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022006
 

송희석님의 포스트 페미니즘 을 읽다가
모던하지도 않은데 포스트모던은 또 뭐냐고 쏘아붙이던 후배에게
난 임마 포스트라곤 포스트 코코볼 밖에 몰라-  따위의 허접한 개그를 했던 게 생각납니다.
아무튼 진지하게(!), 저는 사상사에는 좀 젬병인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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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지루함


여성주의도 이제 닳고 닳은 얘기라서, 페- 자만 나와도 지적긴장감이 푹 꺼져버리곤 한다. 


군 가산점 폐지 문제는 여자도 군대에 가야하냐는 문제로 건너가 감정싸움을 일으킨다. 호주제 폐지는 별로 얘깃거리가 없는 문제여선지 자기도 양성평등주의자이며 생각만큼 꼴통은 아니라는 이미지를 원하는 정치인과 언론은 괜히 호들갑이다.  게다가 일체의 성폭력 – 성매매 금지법, 부부 강간 문제와 같은 성性 문제에 이르면,  생생하고 추악한 성 충동,행동의 현실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없다.  구성애아줌마의 성교육 수준에서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만 하고 있으면,  사회적 매장 같은 큰 위험을 피할 수 있을 뿐더러 고상함도 유지할 수 있으니까.


이슈만 쫓을 게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를 캐야한다면, 이내 그것도 지루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가른다고 갈라지지도 않는, 재미말고 별로 효용이 없는 편 가르기 놀이라도 좀 해본다.


숫자가 꽤 되는 여성주의의 프로토타입
– 여자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성 역할은 문화에 따라 다양하다. 애초에 남성성이나 여성성 따윈 없고 사회의 영향일 따름이다.


대세가 남녀평등이라지만 아무래도 기분이 떱떠름한 남자들
– 신체적으로 다르게 태어나는데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남자를 여자로 잘못 알고 길렀는데도 남성성이 발현된다는 실례가 있다. 차이는 인정해야 한다.


살벌한 직업세계에서 살아남고 동시에 살림까지 잘하는 슈퍼우먼들
– 요즘에는 여성적 특성이 환영받는데, 굳이 여성주의운동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여자들이 경쟁에 유리하지 않은가?


독서와 말 장난을 좋아하는 대학동기들
– 우리가 남성적이라 부르는 특성들을 여성적이라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니 (언어의 문제에서), 이름붙이기 나름이겠지만 “남성적”이라는 말은 항상 우월한 냄새를 풍기곤 한다.


여자임에도 큰 구김살 없이 잘 자라온 여자친구들
– 우리가 여성적이라 부르는 특성들을 남성적이라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니 (현실을 보아도), 이름붙이기 나름이겠지만 “여성적”이라는 말은 왠지 듣고 싶지 않다.


노동절 행사에 꼭 같이 가자고 채근하는 녀석들
–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이 없는 여성운동은 공허하다. 흔한 차별대우에서부터 성 상품화 문제에 이르기까지 계급의 문제를 빼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결국 남자도 몸을 파는 세상이 되지 않았나.



… 뭐가 많긴 많다, 생각 안나는 것 까지하면 더. 아마도 페미니즘에 대한 이론적 바탕이 부족한 탓이겠다. 그래서 희석님의 포스트 페미니즘은 좀 재미가 있을지 기대된다.



1. 불만과 반성


친구가 그랬다. 여성주의운동은 여성이 하는거지, 내가 왜 하냐구.  그래, 여성이 주가 되겠지하고 넘겨짚는데, 주가 되는 여성이 아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고 나는 볼멘소리를 한다.  여성이라고 별로 손해본 것 없는 것같은 똑똑하고 당찬 사람들이 앞장서는 우리의 여성운동은 과연 어떤가.


지금도 남녀평등이라는 유행을 쫓지 못하거나 과감히 쌩까는 둔감한 남자들과  이미 체화되어 불평등의 양산에 일조하는 여성들 앞에서 대다수의 여성들은 속수무책일 뿐인데.  언어는 사고의 반영이라며 거슬리는 낱말 하나에 매달리는 것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만 하는 더 중요한 일이 많다.


대강당 앞의 농구장을 지나다니다보면, 여자들은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공과 고압적인 고함소리와 땀냄새에 마초적 위협을 느낀다해서  농구골대를 모조리 치워버리고 구석탱이에다 철조망을 두르고 우레탄까지 깔린 좋은 농구장을 만들어 주는 수고로움보다는  골대 한 두개를 없애고 거기에 여성전용 배드민턴 코트를 만들어 같이 노는 게 나았겠다 싶은 건, 꼭 내가 남자라서 하는 생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여성주의가 여성만의 것이라 생각하는 내 친구같은 놈이 많으니까 피곤하고, 자꾸 말썽이 생긴다.  그래서 남자도 좋아하고 반기는 여성주의가 필요하다. 결국 여성주의는 여성의 권리를 남자의 그것과 비교해서 비등비등해지도록 맞추자는 얘기라는 건 약발이 떨어진 것 같다.  이러다가 주도권을 여성에 빼앗길 거라는 불안감을 떠 안은 남자들은 “여휴”만 지을 게 아니라 “남휴”도 지어달라는 허튼소리를 해 댄다.   양성평등이 이룩돼야 세계 기준으로 남성의 평균 수명이 대단히 짧은 우리나라 남자들도 강요된 남성성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맘껏 눈물도 흘리고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는 분명 부족하다.  글쎄 이런 맥락에서 희석님이 “차이와 다양성, 상호성과 관용성, 고뇌하는 책임성과 보살핌의 부드러운 마음, 현실긍정과 생명성의 기호등이 요청되는 생명존중의 시대” 를 꺼낸 것일까.


대체 뭐가 무언지 모르겠지만 강동원 같은 꽃미남, 베컴의 메트로섹슈얼, 김주혁이의 위버섹슈얼, 이준기의 크로스섹슈얼도 죄다 인기를 끄는 데 어느 장단에 맞춰야할지 몰라 괴롭다는 건  어쩜 아직도 구닥다리같은 남녀구별에 빠져있다는 반증이다. (쟤네들은 좋아하면서도 동성애나 트렌스젠더, 크로스드레서 이러면 바로 거부감을 표하는 건 뭘까) 


  그런 걸로 피곤해할게 아니라 차라리 여자친구 집에 안 바래다주기 운동 따위에나 동참하는 게 낫겠다.   여자들에게 인기 없어지는게 두렵거든 원래 옳은 길은 고독한 법이라고 위안이나 삼으면서 너그럽게 웃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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