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도 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제 자신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얼마 전 지기지우가 대학생활을 위해 고향을 떠나는 저를 배웅하면서 비꼬아 내뱉은 말이 자꾸 귓전에 맴돕니다. “박애주의자의 탈을 쓴 위선자이지만 자책을 잘한다.” 저를 한 문장으로 압축해 표현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 녀석 나름대로 입맛을 다셔가며 신중한 어휘선택을 거쳐 했던 말이라고 생각하니 저는 그 말을 그저 애매한 농담으로 넘길 수는 없었습니다.
박애주의? ‘모든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는 정채봉님의 글귀가 저를 위한 것이라면 정말 기분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제 욕심이 앞서 상대방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일도 종종 있는가 봅니다. 상대의 말을 듣기보다는 제 말을 먼저 하려하고, 또 그 말이 별로 설득력이 없으면서도 고집불통으로 우기는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남 위하는 척 하면서 제 맘대로 행동한다.”는 오해를 받는 것은 분명 불쾌한 일입니다.
이건 극비 사항인데 아버지께서는 저를 늘 싸이코라고 부릅니다. 하긴 제 생각에도 제겐 재밌는 점이 많습니다. 보기에는 쾌활하고 격식을 차릴 줄 모르는 말썽꾸러기 같지만 의외로 내성적인 성격이며 몸에 밴 기본 예의를 갖추었다는 것, 외모에 관심이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서도 자기 모습을 보며 늘 만족하는 것은 어쩌면 평범한 일입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푼다고 베란다에서 괴성을 질러대고, 한밤중에 꼭 집안 네트워크 공사를 해야겠다며 케이블을 들고 소란을 피워 식구들 잠을 깨웠던 일은 정말 싸이코 소리를 들을 만도 했습니다. 두발 자율화 문제로 학생회 활동을 할 때 교장선생님과 면담을 하면서 “교과서에 적힌 것처럼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자” 라고 말했다가 선생님들과 크게 다투었던 일 역시 잊지 못할 일입니다.
하기 싫은 정답 찍기 공부를 억지로 해왔기 때문에 반항심만 강해진 탓인지는 몰라도 저는 규칙보다는 불규칙, 필연보다는 우연을 좋아합니다. 완전함을 추구하는 불완전한 군상, 매순간 스쳐가는 알 수 없는 느낌 하나 하나가 정말 인간적인 모습이고 아름답습니다. 어쩌면 규칙이 존재하고 지켜지고 있기 때문에 불규칙의 가치가 소중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저는 현실 논리보다는 이상 논리에 맞춰 행동하려고 노력하지만 불가피할 경우에는 요령껏 자기합리화를 하는 간사한 면도 있습니다. 좌우명이 “나는 나를 사랑한다.” 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입니다. 간혹 나태한 모습까지 “느리게 사는 지혜, 나태함도 미덕인 시대가 있었다” 하며 용서하는 저를 발견할 때는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싫어하는 물건이나 사람이 있지는 않습니다. 단순히 개인적으로 조금 싫은 것들은 좋아해보려고 노력합니다. 가리는 음식도 거의 없고 거절을 잘 못하는 평소의 모습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뭐든 할 수 있다는 욕심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제가 속한 작은 공동체부터 우리나라, 전 세계를 좀먹는 사회악이라고 판단이 서는 것에 대해서는 능력껏 반대의 목소리를 냅니다. 사회적 약자, 피해자로 가장하여 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혜택을 받으려는 똑똑한 강자들은 정말 눈엣가시입니다. 이들은 공격하기도 어려운 성역 안에서 활동하거나 애매한 경계선 위에 서있기에 더욱 문제입니다. 진짜 여성은 빠진 채 활동하는 여성단체, 견강부회로 수많은 독자들을 유린하는 언론매체 등이 그들입니다.
제 큰 꿈은 인문학자입니다. 위대한 철학자의 저술 뿐만이 아니라 컴퓨터 게임을 만들 때 핵심적인 소재가 되는 소설도 분명 인문학적 창조물입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있으면서 삶의 핵심인 학문입니다.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통해 익명의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는 지금의 상황이 인문학의 발전에 적합한 환경이고 동시에 연구의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현실 아닌 현실이 된 가상공간을 실제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논의를 해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대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하여 인간에 대해 보다 깊고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은 일생의 숙제라고 불릴 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저 역시 촌철살인으로 스스로를 표현하지는 못하여 친구의 말, 떠오르는 기억,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꿈 등을 적었습니다.
다소 진지하고 무거운 글이 되었다면 작전 성공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