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22009
 

  2009년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그의 삶은 그야말로 우리 현대정치사 그 자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분노하여 정치에 입문했고, 40여년간 박정희, 전두환 등 군부, 신군부 세력과 맞서 싸웠다.

  그리고 그 열매를 함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 온 동료 김영삼과 다투다 결국 87년 대선에서 신군부 노태우의 최저득표율(36%?) 당선으로 놓치고 말았다. 김영삼도 훌륭한 민주투사였지만 그래서 그의 변절은 더욱 극적이다. 노무현의 소신있는 반대로 그나마 요즘도 회자되는 3당 합당을 통해 김영삼은 노태우와 살림을 합친다. 518민주화운동의 원인이었던 그가 그 운동의 적과 손을 잡다니 이게 얼마나 극적인 자기부정인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욕망이 강했기 때문이겠지만 그 태생적인 한계와 무능력함은 김영삼 정부의 최대허물인 외환위기와 겹쳐진다.

  그래서 김대중이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외환위기 후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더욱 돋보인다. 그는 공부를 많이 했고 변절하지 않은 채로 꿋꿋하게 싸워와 마침내 우리 헌정사상 최초의 민주적인 여야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 대통령제 공화국의 대통령이 1948년 정부수립후 40년이 지난 제15대 대통령에 이르러서야 여야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니 그 사이의 질곡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 중반에 태어난 나, 내 또래들은 당연히도 초딩 이전의 기억이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중학생이 된 90년대 말이 되어서야 사춘기를 슬슬 겪기도 했을테고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도 조금씩 싹 텄다. 뉴스를 제 정신으로 볼 수 있을 때에는 전두환과 노태우가 심판받고 있었고, 부모세대가 물려준 3김시대 지역감정을 갖고서 IMF경제난을 겪었다. 정치인에 대한 일반적인 비호감과 냉소는 어찌보면 자연스럽다. 우리는 여지껏 존경하는 국내 정치인 한 명을 가지지 못했다.

  소위 3김 중 한 사람, 빨갱이, 지역감정, 권력형 친인척 비리, 불투명한 대북협력사업 등을 들어가며 그를 구시대적 정치인 중 한 명으로 끌어내리고야마는 비겁한 사람들을…   나는 오랫동안 미워해왔다. 국장 기간 동안 그리고 오늘 영결식까지 아마도 온 국민과 함께 비겁하게 살아가는 자들 또한 눈물을 보이고 그의 영면 앞에서 한 목소리로 고인의 유지를 받들겠다 목소리를 높이며 화합할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보여준 무한한 화해와 용서의 정신이 부디 그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반성과 변화가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생전의 잘못 하나하나가 어떤 사람을 존경할 수 없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일체의 흠결도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 사람이 일생을 두고 추구한 가치, 그리고 그에 충실한 삶의 궤적. 이것이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존경의 원천이다.
  하물며 쪼잔하게 따지더라도 어떻게 김 전 대통령의 후보 단일화 실패가 경선 불복 후 단독 출마와 견주어질 수 있는 문제인가. 정계은퇴 번복의 거짓말을 했다고 철새정치인의 거짓말과 갈을 수 있을까. 친인척 비리가 본인의 천문학적 액수의 비자금 문제와 비교가 될까.

  올해 우리 사회 큰 인물들이 연이어 우리를 떠났다.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그리고 그들은 동시대를 함께 한 존경스러운 시대의 지도자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영원히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어느덧 인물 의존적인 정치양식은 끝나가는 시대가 왔다지만, 우리에게도 기억하고 추모할 소중한 어르신들이 있음에 감사한다.

  그의 마지막 공식 연설을 조용히 마음에 새겨본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2009년 6월 11일… 6 15 선언 9주년 특별 강연… 매우 수척해보이고 언변의 날카로움도 무뎌진 듯하지만 메시지는 분명하다.

아래는 부록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사


1997년 대선에서 노무현의 김대중 지지연설

“조금 더 있는데…발이 저린 사람들 (제 발 저린 사람들), 좀 봐주기로 했습니다.” 바로 이 썩소가 행동하는 양심이자 용서의 마음인가? ㅎㅎ

 Leave a Reply

You may use these HTML tags and attributes: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