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출처-[hintpopup]http://blog.naver.com/mary0704/40002051595 에서 가져왔음 [/hintpopup]
사람이 한 없이 우울해 질 때가 언제일까 고민하다가 간단히 이런 결론을 얻었다. 과거에 스스로 가치있다고 생각하거나, 불가피하게 해야만 한다고 느껴, 꽤 노력을 기울였던 일을 현재에 와선 덧없이 무효한 일이다, 후회된다고 말할 때가 아닐런지. 꿈도 사랑도, 공부건 진로건, 우정이든 혁명이든,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자신이 발디딘 현실에서 스스로의 신념과 어긋나는 말을 툴툴 내뱉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정말 슬프고 우울한 일이다. 덧붙여 미래마저, 몇 달 몇 년이 아닌 십년 후를 내다보아도, 배꼽에 낀 때처럼 희망이라곤 찾기도 힘들지만 손에 얻긴 더욱 힘들어 보일 때라면 더욱 그렇다. 이런 시간의 무한선상의 어딘가에 놓여진 나는, 이제 걸어온 길은 다 무너져내려 돌아갈 수도 없고, 나아갈 길은 깜깜하고. 나는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
현자들이 입버릇처럼 중시하던 “현재”가 와르르 무너져내린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건데, 그것이 내게 얼마간 태클건다고 해서 “세상에 정의란 존재하는거니? 국가가 내게 이럴 수 있냐느니.” 하는 신세한탄은 가당치도 않은데 왜 하고 있는건지 알 수가 없다. 자괴감에 빠진다. 동시에 억울하다. 아니 신발 대체 무슨 이유로 조낸 새벽 잠 설쳐서 공부했단 말이냐. 과분한 보상은 바라지도 않아. 적어도 내가 겪은 고통만큼 어느정도 돌려주는 건 있어야 정당한거 아냐? 이런 생각은 물론 오늘도 치열히 삶을 채워가는 이들에 대한 모욕이다.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는 아침발기처럼, 가당찮은 본전 생각이 고개를 쳐 든다. 세상은 넓고 할일도 많다는데, 공사가 다망한 그야말로 공公, 사私가 다 망亡해버린 이 시점에, 나는 왜 여기 있단 말인가.
병증이 이러한즉 처방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노블레스 오블레주다.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며 위안이라도 삼으라는 거야 뭐야, 드러워도 유능하고 똑똑한 니가 참아라. 그러면서 서로 위안하는 꼬라지라니 웃음이 난다. 내가 정말 잘난 놈이어도 우스울 일인걸 잘난 것도 없으니 이거 완전 코메디야. 그래 신발 결국 나도 다를건 하나도 없어. 당연한 건데, 그런데, 나는 뭐 그리도 억울하단 말인가.
연애?
교복 입고 연애하던 시절은 벌써 아득하다고, 여전히 생생하다고도 할 수 있다. 소모적인 관계가 아니라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자고, 어른들은 몰라요. 돌아보니 여자친구의 공부를 도우려고 그렇게 하면 같이 서울로 좋은 대학가고, 그래서 그 애가 못하던 영어 문법, 손수 깨알같이 정리해서 보내주던 내가 너무 바보 같다. 우울함은 사람을 치사하게 만들고 유치찬란치사뽕한 제 모습을 발견하면 더욱더 우울해지고 만다. 아, 너무 후회된다. 그 시간에 그냥 손잡고 좁아터진 시내를 활보하다 롯데리아나 쳐 먹고, 구석진데가서 입술부비고 교복 치마 걷어올리는게 훨씬 영양가 있었을건데 말야. 그 쪽이 훨씬 진실한 사랑인건데 말야. 나는 무슨 허상을 쫓아 살았단 말인가. 이렇게 헤어져버리고 이렇게 남이 되버릴 걸 왜 좀더 뜨겁게 사랑하지 못했단 말인가, 왜.
전역?
그것만이 살 길이라고 누가 그러든. 그냥 먹는 것만 생각해보자. 딱 니가 울타리 밖으로 나갔다. 넌 ㅈ도 없는 쌔까만 복학생일 뿐야. 어디서도 니들을 반기지 않지. 오랜만에 보는 사람에 대한 한 마디 인사 이상의 것을 바라는 너의 그 기대는 도대체 어디서 쳐 나오는 것일까. 더 말할 것도 없다, 인생은 그렇지, 이렇게 듣는 것보단 직접 나가봐라 알게 될 것이다. 결국 너희끼리 뭉쳐서 배드민턴 장에서 족구나 하고, 수업듣고 내려와선 꼬름한 순대국밥집에 몰려가 밝은 날부터 낮술이지. 맞은 편 양식점에서 신의 아들인 니 친군 여자애가 썰어 넣어주는 롤 돈까쓰를 음미하는 데 너는 쓴 소주 마시고 국밥 국물을 들이킨다니까.
미래?
좋아. 뭐 인생에 겉멋만 필요한 건 아니니까. 피차 취직하고 사회에 첫발 디딜 입장이니까. 아니, 사실 넌 정말로 진짜로 돈까쓰보다는 순대국밥을 좋아하니까 상관없잖아. 게다가 여자는 요물일지도 몰라. 그러니 생각이 이에 미치면 넌 민간인 따라잡기는 관두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미래이건만 마음 급한 우리의 미래는 현재와 같아서, 우리는 현재 대신 미래를 사는 것으로 마음의 안녕을 찾으려 한다. 어쩜 울타리 안에서 마냥 저녁을 기다리는 거랑 달라보여도 똑같아. 우리는 학점을 딴다. 소개팅을 한다. 영어공부도한다. 알바를 한다. 레포트를 쓴다. 우왕좌왕.
어쩜 울타리 안에서 마냥 저녁을 기다리는 거랑 달라보여도 똑같아. 시간은 흘러 나이는 먹고 조낸 고생하는 것도 같고(그렇게 느끼는 것이지) 가끔 행복하기도 한데, 졸업날은 성큼 다가와버리거든. 그럼 난 뭘 할 수 있을까? 괜찮은데 걸리면 그냥 거기 취직하기? 아님 좀더 신분이 보장되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시험을 보는 것? 아님 여전히 갓 스무살때마냥 그렇게 시시한 인생 살고 싶지 않다며 똥폼을 잡고는 대학원으로 도망치기? 가서 막내생활하고 뺑이치다가 적당한 곁가지 잡아서 쪼물딱거려, 적당한 논문내고 강사자리 얻고 교수자리 얻기위해 손바닥 닳도록 문대기? 그럼 어느덧 나이는 30대 중반?
어디서 부터 잘못된 거야, 꿈 많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지닌 소년의 인생은.
결국 이 땅의 정의란게 고작 이런거라면,
독기를 품을 수 밖에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