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2010
 

  대한민국 원주민과 100도씨. 최규석의 단행본을 연거푸 두 권이나 읽었다. 둘리 원작 20주년을 기념하며  2003 공룡둘리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 가 나온 뒤 벌써 7년여가 흘렀다. 당시 넷심(마치 民心처럼)의 큰 중심축이었던 딴지일보를 통해 이 작품이 소개되고 일파만파 ‘펌질’이 되던 때가 기억난다. 일요일마다 아기공룡둘리를 보며 자랐던 나도 소문을 듣고서 이 슬픈 오마쥬를 봤었다. 귀여운 캐릭터들이 주었던 어린시절의 웃음을 뒤덮는 암담한 현실 묘사에 나는 온 몸의 털을 쭈뼛거리며 소름이 돋았다.  대학원에 입학한 뒤, 우연히 선배의 책꽂이에서 발견한 “습지생태보고서” 는 잊고 있던 최규석의 만화였다. 작가 자신을 포함한 캐릭터 하나하나가 비록 혼자 살지만 역시 자취를 하고 있는 내 마음을 후벼팠다. 특히 늘 똑똑한 듯 합리적으로 상황을 정리하는 가상의 캐릭터 녹용이가 인상적이다. 속물적이지만 제 꾀에 당하고 있는 어쩔 수 없는 녹용이의 모습에 최규석도, 나의 내면의 목소리도 비추어 보게 된다는 점이 인상깊다. (연구실에서 이 선배가 정한 캐릭터도 녹용이다.)


  만화를 잘 안 보는 나도 자꾸 만나게 될 수 밖에 없게 되는 만화라면, 최규석은 세상이 말하는 소위 성공한 만화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에게 이런 타이틀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도 그가 그런 성공을 바라보며 살 것 같지도 않고, 또 그렇다고 그가 부와 명예를 누릴 만큼 한국만화계가 좋은 형편이 아니라고도 한다. 꼭 그런 성공이 아니더라도 무엇보다 그가 스스로 마음먹고 그릴 중장편을 기대하는 의미에서, 그에 대한 찬사는 조금 미루고만 싶다. 차갑게 말해 데뷔작과 대회출전작 등을 모아담은 단편집 하나와 자신의 청춘일기를 옮겨담은 습지생태보고서, 가족사를 기록한 대한민국 원주민, 민주화 교육서적으로서 100도씨. 그의 재치와 기지가 온전히 담긴 큰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그래서 최규석이 어떻게 읽히는지가 문득 궁금하다. 사람들은 흔히 최규석의 강점이 그가 그려내는 가난과 궁핍에 비하여 감상주의로 흐르지 않고 절제의 균형을 뽐내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는 담담하고 여유있어 보이고, 유머와 위트도 결코 잃지 않는다. 그의 이런 시선은, 스스로 고백하듯 최규석 본인 나이 또래의 주류의 삶을 ‘모른 채로’ 어려서 대한민국 원주민의 삶을 체험했기에 가질 수 있는 독특함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런 위치의 자신이 자기 자식을 마주하게 될 장면을 상상하며 다음과 같이 걱정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없지만 내 마음 깊숙한 곳에는, 도시에서 태어나 유치원이나 피아노학원을 다녔고 초등학교 때 소풍을 엄마와 함께 가봤거나 생일파티라는 걸 해본 사람들에 대한 피해의식, 분노, 경멸, 조소 등이 한데 뭉쳐진 자그마한 덩어리가 있다. 부모님이 종종 결혼을 재촉하는 요즘 이전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어쩌면 존재하게 될지도 모를 내 자식을 상상하게 된다.


  상상하다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 아이의 부모는 모두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고 어버지는 화려하거나 부유하지는 않아도 가끔 신문에 얼굴을 들이밀기도 하는 나름 예술가요 아버지의 친구라는 사람들 중에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인사들이 섞여 있어 그 아이는 그들을 삼촌이라 부르며 따르기도 할 것이다. 엄마가 할머니라 놀림 받지도 않을 것이고 친구들에게 제 부모나 집을 들킬까봐 숨죽일 일도 없을 것이고 부모는 학교 선생님과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할 것이며 어쩌면 그 교사는 제 아비의 만화를 인상 깊게 본 기억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간혹 아버지를 선생님 혹은 작가님 드물게는 화백님이라 부르는 번듯하게 입은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들 것이고 이런저런 행사에 엄마아빠 손을 잡고 참가하기도 하리라. 집에는 책도 있고 차도 있고 저만을 위한 방도 있으리라.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지도 않을 것이고 고함을 치지도 술에 절어 살지도 않을 것이고 피를 묻히고 돌아오는 일도 없어서 아이는 아버지의 귀가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 아이의 환경이 부러운 것도 아니요, 고통 없는 인생이 없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니다. 다만 그 아이가 제 환경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 것으로 여기는, 그것이 세상의 원래 모습이라 생각하는, 타인의 물리적 비참함에 눈물을 흘릴 줄은 알아도 제 몸으로 느껴보지는 못한 해맑은 눈으로 지어 보일 그 웃음을 온전히 마주볼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나는 이 지점에 최규석이 읽히는 지점과 고민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미 100도씨라는 6월항쟁 기록만화를 중고생들에게 선보였다. 그리고 이 90년대생의 눈에 만화는 어쩌면 그저 교과서나 학습서처럼만 느껴질 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정말 모르는 일이다. 그가 몇 장 덧붙인 정치참여교육 부록처럼 요즘 아이들은 때로 천진난만하게 광장에 모이기도 한다. 정말 문제는 이들의 눈에 만화는 그런 옛날 이야기로만 느껴질 것이라고 믿는 나 자신, 작가 자신의 모습이다. 최규석은 부모와 형제자매에 빚진 마음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작가의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데, 작품이 갖는 독특한 아우라가 있다. 도시화, 산업화의 역군이었던 부모 밑에서 도시생활을 하며 자라나 지금도 도시에 살지만 여전히 이 사회시스템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채워가는 소시민의 입장에서….. 수긍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힘, 읽는 이로 하여금 과거를 기억할 역사적 사명이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 딱 이 정도에 최규석이 놓여있는 게 아닐까.

  한 사람의 독립적인 인간은 제 삶의 역사에 대한 집요한 조사와 성찰에 의해 점차 완성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때 중요한 것이 담담하고 의연한 태도가 아닐까 한다. 부유한 가정에서 부족함 하나 없이 구김없이 자라났다는 것이 자랑이 아닌 것 처럼 가난과 궁핍함도 분명 자랑이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때때로 왜 나는 간지나게 좀더 가난하게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을까 하는 철없는 생각을 품어본 적이 있다. 여유롭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쪼들리지도 않았던 내 삶은 부모님의 무한 희생에 기댄 점이 크다는 것을 안다. 1학년 입학등록금부터 마련하기에 바빴던 친구 부모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런 식의 나 또한 딱히 잘 난 것도 없으면서 어설피 나보다 ‘못한’ 친구들을 배려해야한다는 도덕적 강박은 꽤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고, 지금도 나는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스스로 느끼기에 정말 우스운 일 중에 하나다.

  제 삶의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냐는 말에 대한 주변의 생각들을 종합해보면, 어떤 친구는 그건 니가 출세라도 하고 나서야 자서전적으로 너의 불우한 환경과 그걸 극복한 아름다운 얘기를 정리하는 것 같은 거겠지. 하는 냉소적인 반응과.., 너 정도면 얘깃거리가 없어 뭐 특별할 게 없는 건데. 평범함의 범주에 있지.. 하는 무사안일함 정도로 요약된다. 나는 이런게 조금 더 웃긴 것 같다. 내 삶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나는 1학년 사학입문 강의시간에 과제로 이런 일을 글로 남겨본 적이 있지만. 대개는 부모님과 마주한 밥상머리에서, 명절 때 모인 가족친지들의 옛날 이야기와 그들 현재 삶의 모습에서 나의 과거 조각을 하나씩 하나씩 모으고 곱씹게 되기 때문이다.

  2 Responses to “최규석의 대한민국 원주민,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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