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SENDRUCK Gil; MARKSON Lori (2001), Children’s avoidance of lexical overlap: A pragmatic account, Developmental Psychology. 2001 Sep Vol 37(5) 630-641
Abstract
Children tend to choose an unfamiliar object rather than a familiar one
when asked to find the referent of a novel name. This response has been
taken as evidence for the operation of certain lexical constraints in
children’s inferences of word meanings. The present studies test an
alternative-pragmatic-explanation of this phenomenon among 3-year-olds.
In Study 1 children responded to a request for the referent of a novel
label in the same way that they responded to a request for the referent
of a novel fact. Study 2 intimated that children assume that labels are
common knowledge among members of the same language community. Study 3
demonstrated that shared knowledge between a speaker and listener plays
a decisive role in how children interpret a speaker’s request. The
findings suggest that 3-year-olds’ avoidance of lexical overlap is not
unique to naming and may derive from children’s sensitivity to
speakers’ communicative intentions.
Reaction paper 5. Diesendruck & Markson (2001)
지난 논문에 이어, 상호배타성 가정과 화용론적 접근이 상충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을 이어갈 수 있었다. 두 논문 모두를 읽어보았을 때 어느 쪽도 한 입장의 완전한 우세로 다른 쪽의 주장을 기각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상호배타성의 가정은 여러 반복된 연구에 의하여 재검증되었지만, 지난 수업에 논의한 대로 좀더 강한 화용론적 단서를 주었을 때는 그 단서에 의존하여 익숙한 물체를 집는 경향이 확실히 나타난다. (선생님의 말씀.) 두 접근이 상충할 때, 아동이 주저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나, 이번 논문의 Study 2에서 약간 평균점수가 낮고 편차가 큰 현상 (2명이 object A를 잡았음)을 고려해 볼 때, 역시 상호배타성 제약과 화용론적 접근이 정보처리과정에서 실시간으로 종합되어 처리된다는 가정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연구의 초점을, 이런 처리과정 속에서 두 가지 접근법이 어떤 순서에 의하여, 어떤 변수에 의하여 하나의 물건을 집는 결론으로 종합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옮겨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단어의미추론에서 상호배타성제약과 의도의 역할, 이현진(2005)를 보면 의도가 없는 조건에서는 상호배타성제약이 지켜지고, 의도가 분명히 표시되면 상호배타성 제약이 보류되며, 의도가 애매하게 암시적으로 주어졌을 경우에, 대상이 인공물인 경우에는 상호배타성 제약을 사용하고, 대상이 사람일 경우에는 화용론적 단서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는 실험 상황과 물체를 좀더 다양하고 자연스러운 상황으로 바꿀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혹시 단어학습상황이라는 상황 자체가 아동으로 하여금 상호배타성 제약을 최우선전략으로 사용하도록 설정한 것은 아닐까? 특이하게 생긴 생소한 물체를 앞에 두고, 반복해서 “이걸 봐, 이건 zev야, 봐봐 이게 zev야, 이것은 zev야.” 라고 말하는 상황은 굉장히 어색하고, 아이는 이것을 “단어학습모드-일종의 공부” 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모르는 단어를 직접 묻고 답을 듣거나, 다른 사람들이 대상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 배우는 경우가 많지, 우리가 어떤 물체를 앞에 두고 그 단어를 주입시키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자연스러운 놀이상황에 실험자와 함께 놓고, 실험자가 아이에게 익숙한 사물을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거나, 새로운 사물을 함께 놀며 같은 이름으로 불러놓고 곧 다른 이름으로 바꿔부르는 등 하면서 아이의 반응 (실험자의 말을 고쳐준다거나. 이상하게 여긴다거나)을 살피는 것이 흥미로울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 fact에 기반하여 아이가 상황을 추론하는 것은 다분히 어른 실험자의 합리적인 추정이라서, 아이도 과연 그렇게 의도를 파악해서 익숙한 것을 잡은 것이라고 섣불리 결론내리기가 어렵다. 따라서 아동에게 좀더 익숙하고 명백한 화용론적 단서(그렇지만 시선이나 건드리는 것은 아닌) 를 주고 아예 단어로 실험하는 것은 어떠할까? 예를들면 인형으로 위장한 실험자가 dex라는 비친숙사물을 가지고 즐겁게 놀고 있는데 아이의 엄마가 나타나서 “때찌! 그거 갖고 놀지마!” 한 뒤 라면, (엄마의 눈을 가리거나, 엄마를 사라지게 하고) 인형이 modi를 달라고 하면서 dex를 시선으로만 응시하여도, 아이는 엄마를 속이고 인형이 이 장난감으로 놀고 싶어하는 상황을 파악해서 dex를 집어주지 않을까?
한편 위 생각들과는 조금 별도로, 상호배타성 제약이 명사단어에 특정적인 것이 아니라 형용사나, fact를 담은 문장에도 확대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가령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것” 과 “내가 생일선물로 받은 것” 은 논리적으로 모순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아이들은 그 관계를 일일이 따지는데 능숙하지 못한 상황에서, 손쉽게 그 둘이 표상하는 강력한 중심의미 “좋아하는 것”, “생일, 받은 것” 로 단어를 기억해두고 상호배타성 제약을 적용시키는 것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이 실험의 결과를 화용론적 접근으로 해석하는 것과 달리 상호배타성 제약으로도 설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단어사용의 관습성이 좀 걸리는 문제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