자가 좋다.


여섯번째. 신을 믿는 남자가 좋다.
단, 사이비 종교는 안된다. 자기 종교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않고 겉멋으로 신을 믿는 사람도 질색이다. 모든 종교의 목표인 ‘선’을 실천하는 남자가 좋다.


일곱번째. 센스있는 남자가 좋다.
단, 눈치없는 남자는 센스없는 남자보다 더 싫다. 옷입는 센스는 봐줄수 있다. (내가 골라주면 되니까) 두뇌의 순발력이 있는 남자가 좋다. 재치있는 말로 나를 즐겁게 해주는 남자가 좋다.


여덞번째. 진보적인 남자가 좋다.
단, 보수적인 남자는 위의 모든 조건을 갖춰도 싫다. 정치적으로, 사상적으로 진보적인 남자가 좋다. 진보적인 사람만이 진정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할수 있다. 그래 아무래도 좋으니 제발 한나라당이 좋다고만 하지 마라. 여자가~ 로 시작하는 말도 하지 마라.


아홉번째. 서울 남자가 좋다.
단, 그냥 서울남자가 제일 무난하다는 것 뿐이다. 솔직히 상관 없다. 하지만 서울남자가 제일 무난하다. 그래, 전라도 사람도 좋고, 충청도 강원도 다 좋은데 경상도 사람은 아니면 좋겠다. 경상도 남자는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보수적이고 (다 그렇다는건 아니지만) 꽉 막혀있다. 경상도 사람들은 진보적인 사람조차 깊은 내면에 막혀있는 무언가가 있다. 그게 날 답답하게 한다.


열번째. 내 남자가 좋다.
단, 너무 나한테만 매달리는 남자는 매력없다. 나에게 적당히 매달리는 남자가 좋다. 바람피는 남자는 트럭 열대로 가져다 줘도 사양이다. 나를 위해 해주는 무언가가 있는 남자가 좋다.



——위녕은 어떤 여자, 어떤 사람일까.


덧.

  공지영의 옛날 작품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인간에 대한 예의 이런 책들과 비교해 볼 때  공지영이 확실히 이야깃거리가 떨어져보인다. 눈물 짜내려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나 사랑후에 오는 것들 (흔히 냉정과 열정사이 재탕간지라고들하는) 등 내가 본 최근작들도 다 실망스러웠다. 그런 의미에서 공지영은 정말 재능이 뛰어난 작가는 아닐 듯 하다. 작가적 상상력이나 여행, 독서, 견문 등을 통한 2차 체험, 세상에 대한 놀라운 관찰과 통찰력으로 새로운 작품을 내놓기에는 역량부족일지도 모른다. 자기 삶과 주변의 얘기를 재주껏 늘어놓다보니, 즐거운 나의 집 이라는 소설은  전 남편이 짜증나서 태클도 걸었다. 하긴 괜히 사람들이 개인사를 들먹이는게 아니긴 하겠지.   이렇게 보면 결국 공지영의 ‘르포’식 소설 ‘도가니’가  우행시 때와 마찬가지로 계속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공지영은 계속 험하게 까이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도가니도 영화로 만든다는데.


참고 링크

http://photohistory.tistory.com/4140
http://www.ablenews.co.kr/News/NewsContent.aspx?CategoryCode=0006&NewsCode=000620090804015038171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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