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082004
“거짓과 더불어 제 정신으로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을 택하겠다.”
– 버트란드 러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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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1세 때 이미 종교에 대해 회의했다. 수학의 확실성을 접하고 기뻐했으나 기하학의 공리(公理)가 증명할 수는 없고 다만
믿어야만 한다는 데 좌절했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확실성이나 불확실성을 가지고서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머리가 가장 잘 움직일 때 수학을 했고, 조금 나빠지면서 철학을, 그리고 더 나빠져서는 역사와 사회분야에 손을 댔다. 그리고 아주 나빠지기 전에 교육문제에도 눈을 돌렸다.”
좌파였으나 소비에트 체제를 혐오했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 공산주의 등 세계의 모든 ‘종교’는 진실이 아닐뿐더러 인류에 해로운 것들이다.”
그는 성(性) 개방론자였다. ‘가장 음탕한 사회에서 금욕주의가 싹튼다.’
서구의 현대사에서 그는 진정한 의미의 개인(個人)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