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지금의 생각과 많이 다를지라도 자기 이해에 관해 이렇게 광범위한,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하여 스스로 돌아보았던 적은 없었다. 나의 관한 소중한 참고자료.
[나의 청년기]
영화 ‘생활의 발견’이나 책 ‘청년 위기’에서 자신의 마음에 특히 와 닿거나 공감하는 면이 있었다면 무엇입니까? 그것이 자신에게 특별히 공감되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대학에 들어와서 이전 시기와 비교할 때 자신의 생활이나 행동, 감정, 사고, 인간 관계의 측면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러한 변화들이 자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 시기에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현재 하루의 일과에서 자신이 가장 고민하거나 시간을 많이 투여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신이 매일 살아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천은 무엇입니까? 어디서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하고 있을 때 그런 느낌이 드나요?
제목 : 나의 청년기(지금인데..?^^) 작성일 : 2004/03/09
늘 그렇듯 “생활의 발견” 도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해서 봤다. 음, 딱 특별한 약속이 없는 일요일 오후 3~4시 같은 영화였다. 그래도 보고 싶었던 영화였는데…^^; 뭐랄까 생활 다큐멘터리 느낌인가? 그런데 그런 다큐에서는 주로 도시를 떠나서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나, 하여튼 뭔가 좀 특이한 사람의 생활을 덤덤히 보여주는 것이 보통이다.
생활의 발견은 특이한 이벤트로 가득한 보통 영화와는 달랐다. 영화처럼 신나지만은 않은, 바로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 잘 그려진 영화라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래서 재미는 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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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가는 장면이 굉장히 많았다. 그냥 원래 살아가는 게 그렇게 신나지만은 않기 때문이란걸 나도 조금은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인가?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가 내 정말 친한 친구에게 관심을 보이는 엿같은 상황이라던지 (나는 영화를 봐도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차마 말은 못하고, 호텔에서 점심 먹는 장면인가? 담배피러 가면서 주인공 머리를 쎄게 밀처버리는 그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한다T_T 선영?(추상미)와 삼겹살 먹으면서 옛날 기억을 더듬는 장면을 보니, 비슷한 경우에 거짓말로 기억해낸 척 했던 경험이 떠오른다. 특히 여자일 경우에 그런 것 같다.ㅋ
어디서 들었던 쓸만한 말은 늘 나도 모르게 다른 친구에게 좀 멋있는 척하며 말하고 있는 것도 참 공감이 간다. 영화에서는 “사람이 되긴 어렵지만 괴물은 되지 말자”? 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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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대학 오기 전 고교시절의 나는, 괴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학교, 어른들, 사회에 어찌나 불만이 많았는지 모른다. 친구들에게 입버릇처럼 “대한민국은, 음 대충 40살 이상은 죽여 없애야 한다니까!” 말하며 심하게는 백지 답안지를 제출하면서도, 다른 한편 또 좋은 성적을 받으면서 고소해하던 나… 공명심? 뭔가 영웅이 되고 싶어했고, 나만의 세계가 있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정말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날 이해할 사람은 학교 안에 생각이 깊은 친구 몇 명뿐일거라고 믿었고, 다른 친구들과는 원만한 관계였지만, 나는 주로 “고집불통”이면서 일방적으로 조언, 충고,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입장이기만 했다.
상경(京)해서 사람 숫자가 늘어나고 남녀노소(!) 가 섞여있다보니, 나를 닮은 다른 사람을 발견하기도 했고 내 고집으로는 도저히 말이 통할 수 없는 사람들과도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사학입문 시간에 무슨 책이었던가? “자기 생각만 진리라고 믿는 것, 바로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는 것” 이라는 글귀가 정말 딱이었다. 모임에서 맡기 싫은 직책을 맡아도, 술자리의 요란한 게임이 싫어도, 즐기려고 노력해보고 그러다보니 좀 미친 것 마냥 즐겨지기도 하는 그런 경험이 조금씩 생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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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평소에 나는 조금만 틈이 나면 자꾸 내 개인생활과 관련된 것을 계속 점검하고 고민하려고 하는 것 같다. 신문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자꾸 새로운 정보를 알고 싶고 (재미있다), 외국어 공부, 독서 등 나를 살찌울 것들을 언제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는 시간이 많다. 일정에 따라, 수업시간표에 따라 왔다갔다하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가버린다. 모임이나 수업시간에도 나도 모르는 내 변화가 있겠지만, 그건 잘 느껴지지 않는다. 학생이라 강의 듣는 데 시간을 많이 쏟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강의 내용 속에서 온갖 상상과 추측을 하고 있던 나를 틈 나는대로 계속 돌아보지 않으면, 내가 뭘하고 사는건지 살아는 있는건지 잘 모를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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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 경우에는, (할 일이 많거나 사람들이 날 찾을 때도 기분이 업되며 살 맛이 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좀 여유있고 한가로운 시간, 구체적으론,
소중한 사람들과 배가 고파서 뭘 먹어도 맛있는 상황에서 같이 식사를 맛있게 하고는 맘 편히 걸으며 얘길 나눈다던지..
술이나 과제에 지쳐 나도 모르게 잠에 들어버리는게 아닌! 자발적으로 이제 잘 시간이라면서, 잠을 청하고 누워서 내일 일들을 예상하며 기분좋게 잠든 다던지…
혹은 잡념을 모두 버리고 여자친구를 안고 있을때라던지…^^**
이럴 때 정말 살아있다, 좋다, 살 만하다 라는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내가 경험한 남녀차이]
자신이 처음으로 남자 혹은 여자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은 언제입니까?
자기 마음 속에 남자는 이래야 한다 혹은 여자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기준이나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자신이 그러한 생각이나 믿음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남녀차이에 대한 믿음이나 생각이 일상 생활을 하거나 대인관계를 유지하는데 자유롭고 편안한 느낌을 주고 있나요? 만일 편안하고 자유로운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나 생각이 본래의 자신과 잘 어울리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편안하고 행복한 느낌이 들도록 그러한 믿음이나 생각을 바꾼다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이 땅에서 남자로 산다는 것, 여자로 산다는 것,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써 보세요.
제목 : 차이는 인정, 차별은 반대. [상투적?] 작성일 : 2004/03/23
내가 처음으로 남녀를 구분하고 자신이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말문이 트인 다음에 이것저것 묻고 들어 배우는 시기였던 것 같다. 그 때가 한 너댓살이었을까? 외삼촌과 이모부가 “너 꼬치 떨어졌다. 꼬치 있어? 함 보자! 보여줘봐.” 고 말하며 날 볼 때마다 바지춤을 노렸다. 남달리 소극적이고 울음이 많았던 나는 그럴때마다 도망가거나 어쩔줄 몰라했다. “가스나 아니여? 남자 아니고만!” 이라는 장난기 어린 그러나 상처가 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가 남자라는 것, 그리고 남녀의 몸이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됐다. 나중에 나는 절대 외삼촌처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음은 물론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런 생물학적 차이 외에 특별히 “남자”로 키워지진 않았다. 결혼 전 재봉사였던 엄마는 딸을 낳아 직접 만든 예쁜 옷을 입히고 싶었던 터라 내가 맏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내 외모를 말끔하고 예쁘게 관리하셨다, 물론 지금은 전혀 아니지만 (2차 성징 이후로 급속도로 변질되고, 입시 스트레스 통에 그리운 내 얼굴이 되버렸다.) 물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운동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며 뛰어노는 즐거움도 자연히 알게 되고, 친구들에게 놀림받지 않으려고 엄마가 꼭 젤이나 스프레이로 머리를 정리해주던 것을 의식적으로 거부해버리기도 했다.
처음으로 남녀의 사회적인 다름을 몸소 느낀 것은 (초등학교 일기장을 되짚어본 결과) 학교 급식을 둘러싼 남녀 성 역할의 차이 때문이었다. 남자애들이 학교 급식의 국통, 밥통, 반찬통 (굉장히 무거움)을 1층의 급식소로부터 가져오고 여자애들은 배식을 맡은 것에 대한 불만이 심했다. 흥미로운 것은 배식을 해야 맛있는 반찬을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회 이슈인 “남녀 평등”을 핑계로 둘러댔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것이 실생활의 남녀 편가르기를 체험하면서 내가 남자라는 것, 여자와 다르다는 것, 구체적으로 역할마저도 다르다는 것을 절실히 인식한 첫경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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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남녀에게 강요될 성 역할로 믿고 있거나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이미 양성 평등에 대한 말을 수 없이 듣고 그래야한다고 스스로 자꾸 생각하다보니 그렇다. 아마 나도 모르게 몸에 체화되어버린 성 역할이 있을 것이다. 대학에 오기 전에는 남녀의 차이가 거의 대부분 사회화나 후천적인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지난 해 들었던 최재천 교수님의 “생명윤리와 인간본성” 이라는 강의를 통해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진회심리학, 사회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순간의 사건으로 열달을 배가 부르게 되는 여자는 좀더 조심스럽고 예민해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수렵과 채집이 주 식량원이었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자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 일을 하지 않아야했던 원시사회는 몸이 약한 남자, 활동력 있는 여자를 (적자생존) 자연선택적으로 죽여왔던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와 같은 과학적 설명에 동의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양성 평등을 위한 남녀의 상호 이해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남녀는 원래 다르지 않은데 모두 사회 탓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남녀는 분명 다르며 그렇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고 노력해나가야 한다고 하는 것이 더 옳고 양성 평등을 이루는 좋은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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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런 나의 생각이 나이가 들고 사회에 좀더 적응할수록 여러 문제 상황에 부딪히는 것도 사실이다. 여성이 나의 남성다움을 요구할 때 특히 당황스럽다. 예를들어 자기가 들 수 있는 물건을 내가 들어주길 바랄 때, 내가 양성 평등의 이유로 “나는 너를 나약한 존재, 보호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아.” 라고 말하며 거절한다면 나는 불친절하고 매너없는 사람이 되버리지 않을까?
또, 친구들 (특히 고등학교 친구)과의 술자리에서 자신의 여자친구 혹은 주위 여자들을 성적으로 대상화할 때, 잘못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정도 맞장구치며 응할 수 밖에 없는 내 이중적 모습을 발견한다. 나 역시 이성의 성적 매력을 느끼고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기도 하다. 인간을 성적 대상화, 물상화 시키는 남자들의 잘못인가. 여자도 남자를 대상으로 자유롭게 성욕을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인가? 현실적으로는 그동안의 일을 생각해서 남자는 조금 절제하고 여자는 좀더 자유로워지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닐까? 나 역시 연애할 때만 양성 평등적으로 행동하고 결혼할 때는 결국 가부장적인 입장이 되버리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을 하기가 아직은 어렵다. 그런데 내가 이 땅의 남자이면서 양성평등주의자로 살아가기가 어렵다,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나의 태도를 바꿔야하는가? 어떻게 바꿀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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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로 살아가기, 여자로 살아가기는 둘다 똑같이 힘든 것 같다. “흑기사여 원샷~ 원샷~ … 절대로 울지않아~ … 남자기 때문에” 등의 가사를 담고 있는 드렁큰타이거의 노래에 진심으로 공감한다. 그러면서도 양성평등을 외치는 나와는 무관하게 앉는 자세 하나하나, 치마 길이 약간 차이에 거의 반사적으로 신경을 쓰는 여자친구의 아픔을 통감한다. 남녀 이전에 사람이라면, 정말 사람 이상의 것을 사람에게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사람들이 모두 양성평등주의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최재천 교수님의 “남자의 수명이 늘기 위해서도 꼭 양성평등이 이룩되어야한다.” 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의 몸 느껴보기]
느긋하게 앉거나 자리에 편하게 누워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면서 온몸의 힘을 빼세요. 주의를 집중해서 코와 입을 통해 드나드는 공기를 3분간 느껴 보세요. 온몸이 편안하게 느껴진다면 왼쪽 엄지 발가락에 주의를 모아보세요. 숨을 들이 마시거나 내쉬면서 공기가 왼쪽 엄지 발가락으로 흘러 들어오고 나간다고 상상해 보세요. 왼쪽 발가락에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느껴지는 모든 감각을 자세히 써보세요.
이번에는 천천히 온몸 구석구석에 주의를 기울여 보세요. 왼쪽 발가락부터 머리 끝까지 자신의 온몸의 각 부위마다 어떤 감각이 느껴지는지 알아보세요. 온몸의 감각 중에서 가장 편안하게 느껴지는 곳은 어디인지 살펴보세요.
이번에는 감각이 무디거나, 긴장돼어 있거나, 마비된 느낌이 드는 부위는 어디인지 구분해 보세요. 자신의 몸 중에서 특히 “얼어붙은 느낌”이 드는 곳이 있다면 주의를 집중해서 숨을 불어넣어 보세요. 긴장이 풀릴 때까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얼어붙은 부위에 어떤 느낌이 드는지 생생하게 느껴보세요.
마음이 편안하고 느긋한 상황에서 자신이 자주하는 몸동작은 무엇입니까? 이런 몸동작을 할 때 어떤 기분이 드나요?
긴장하고 힘든 상황에서 자신이 자주하는 몸동작은 무엇입니까? 이런 몸동작을 할 때 어떤 기분이 드나요?
행복한 상황에서 자신이 자주하는 몸동작은 무엇입니까? 이런 몸동작을 할 때 어떤 기분이 드나요?
자신의 몸에 나타나는 가장 좋은 느낌의 반응과 가장 나쁜 느낌의 반응을 써보세요. 그리고 내일 해야하는 일이나 만나야 하는 사람들을 쭉 적어보세요. 각 각의 일들이나 사람들을 마음 속에 떠올리면서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적어보세요.
몸이 말하는 소리를 경험하면서 새롭게 느낀 점이 있다면 써보세요.
제목 : 몸은 솔직하다. 작성일 : 2004/03/30
나는 잠들기 전에 누워서 몸을 이리저리 뒤틀고, (스트레칭이라 말하기가 뭣한) 팔다리를 능지처참 당하는 기분으로 있는 힘껏 쭉쭉 뻗었다가 온 몸에 힘을 쫙 빼는 기분을 즐기며 잠이 들곤 한다. (해 본 사람만 이해한다!) 그리고 그 때 몸에 드나드는 공기의 느낌은 내게 달콤(?) 하다는 게 가장 적절한 것 같다. 그 공기는 약간 목이 마르게 해서 나로 하여금 없는 침, 마른 침을 모아 삼키게 만드는 공기이다. 심할 때는 결국 물을 마시게 만든다, 너무 단 사탕을 먹었을 때 처럼.
사람은 온 몸으로 숨을 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느끼기가 어렵다. 왼쪽 엄지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게 왼발, 왼쪽 종아리 멀리는 왼쪽 허벅지에 까지 살짝 힘이 들어가는 것은 내가 몸 구석구석으로 의식을 옮기는 게 익숙하지 않은 증거인 것 같았다. 왼쪽 엄지는 처음에는 얼어붙는 듯이 동작이 멈춰지고 오히려 감각이 없어지는 느낌이 든다. 좀더 의식적으로 힘을 빼려고 한 다음에 숨을 내쉴 때는 그제서야 약간 따뜻한 아지랑이 같은 것이 발가락 주위를 감싸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계속하면 부르던 배가 꺼질 때와 유사한 느낌도 생겼다. 장난삼아 다시 발가락에 힘을 불끈 주면 평소보다 좀더 종아리 쪽이 뻐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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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구석구석에 주의를 옮겨갈 때, 내가 선망했던 무림고수들이 의식으로 혈액 순환을 하는 것을 나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너무 빨리 의식을 옮겨다녀서 그런지 별 느낌이 들지 않아서, 왼쪽 발부터 머리 끝까지 두세번 돌렸더니 몸 전체가 따뜻해지면서 볼이 좀 달아올랐다. 몸 각 부위의 감각을 따로따로 느껴지지 않아 스냅 사진 처럼 발가락, 발등, 종아리, 무릎, 허벅지, 항문, 성기, 아랫배, 옆구리, 허리, 윗배, 손가락, 팔목, 팔꿈치, 명치, 가슴, 팔, 어깨, 어깨 목 연결부위, 목, 목과 머리 중간 부위, 뒤통수, 정수리, 눈주위 등을 떠오르는 대로 실제 사진처럼 머릿 속에 넘겨가면서 했더니 좀 잘 되었다.
대체로 힘없이 나른나른한 느낌이 드는 가운데 팔다리 쪽이 숨쉬는 것과 박자를 맞추어 쑤시는 느낌이 좀 특별했다. 많이 돌아다녀 팔다리가 피곤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에 쑤시는 것인지, 그냥 자연스럽게 몸 여기저기로 주의를 옮겨가다보면 쑤시는 느낌이 들었는지 약간 의심이 가기도 한다. 가장 편안한 느낌이 들었던 곳은 힘없이 흐느적거릴 것 같은 허벅지와 약간 배고픈 기가 드는 아랫배와 성기 쪽이었던 것 같다. (숨 쉴때 배가 부풀었다 줄었다하니 편안할 수 밖에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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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목 연결부위, 목과 머리 중간 부위가 가장 마비된 느낌이 들었다. 다른 곳과 달리 힘이 빠진 나른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아마도 좋지않은 자세로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고, 노트북 들은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니기 때문이라. 숨을 집중한채로 힘을 빼고 목을 상하좌우로 조금씩 움직이면 얼음이 깨어지듯 뚜둑 소리나 뻑뻑한 소리 (밖으로 나는 소리가 아닌 안에서 울리는) 가 난다. 뻐끈하지만 차차 풀어지고 시원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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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느긋할 때 나는 주로 배를 쓰다듬거나 두드리거나 사타구니를 살살 긁는다. 다리를 떨기도 한다. 습관적이다^^ 마냥 긴장이 없이 넉넉하고 편안한 상태라서 심심한(?) 자극이 즐겁다. 남들이 보기엔 좀 불안해보일지는 모르겠다. 긴장하고 힘이 들땐, 눈을 부라리며 코, 이마에 주름이 생기게 하거나, 눈을 크게 떠서 쌍꺼풀 지게 만들기, 어깨와 목을 주무르고 돌리기,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쥐어짜기 등을 한다. 긴장만 될 때는 귀를 파면서 눈을 자주 깜빡이기도 한다. (여친의 관찰력이 도움이 됨)
흡연자가 담배 피우는 이유처럼, 나는 이런 행동들을 할 때 긴장과 힘든 것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만 같다. 아닐까? 그럴 때마다 팔굽혀펴기 같은 걸 하는 습관을 들이면 몸짱이 될텐데… 행복할 때는 보조개가 들어간 상태로 머리, 볼을 긁고 들뜬 걸음을 걷는다. 많은 행동들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행복한 상황이 많지 않거나 행복할 때 하는 행동이 덜 개발된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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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잠을 청할 때 침대에 몸이 달라붙는 느낌, 목숨을 건 술내기 농구 시합 후 헤롱거리며 마시는 시원한 맥주, 여자친구와 함께 할 때 간혹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 등이 제가 좋아하는 몸의 반응들이에요. 가장 나쁜 느낌은 먹은 것도 없이 헛배가 부르거나, 온몸이 피곤하고 목과 어깨가 정말 아픈데 자려고 누웠더니 몸 곳곳에 땀이 나 잠을 이룰 수 없을 때 (뽀송뽀송한 상태에서 자려고 샤워를 하고 왔는데도 땀이 나면 정말 최악) 이다. 내일은 3교시부터 수업이 있기 때문에 넉넉히 잘 수 있다는 생각에 일단 미소가…^^; 그러나 책도 안 읽었는데 오후 6시에 할 동아리 세미나가 걱정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늘 보던 사람들이라 반갑지는 않고, 책을 안 읽어 면목없고 좀 짜증난다. 숙제가 특별히 없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인가. 후배들이 밥 사달라고 좀 안했으면 좋겠다. 상상하니 살 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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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모든 것들이 몸이 말하는 소린지 내 의식적인 판단인지 혼란스럽다. 분명한 것은 내가 느끼는 스트레스나 정서같은 것이 몸으로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용히 주의를 집중하면 몸 곳곳의 반응을 자세히 살필 수 있는데 평소엔 “괜찮다” 정도로 무시하는 게 습관이 되버렸다. 머리는, 의식은 거짓을 말해도 몸은 대개 솔직하다. 그 솔직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반성 해본다.
[청년기의 나의 사랑]
자신이 이전에 경험했거나 현재 진행하고 있는 사랑을 되돌아 봅니다. 사랑을 하면서 어느 순간을 가장 기쁘고 감사하게 여겼나요? 반면에 사랑을 하면서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을 때는 언제 인가요? 자신이 경험했던 사랑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나요?
청년기 갈등과 자기이해 5장에 나와 있는 Hendrick과 Hendrick의 사랑의 유형검사나 청년기의 자기탐색 3장에 나와있는 Sternberg의 사랑의 삼각형 검사를 실시하여 자신의 사랑이 어떤 유형으로 나타나는지 그 특징은 어떻게 설명되는지 이해합니다. 검사로 나타난 모습과 자신이 지금까지 생각했던 바와 일치하는 점과 차이점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청년기에 사랑과 이별을 경험하면서 이전에는 미처 모르던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한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자신의 느낌, 행동, 감정의 표현 방법, 삶에 대한 태도,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방식이나 범위 등에서 구체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서로를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목 : 제대로 사랑하기 작성일 : 2004/04/06
아니 사람이 다른데 사랑이 같을 수 있나? 그래서 뭐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성차별이 아니라 사실이..) 사랑에 관한 글을 난 좀 우습게 보는 편이다. 간단하면 심심풀이라도 되는데 긴 것은 정말 왜들 그렇게 읽고 있는지 좀처럼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 대학에 와서야 깨닫게 된 것이지만 헛된 환상이나 기대, 얼치기 연애 박사들의 조언처럼 사랑에 독이 되는 건 없다. 특히 똑똑하면서 연애하려고 의도적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구차해도 학창시절의 수많은-풋풋한 추억들을 끄집어내면 나도 짝사랑, 받는 사랑, 주는 사랑, 기다리는 사랑, 머릿 속 사랑, 열정적 사랑 등을 나름대로 경험해봤다. 그리고 그 경험들이 장애물이 아니라 밑거름이 되어 현재 진행하는 사랑을 잘 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여유있게 앉거나, 안거나, 걸을때 느끼는 호젓한 분위기는 얼마나 좋은지! 둘이 만나서 말이 잠깐 없을 때 뻘쭘하지 않고 배시시 웃으며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란 평소엔 유치하다고 욕할만한, “마냥 좋다, 이런 시간도 있다니 하늘에 감사할수밖에.” 같은 거라니… 정말 쓰기 싫지만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지방에서 올라와 사람을 거의 새로 사귀어야했고, 혼자 사는 법을 배워가던 새내기 시절에 나는 사랑의 아픔? 으로 좀 더 힘들고 외로웠다. 고2 여름 때부터 사귄 여자친구. 수능 시험이 끝난 뒤, 자주 못 보던 애를 매일 같이 보다보니 어색하고, 크게 다투고, 결국 지역적으로 다른 대학을 가게 되면서 헤어졌던 것이다. 크리스마스 이후 두 달이 넘도록 서로 연락 한 번 없다가 화이트데이에 내가 사탕을 안 주니 그 애가 내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분명하게 헤어졌다. 내가 힘들었던 것은 그런 그 애가 한 학기 내내 사나흘, 열흘 등에 한번 꼴로 내게 문자, 전화로 자기가 보고 싶지 않냐, 완전히 잊었냐느니, 여전히 좋은 친구는 맞겠지 등등으로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럴때면 스스로도 고3 때 서로 힘내라면서 틈틈이 짬내서 연애하던 기억, 1년이 넘도록 사귀며 들었던 정이 떠올라 괴로웠다. 아예 쌩~ 까면 될 일인데 나는 또 애써 아무렇지도 않고 싶었다 (쿨~ 하게 뭐 이런 말에 혹하고…) 실제론 다른 여자애들을 만나는 것 까지도 자연스럽지 못했다. 이제와 Sternberg 식으로 따져보면 ‘열정’없이 너무 친밀감, 특히나 ‘책임감’에 치우친 것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단지 수험생활의 동료였을지도 모를…
여자친구와 같이 해 본 Hendrick 의 사랑 유형 검사에서, 나는 열정(25), 우정(25) 이 높은 점수였고 영인이는 열정(25), 이타(24) 가 높은 점수였다. 100일이 안 된 우리는 아직은 멀고먼 절정을 향해 불타오르는 중 인가보다. 동갑내기인만큼 우정적 사랑의 점수가 높은 것인지, 둘다 “넌내꺼난내꺼” 에 굉장히 신경을 쓰는 스타일이어서 소유적 사랑의 점수는 낮은건지… 뭔가 꿈보다 해몽이 되는 기분이다. 내가 좌우명이 “나는 나를 사랑한다.” 인 만큼 이기적인 연애를 하고 있는 건지, 좀더 책임감 있어야 겠다는 다짐도 해 본다. 뭐 아직은 이성적 노력없이도 ‘이 사람 없이 살 수 있을까?’ 하는 감정이 때때로 나를 지배하지만.
생각해보면 남 앞에 서기 꺼려하는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나이지만 사랑을 할 때 만큼은 용감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너무 이벤트에 치중하고, 지나치게 잘해줘서 부담을 느끼게 해 사이가 어긋나버린 경험도 있다. (정말 쪽팔리는 얘기지만… 산타복장을 하고 선물을 준비해서 시내에 나갔다가 사귀는 여자의 냉대를 받았을 때, 무너지는 자존심과 서운함은 이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상대는 뒤늦게 서야 미안해한다.)
그리고 사랑을 하면 할수록 내 스타일은 “열정적이고, 격의없이 솔직한 것” 이라는 좋은 발견을 한다. 보통 커플들은 잘 하지않는 수준의 이야기를, 나는 여자친구와 일상적으로 나눈다. 얘기의 폭과 깊이에 금기가 없다. 사람을 만날 때는 늘 그 사람과 나의 관계에 알맞은, 그래서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내 모습을 선택적으로 보여주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원치않은 특정 이미지로 정형화 되는 오해를 산다. 하지만 여자친구에게 자꾸 여러가지 내 모습을 드러내다보면, 다른 사람 앞에서 내 감정이나 행동을 솔직하게 잘 보일 수 있는 연습이 되는 것 같다. 뭐 내가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내가 풍부해지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또, 정말 나와 다른 상대방을 극히 사소한 것에서부터 진심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배워가는 것 같다. 이것은 서로를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다. 나는 어딜가나 컴퓨터만 있으면 이것저것 일을 하는 스타일이고, 여자친구는 집에 들어가면 그냥 편히 쉬고 싶어하는 스타일이다. 나는 수업을 중요시하고 대충대충이며, 아침에도 잘 일어나는 스타일이라면, 여자친구는 수업보다는 자기에게 특별히 주어진 책무를 중요시하고 신경이 예민하고 잠에는 약한 스타일이다. 라이프스타일의 차이는 사소해보이지만 실제론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뭐든 같이 하는 게 좋은 사랑이 아니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를 인정하면서 또 힘 닿는 대로 맞춰보기도 해야한다.(말부터가 진짜 어렵다)
나는 물론이고 다른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지금 여자친구를 사귀며 절실히 깨닫고 있다. 어떤 일을 둘러싸고 생소한 생각이나 느낌이 들었을 때, 그게 내가 그녀를 잘 몰라서 그런 것인지, 알긴 알아도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색다른 모습의 내 자신을 처음 발견해서 그런 것인지… 어려운 문제다. 뭐 꼭 다 알고 다 이해할 필요가 있냐는 생각도 든다. 그럼 무슨 재미로 사나. 게다가 지금도 참 행복한데!
어쨌든 제대로 사랑을 해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는 방식을 배울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생애 최고의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으니, 괜히 내가 대견해진다, 뭐 좋은 상대를 만난 탓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결혼과 가족]
결혼, 이혼, 재혼, 동거, 독신에 대해 각각 떠오르는 단어 한가지씩을 써보세요. 그 단어를 떠올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현재 결혼을 하고 싶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신의 경험이나 주변에서 관찰한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의 예를 생각해 보고 두 가정을 구분하는 특징이 무엇인지 비교해 봅시다.
자신이 꿈꾸는 미래의 자신의 결혼과 가정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그러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20대에 준비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제목 : 결혼은 미친 짓이어도… 작성일 : 2004/04/13
결혼. “싸이코”.
영화 때문인지 자연스레 “미친 짓” 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그 말이 또 맞다. 그래서 그런 미친 짓을 하는 싸이코-.- 누구에게나 험한 게 인생인데, 결혼은 그런 인생을 두 개로 늘려준다. 내 인생 만큼은 아니겠지만 신경쓰고 걱정해야 할 것이 늘어난다. 나중에는 나 자신보다 배우자와 자식에 더 헌신하기도 한다. 그래도 나중에는 또 그게 사실 자기 인생 같다 라고 말한다. 결혼하지 않은 입장에서 이기적인 나의 입장에선 좀 싸이코로 보인다… 그럼에도 결혼을 택하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 그래서 인간적인가? 능력있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아빠 엄마 처럼 서로 맞지 않으면서도 잘 살아온걸 보면 두 분은 정말 인격자다.
이혼. “필요악”.
사회적 선악의 가치판단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당사자에게 있어서 정말 필요’악’이다. 헤어지게되서 후련하다고 말하면서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던 우리 막내 고모를 떠올리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미성숙한 자녀가 있을 때는 정말 자신이 ‘악’을 저지른다는 죄책감이 또 얼마나 크겠나. 결혼할 때 이혼을 염두에 두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혼할 거면 결혼을 하지 말아야지! 라는 말에 그냥 나도 모르게 공감이 된다.
재혼. “대단한 도전”.
지난 시간에 나온 소개팅을 여러번 할 수록 성공률이 떨어지는 이유와 더불어 MBC TV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재혼 후 또 이혼하는 일이 별로 없으니 재혼이 마치 거의 성공하는 것 처럼 보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난 결혼, 이혼을 돌아보면 새로운 결혼 앞에서 얼마나 부담이 클까. 자기의 지난 실패 경험에 정말 민감한 것이 사람이다. 그러니 재혼은 대단한 도전이다.
“재혼”이라는 말 좀 안 썼으면 좋겠다. 꼭 TV프로에서 성공할것인가? 실패할것인가! 하면서 부담 몽땅 주고 스릴있게 하는 것 마냥 한 사람의 진지한 인생에 별 생각없이 부담을 안겨주고 심지어 나쁜 인상까지 주고 있다, 잔인하다. 그냥 새로운 하나의 결혼으로 보면 안 될까? 소개팅을 여러 번 해도 잘 될 확률은 똑같다. 오히려 경험에서 배우니까 늘어날 수도 있겠다. “두 번째”에서 잘 될때, “세 번째”에서 잘 될때… 이렇게 따지니까 확률이 떨어진다. 횟수가 중요한 건 아닌데.
동거. “불장난”.
“개인 소유의 물건을 서로 함부로 하지 않는다, 잠은 따로 잔다.” 등. 동거 계약서가 인터넷을 떠돈다. 그러나 동거 경험이 있는 중학 동창의 말을 들어보면 지켜지는 계약이란 별로 없다고 한다. (이 친구는 그럴싸한 계약서도 없었다.)
불장난 잘못하면 진짜 불을 낼 수 있다. (동성끼리 동거할경우 집안꼴을 엉망으로 하거나 술판을 만들기도 한다.) 불장난은 정말 재밌는데 어른들은 못하게 한다. 어른이 되기 전에 한번씩 해본다. (안 해도 어른이 되긴 한다.)
독신. “용기”.
모두가 예라고 할 때, No 라고 하는 사람… 다들 결혼 하는데 나만 안 했을 때 그 압박감을 견디고 꿋꿋이 가는 사람. 독신자들은 정말 “용기”와 그에 걸맞는 당당한 자기 자신이 있는 사람들로 보인다. 일면 옳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독신? 정말 대단해~ 라고 하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고독, 불안, 나약함’ 같은 것들을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어쨌든 주위사람, 사회의 이런 ‘배제’ 하는 분위기에서 필요한 건 “용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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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쓴 글들이 다시 읽어보니 너무 독신주의자 같아 뵌다. 물론 결혼은 현재는 당연 하고 싶지 않다, 아직 군대도 안 갔는데… (결혼해서 자식 둘 낳고 군대 안 갈까? ) 앞으로 꽤 오랜 세월동안 자기 개발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똑바로 세우지 못하고 결혼한다는 것은, 아내가 될 사람이라면 몰라도(바보겠지만..) (자식에게는 정말 좀 죄를 짓는 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애를 안 낳기도 하는구나..)
그렇지만 훗날 나는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려보고 싶다. 연애만 하고 결혼은 안 하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것이 뚝뚝 분리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걸 나이가 들면서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자녀 교육도 해보고 싶고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아직 결혼이 내 현실적 사고 안에 들어오는 개념은 아니라 어렵지만, 나는 과감히 그러나 인간답게 ‘싸이코’가 되고 싶다.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의 차이중 핵심적인 것은 가족 간 의사소통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버지의 경우 철저히 탈권위적이기에 (의도는 아닌 것 같지만) 자식과 부모간에 심리적 거리가 굉장히 가깝다. 경어도 쓰지 않고 정말 친구 같은 부모가 된다. 남자들이 아버지를 어려워하는 것, 아버지처럼 살기 싫다는 말, 훗날 인생의 갈림길 같은 것에서 허락/불가 등의 갈등을 보이는 것을 보면 더더욱 의사소통의 문제가 중요하게 다가온다. 격식이 없고 친구 같으면, 예의를 지키지 못하는 문제도 있고 사소한 일로 다투는 일도 많긴 하다.그렇지만 서로 말이 통한다는 것은 서로 이해하고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그냥 피붙이라 사랑하는 게 아닌) 행복한 가정의 필수요소이다.
우리 부모님 처럼 내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걱정이지만 내가 바라는 좀전에 말한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먼 훗날 노력해야겠다. 20대에는 무얼 준비해야하나. 간단히 말해서 진정으로 사랑을 경험하고, 충실하게 내 일을 해내가는 것 ? TV에서 하는 부부클리닉 같은 걸 자주 보는 것도 도움이 되려나… 아침마당은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고, 시간도 맞질 않고^^
[부모자녀관계]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의 지금까지 살아오신 삶의 과정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듣고 정리해 봅니다. 출생에서 현재까지 부모님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전에 전혀 모르던 부모님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한 점이 있다면 정리해 보세요. 부모님께서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알아보세요. 힘든 과정을 이기는 힘을 어디서 얻었는지 여쭤보세요.
부모님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발견한 자신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부모님과 자신의 관계가 가장 힘들게 느껴진 적이 있다면 언제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신이 느끼기에 청년기의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이전 시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 변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부모님의 삶을 통해 자신이 배운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입니까?
제목 : 우리 부모님 짱 작성일 : 2004/04/27
나는 평소 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터라 그들의 삶의 과정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중학교 때부터 여러 번 우리 가족의 역사를 워드로 작성해두었고, 작년에 사학입문 수업을 들으면서 마지막으로 고쳐두었다.
새내기 때는 한달에 한 번은 가던 전라북도 전주의 우리집을 올해 들어와서는 지난 주 토요일, 중간고사 끝나고 개강 후 처음으로 갔다 =.=; 마중까지 나오신 엄마는 아들 얼굴 까먹겠다고 나무라셨다. 아! 아직은 환영받는 존재이구나… (이런 생각을 엄마가 아시면 서운케 느끼시겠지만…)
할머니의 말씀을 들어보면 할아버지께서 아버지가 15세 일 때 위장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막내 아들인 아버지가 영특하니 아버지 만큼은 고등학교 까지 마치게 하라고 유언하셨다고 한다. 가난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전쟁 후 태어난 세대인 아빠는 4.19. 혁명에는 불과 4살에 지나지 않았던, 고등학교 졸업 후 세무서의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조용히 근무해온 사람이다. 그 스스로가 “나는 출세지향적이고 가족이기주의를 지상의 가치로 살아온 사람인 것 같다.” 라고 밝히고 있듯 날카로운 역사 의식 같은 것은 좀 없는 편이다. 50대와 이른바 근대화 세대와 경제부흥기 세대라고 하는 40대의 중간에 위치한 그는 “출세지향, 가족이기주의”의 가치 추구 과정에서 경쟁에 뒤쳐져 부유층이나 권력층이 되지 못한 안타까움을 내면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 카드에 부모가 원하는 직업란이 있으면 늘 “법조인, 검사” 등을 적었던 일들이 그 직접적 예라고 생각한다. (내가 매우 싫어했지만…) 그래도 현재의 그는 시대를 따라잡는다며 독서도 많이 하고, msn 도 하는 노력파 중년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에 비해선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셨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직업으로 재봉 일을 하셨던 만큼 눈썰미와 손재주가 뛰어나 집안의 커튼을 직접 만들거나 최근에 유행하는 십자수나 뜨개질을 잘 하신다. 지금은 천주교 신자로서 각종 사회 봉사활동에 열심히 참가하고 여러 “아줌마”모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무언가 사회적 압력으로 또는 가족을 위해 직업적 자아실현 욕심을 좀 접지 않으셨을까 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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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웠던 점이 있다면, 아버지께서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는데, 할아버지께서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렸던 적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떨어졌다는 얘기였다. 아버지께서 야망을 버리고 다소 염세적이었던 그런 계기도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고 꿈을 크게 꾸는 것이 아버지와 많이 다른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버지도 나와 비슷했던 것이다.
기뻤을 때와 슬펐을 때에 관해서 아버지께서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셨지만, 슬펐을 때에 대해서 예전에 듣기로는 시골에서 전주로 유학을 가서, 먼 친척집에 얹혀 살때 당했던 서러움이 컸던 것 같다. 머슴처럼 부려먹었다고 들었는데…T_T [동영상 재생]
어머니는 나와 동생이 태어났을 때 가장 기뻤다고 하셨고 (준비된 멘트가 아닐까?), 본인이 큰 수술 (나팔관에 혹을 떼어내는) 을 받고서 오랫동안 후유증으로 아팠던 것이 가장 슬픈 일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극복의 힘은 “가족” 에 있었다고…. [동영상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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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거의 절대적이고 아낌없는 물적/심적 지원이 우리 부모님과 나의 삶에서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삶의 배경이 되는 시대가 매우 다르기도 하지만… 그 외에는 정말 많은 부분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아버지처럼 숫기가 없지만 다정다감하고, 어머니처럼 일의 처리를 확실하고 끈질기게 하려고 한다. 아버지처럼 배고픈 것을 정말 싫어하고 어머니처럼 성격이 급하다. 삶을 살아가며 겪는 여러 사건에 대한 대처 방식이나,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형태도 비슷해 보인다. 아마도 부모님과 나의 삶은 다르면서도 같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과 나는 수없이 많은 사건을 공통적으로 경험했고, 많은 사람을 공통적으로 만나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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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이 심하게 다투셨을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부모님, 우리 가족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나로써는 사소한 다툼이 잦은 것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두 분이 정말 심각하게 다투셨을 때, 나의 굳은 믿음이 깨져버리면서 내가 거실 바닥에 침을 뱉고 부모님께 욕을 했던 적이 있었다. 내 동생이 두고 두고 욕을 하는 나의 그런 행동은 나로써도 평생 잊지 못할 일이다. 어머니께서 가출하신지 3~4일 만에 들어오시고, 나와는 근 이틀동안 말을 하지 않았던 때이다…
부모님께 사람 이상의 행동과 인내심을 계속 요구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부모님은 언제나 척척박사라고 굳게 믿었던 나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도 나 처럼 충분히 감정적이고 나약하시다. 그것을 가리려고 할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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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과 달라진 것이라면, 이제는 부모님과 훨씬 인간적인 상호 이해와 유대가 있다는 사실이다. 알거 다 아는 사람끼리… 와 같은 느낌과 같은. 내가 좀 건방진 부분이 있지만, 부모님도 나도, 서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놀이를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예전에는 부모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효도해야된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면, 지금은 부모님께 잘해드릴 때나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때, 마치 정말 친한 친구와 교류하는 것처럼 기분이 너무 좋다. 내가 그새 많이 자라서 부모님께서 점차로 터놓고 얘기할 대화상대로 여겨주시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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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을 통해서 나는 의사소통에 있어서의 개방성, 차이를 넘어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많이 배우는 것 같다. 극적인 예이지만 어떤 부모님이 자식이 자신을 “싸이코”라고 부르는걸 같이 신이나서 “도라이!” 라고 맞장구 치시겠나… 노랑머리로 탈색했을때 “양키 고 홈!” 이라고 말하시면서 요새 애들은 머리 그렇게 하고 다니느냐고 묻는 부모님…
물론 그 웃는 모습 뒤에, 정말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빡세게 일을 하는 “성실” 이나 꼼꼼함, 부지런함은 내가 정말 배우고 싶은 것들이다. 평생을 배워도 못따라 갈 것만 같은…
[나의 꿈 나의 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가슴이 설레고 흥분되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무엇을 하고 있고 누구와 함께 있을 때 입니까?
내가 가장 존경하거나 닮고 싶어하는 3사람을 생각해 보세요.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점은 무엇입니까? 나는 무엇 때문에 그 사람들에게 이끌립니까?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꿈꿔왔던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세요. 아마 계속해서 여러 가지로 바뀌어 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 우리가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계속 바뀌어 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찾아보세요. 어떤 공통점이 있나요?
자신이 현재 관여하는 모든 관계들을 생각해 보세요. 거기서 자신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그 역할들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앞으로 5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꿈꿔보세요.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하고 있을 때 자신이 가장 신나고 보람 있으며 힘든 일도 별로 힘들지 않게 여기게 될지 생각해 보세요.
제목 : 뭔가에 올인하고 싶다. 작성일 : 2004/05/04
정말 설레이고, 흥분되는 순간을 찾다보면, 호젓한 분위기의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과 같은 것은 어느덧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일상의 나를 돌아보면 그렇게 특별한 일 없이 정돈된 방에서 깨끗한 몸으로 고슬고슬하게 따뜻한 물로 목을 축이며, 단지 흥미로 읽는 책을 읽거나, 컴퓨터로 자유연상을 한다거나, 글을 쓴다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부비적거리는 것 등을 하는 것 처럼 좋을 때도 없다. 바쁜 와중에, 힘든 와중에 어느 새 그런 시간을 갖고 싶어 하게 된다. 사람은 아마도 자기 자신이 통제할 수 있고, 예측이 가능한 상황을 선호하기 마련인가보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일과 놀이, 현실과 꿈을 구분시켜 생각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 같다. 놀이(게임)을 할 때 그 짜릿한 승부의 순간, 설레임, 두려움 등의 감정을 나는 꺼리는 편이다. 앞을 확신할 수 없는 꿈 역시 꿈일 뿐이었다. 중학교 아니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도 꿈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비슷하게 나름대로 노력을 해나가던 모험가-도박사 였다. 입시를 거치며 돌아본 나의 모습은 어느 샌가 밝혀진 길만 따라가려는, 혹은 밝혀진 길이지만 남들이 잘 모르는 숨은 길을 찾아… 어쨌든 따라가려는 모습… 성숙했다면 성숙했다지만 별로 유쾌하지 않은 그런 모습이다.
돌아보면 나는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그 결과이든 운이 뒷받쳐주든 어쨌든 꿈을 이루었을 때의 미친듯한 흥분과 기쁨을 경험해 본 사람이다. 딱 한번도 아니고 생각나는 것만 해도 몇 번. 초등학교 반 대항 농구시합을 위해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름의 훈련프로그램을 짜서 피나게 연습하고… 실제 시합에서 비오듯 땀을 흘리며 역전승을 할 때의 기분이란! 빌 게이츠 처럼 되겠다며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꿈이라고 설치며 동네 컴퓨터, 친구 컴퓨터를 손봐주고 다니던 시절… 영양가 없이 혼자 마냥 신이 났던 것이 컴퓨터 대회에서 1등을 하는 것으로 연결돼, 부상으로 컴퓨터를 타서 동생에게 줄 때의 그 뿌듯함… 여자 친구와 처음 키스할 때 온몸이 떨리는 느낌…
아직 그런 경험에서 나는 아직 많은 것을 배우지 못한 것만 같다. 분명한 것은 내가 컴퓨터를 다룰 때, 교수님들 처럼 똑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레포트를 끈질기게 기획, 완성하고 마지막 검토를 할 때, 굉장히 가슴 설레고 알 수 없는 기분 좋음이 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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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 리차드 스톨만, 버트란드 러셀 을 존경하고 닮고 싶다. 워낙 다른 사람의 간섭을 싫어하는 터라 늘 존경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는데… 어쨌든 내게 많은 감명을 주는 사람들이다. 아버지의 개방성(나와 친구가 되는) 성실함, 부지런함, 올곧은 성품 (좀 지나치게 부정부패에 민감한 선비같은 청렴함 등) 등이 좋다. “모든 정보는 공유되어야 한다.” 는 말로 유명한, 이 시대의 마지막 해커로 불리기도 하는 리차드 스톨만의 정신을 사랑한다, 이미 현실은 지적재산권 보호 등으로 찌들어버렸지만! 그 와중에서도 꿋꿋한 그의 행보는 이상적이다. 행동하는 철학자, 러셀의 “거짓과 더불어 제 정신으로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을 택하겠다” 라는 말은 내게 늘 큰 울림을 준다. 어린 시절부터 종교에 회의하는 것이나, 결국 회의론적 무신론자가 되는 것, 좌파이면서 소비에트는 싫어하는 것, 개인주의적 성향 등 나랑 닮은 점이 많다고 느끼면서 더욱 좋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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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우주, 외계인, 기계 등의 과학책을 아무 뜻도 모르며 그림을 보며 넘기던 유치원 적부터 나는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 별 생각 없었다. 과학자는 신과 같은 창조력으로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자라며 벌써 돈(!) 맛을 알아가는 도중에 (6~7세만 되어도 벌써 돈이 귀하다) 다른 친구들 보다 일찍 (아버지의 선견지명?) 1990년에 PC를 만지게 됐다. 세계 제일의 부자는 빌게이츠이고, 미래는 컴퓨터의 시대가 될 거라는 아우성 속에 자라며, 좀 구체적으로 컴퓨터 과학자,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내가 실제로 컴퓨터를 잘했기 때문에, 현실성도 있어 보였다. 정부에서는 SW 꿈나무라고 교육도 시켜줬다..; 대회에서 지속적으로 큰 상을 타지 못하고, 청소년 벤처 기업가가 되지도 못하고 어영부영 하는 가운데, 나는 일반 고등학교를 진학했고, 2학년이 되서는 문과(!) 를 택했고, 철학과를 지망했었고.., 결국 지금은 심리학과 학생이 되었다. 공통점이라면 뭔가 학자적인 것을 좋아하고, 무언가를 창조해서 세계를 지배하거나 인류에 공헌하고자 하는 야망 따위? 출세하고 싶어하고…, 돈도 많이 벌고 싶어하고… 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컴퓨터로 하는 일을 좋아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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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 남자친구, 정보통신국장, 각종 사이버 커뮤니티 클럽장, 컴퓨터 잘 하는 아이, 고등학교 컴퓨터 동아리 원로 선배, 교육 실천 동아리의 도라이, 진보 정치의 허접한 논객, 조용한 아이,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 개성있는 아이, 연락을 자주 안하는 깊은 친구…
생각나는 대로 관계에서 내 역할을 적어본 것이다. 남자친구 역할이 정말 좋은데.. (이것도 엄연히 중요한- 돈도 벌어다 주는 ‘일’이라고 생각함)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 개성있는 아이 좋다. 이유는 특별히 없이 그냥 그런 게 좋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내 꿈과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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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은 죽을 때까지 계속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5년 후에는 내가 26 살이다 2009 년. 복학 후 3? 4?학년일 텐데. 심리학을 계속 공부할 것인지, IT분야의 전문성을 더 길러서 (문헌정보학이나 컴퓨터과학을 이중전공 하던지..) 인지과학을 할 것인지 혹은 정보산업에 진출할 것인지, 경영대학원에 들어가거나 해서 기업의 인사/정보 책임자가 되려고 할 것인지.. 지금보다는 구체적인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그저 좋아하는 일에 매진해야겠는데… 쉽지 않다. 좋은 우물을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내가 좋아하는 일에 완전히 미쳐버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인지…
[감정의 조절과 대인관계]
가장 최근의 대인관계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대화 상황이나 대인관계를 생각해 보세요.
누구와 어떤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나요?
그 상황이나 관계 속에서 자신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리고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어떤 말이나 행동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했는지 자세히 적어보세요.
이번에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세요. 그 상황에서 상대방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요? 그리고 상대방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했나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런 방법으로 위에 적었던 자신의 감정을 다르게 말하거나 다른 행동으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적어보세요.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세요.
제목 : 감정, 말로 하기 어려운 걸 말로 하니 힘든 쪽글. 작성일 : 2004/05/11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럴 수도 있지…”, 심지어 방금 전에 강력하게 주장한 말이더라도 누군가의 정곡을 찌르는 반대의 말을 듣는 순간, 내가 틀린 것을 직감(!) 할 때는 곧장 말을 바꾸어버리며 히죽 웃어버리는 나.
그래서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화나게 만들기 어려운 사람으로 통하는 편이다. 설혹 화를 내는 것인지 어떤지 언성이 높아질 경우에는 대개 그 대상이 상대방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사회나 특정 집단, 불특정 다수일 경우가 많다.
물론 자신에 대해서 풍부하고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형식적으로 사귀지, 깊이 사귀지 못하기 때문에 대인관계에 별 문제가 없다는 반성을 늘상 한다. 사실이지, 뭘 쫌 진득하게 사귀어야 싸울 일이라도 생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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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가 겪은 가장 최근의 사람 문제는, 역시 지척에 두고 매일 같이 보는, 멀리 떨어진 가족에 줄 정까지 열심히 쏟고 나누는, 여자친구와의 일이었다. 반짝 일어나고, 반짝 해결되는 터라… 지속적인 고통을 주진 않지만 순간만큼은 정말 갑갑하고 화가 나는 중요한 문제였다. 사실 쪽글에 쓰기가 뭣한 측면이 있는 것이… ( 다른 사람이 보기에 ) 어떻다는 문제 정도가 아니라 내가 보기에도 사소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냥 오히려 단순한 사건이 의사소통 방법이나 관계 양상이나 내 허물을 잘 드러낼 것 같아 생각해봤다.
내가 여자친구 집에 놀러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어딜가나 컴퓨터만 있으면, 레포트나 웹 서핑이나 어쨌든 내 여러가지 할 일을 할 수 있고 하기 때문에 (컴퓨터 하기도 좋아하고) 그 때도 뭐가 바빠서인지 노트북을 꺼내서 무릎 위에 두고 열심히 두들겼다. 여자친구는 몸이 피곤하여 곁에서 옆으로 누워 TV를 보며 잠들어 가고; 나는 계속 컴퓨터만 하고… 얼마나 그랬나, 한시간 쯤? 나도 컴퓨터가 지겨워서 내려놓고 기지개를 펴고는 여자친구에게 자냐구… 물어보고, 여자친구는 내 손이 팔에 닿자마자 치워버리고 얼굴도 마주치지 않고 돌아눕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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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막 화가 나서 진행 중일 때는 무슨 말을 해도 잘 안 통하고; 그럴 때, “왜, 뭐가 문제야… 왜 그래~” 말을 아무리 나긋나긋하게 다정하게 해도 더더욱 재수없어 보인다는 것을 내가 잘 안다. 그래서 나도 역시 별 말 하지 못하고 한숨을 쉴 뿐이다. 정말 갑갑하고 뭐라도 잘 해야할 것 같은데, 내가 좀 뭘 잘못 한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고…; 나는 이것저것 제 발을 저리기 시작한다. “내가 컴퓨터만 해서 그래? 내가 이래서 그래? 내가 XX를 잘못했나..” 여차친구 들으라고 반, 나 혼자말로 반 중얼중얼 거린다. 그런데 이것도 정말 생각해보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되어서 내가 너무 비참해지므로 그때부터 입을 닫게 된다. 조용히…. 정말 골치 아픈 일이다. 시간은 느리게 간다. 그래서 그냥 “내가 잘못 했어.” 라고 말 해보기도 하는데, 솔직히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고, 짜증도 나는데 어떻게든 해결을 원하기 때문에 립서비스를 날린 것이고, 여자친구는 또 그걸 알기에 더 재수없다고 생각하는지 무시하고 날 뿌리친다. 벌떡 일어나서 “그래, 뭘 잘못했는데?” 라고 하며 도끼눈을 하고 있으면, 나도 화가 나서 “그래 모른다!!” 라고 버럭 거릴 수도 있을 텐데.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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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서야 여자친구에게 들어서 안 일이지만, 내가 컴퓨터를 할 때 자기가 말을 해도 들은 척도 안하더라. 다 씹혔다나. 아니 이럴수가. 나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내가 집중력이 그렇게 대단했나보다. 뭐 그런 것 말고도 뭔가 미묘하게 기분이 상하게 되고 우울해지는 게 있을 텐데 (여자는, 아니 사람의 감정은 원래 럭비공이니까) 내가 컴퓨터만 하면서 무신경한 부분이 있는 듯 하다.
여자친구의 말에 따르면, 내가 자기랑 똑같게 아무말 안하고, 뿌리치고, 화난 채로 삐져있을때가 // 뭐가 문제냐며 자꾸 말걸고 (어떻게 보면 시비거는 것만 같은) 손을 잡으려고 하는 것보다 (비록 계속 뿌리침 당해도) 훨씬 더 짜증나고 화를 나게 하고, 슬프게 만든다고 한다.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그 원인에 대해서도 잘 말하지 않고 스스로 모든 상황을 종결하고 정리한 다음에야 말을 하는 성격인 여자친구의 입장에서는 그냥 내가 잠자코 기다려주길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소심한 터라 화냈다가는 크게 놀랄 까봐서 나 역시 덩달아 삭이니까 나는 그게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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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정도는 없는 것 같다. 화낼 일이 없게 하거나, 그런 일이 있어도 대화를 통해서 잘 해결하고 화를 안 내거나.. 이런 건 현실에서는 나와 상대방이 모두 군자, 보살 일때나 가능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가 주목하는 것은 서로 안 다치게 잘 싸우고, 잘 화내는 방법인데… 말 자체가 이상한 만큼 어려운 일이긴 하다. 다만 내 경험상 상대방에 대한 배려 같지도 않은 배려 (따지고 보면 상대를 위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것들) 를 접고, 그냥 좀 솔직하게 자기 감정이나 기분 상태, 그리고 자기가 보는 현 상황을 말로 묘사해내는 것.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 예를들어 위에 적은 문제의 경우엔, 그냥 왜 그러냐고, 내가 몰라서 그렇다고, 갑갑하다고 줄곧 얘기하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말로 잘 안 될때 필요한 덕목은 그냥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괜히 친구들과 정치얘기로 토론하다가 감정싸움으로 번져 싸우게 됐을 때 주효했다. 생각이 다르니 어쩔 수 없다. 참고 기다려서 감정의 앙금이 좀 풀리면 좋은 게 좋은 거지로 같이 잘 살아야할 수밖에. 아 또 하나, 몸의 언어가 가능하다면 그것도 괜찮은 것 같다. 자신의 감정을 최고조시켜서 눈물을 흘려 보인다든지, 부르르 떨어준다든지, 말없이 안아준다든지, 손을 잡아준다든지…. 상황에 따라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정리하면 솔직함, 인내심, 몸의 언어?? 더 좋은 방법들이 많이 있겠지만.
하여튼 좀 분명한 것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마음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이해해야한다는 생각만 가지고는 실 상황에서 진짜 이해하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말 이해할 수 없는데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해하는 척 노력하는 몸부림 속에서 자기 자신을 부정할 수 없기에 이해하게 되버리는 어이없는 상황이 더 잦은 것 같다.
[삶의 균형과 조화]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역들을 생각해 보세요. 건강, 가족, 친구, 돈, 사랑, 재미, 학업이나 삶의 목표, 동아리, 신앙 생활 등 여러가지 영역들이 있을 것입니다. 각 영역들이 자신에게 왜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 중에서 현재 자신의 삶 속에서 중심 영역에 속하는 것들과 주변 영역에 속하는 것들을 구분해 보세요.
현재 자신의 삶이 균형있고 조화롭게 (즐겁고 행복하게) 느껴지나요? 그렇다면 그 이유를 적어보세요.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를 적어보세요.
자신의 삶을 좀더 균형있고 조화롭게 (즐겁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 중심 영역과 주변 영역을 바꾸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영역들이 들어가야 한다거나 지금 있는 것 중에서 빼야 하는 영역은 없는지 생각해 보세요.
좀 더 즐겁고 행복한 삶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정리해 보세요.
제목 : 주변영역에 더 신경써보기. 작성일 : 2004/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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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으로 답한다면 굉장히 쉽다. 바로 “나”. 내 좌우명이 허접하지만 “나는 나를 사랑한다” 인 만큼 “나”를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신을 돌아보는데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 대답인 것 같다. 나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자주 바뀐다. 사실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까? 삶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것들을 중심 영역이나 주변 영역으로 어렵게나마 구분할 수 있다면 그 기준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
자주 생각하고, 신경을 쏟고 열중하는 것으로 친다면 나는 사랑, 학업, 삶의 목표, 돈, 인터넷 생활 정도가 내 삶의 중심 영역이라고 생각된다.
무진장 걸으면 다리 아플 법도 한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은 어찌나 발걸음이 가벼운가, 좋아하는 강의를 듣거나 전공수업의 과제를 하면서 짐짓 내가 대단한 연구자인 것 같은 착각을 하는 즐거움 (레포트를 다 쓴 뒤에 여유있게 뭔가 먹으면서 검토하고 스스로 흐뭇해 할 때), 뭔가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늘 한심해하면서 인생의 목표나 꿈을 상기 해 볼때 그 어쩔줄 몰라하면서 난감하면서 그래 다시 잘 좀 해보자라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 뜨거워지는 기분, 늘 넉넉치못한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며 어디 돈 될 구멍 없나 기웃거리는 마음, 방에 들어가면 옷도 벗지 않고 컴퓨터를 켜서, 켜 둔 채로 잠들고, 아침에 학교 가기 전에 컴퓨터를 끄는 모습. — 이런 것들이 현재 내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으로 빛 대신 관심을 비춰보면 매일같이 나를 따라다니는 여러 그림자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쪽글을 쓰거나 하며 생각을 좀 해 볼 때는, 중심영역이 꼭 빈도의 문제가 아니라 뭔가 이런 것들이 중심 영역이어야 한다는 나의 바람이나 이상이 개입되는 것도 같다. 또,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것들도 있지 않을까? 위에 적지 않았던 건강, 가족, 친구, 재미, 동아리 같은 것들을 생각해본다. 딱히 아픈데 없고, 가끔 식사를 거르는 경우는 많지만 그래도 배고프면 먹고 이리저리 잘 돌아다니니 건강이 주변 영역으로 밀려난 것 같다. 하지만 초등학생의 논리로도 조금만 생각하면 건강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영역일 것이다.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 오며 가며 마주치고 있으면 같이 놀고 없으면 말고하는, 도움을 주거니 받거나 하는 게 당연하다고만 생각되는 친구들… 다 그런 식이다. 매주 늘 그 시간에는 동아리에 가는 게 그냥 관성적인 것이 되어버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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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며 자연히 정리가 되는 기분이다, 나의 삶은 대체로 즐겁긴 하지만 별로 균형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하루를 바쁘게 잘 보내고, 혹은 보내다가도 어느 순간 나의 삶 곳곳에 도사리는 위험요소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아무 병 없이 소리없이 몸이 좀 약해져있다든지, 엄마아빠의 생일도 미처 챙겨드리지 못하고는 서운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마음 아파 한다든지… 좀 엉망인 부분이 눈에 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나를 사랑한다는 나의 개인주의 성향이 나를 보이지 않게 둘러싼 것들에 대해서 애정이나 관심을 거두도록 하는 측면이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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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줄곧 신경쓰고 전념하는 것들이 삶의 중심영역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머릿 속 생각만으로 일반적으로 남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논리적으로 중요해야만 하는 것 등은 사실 말 뿐인지 일상에서 습관적이고 지속적으로 나의 삶을 지배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가 건강하다면 어느 정도 건강한 생활습관이 무의식적으로 굳어진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다만 내 삶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서는 나의 주변영역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있어서는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심영역의 것들은 굳이 신경써서 계획하지 않아도 잘 하는 한편 주변영역의 일들은 특별히 의지를 가지고 꼼꼼이 챙기지 않으면 정말로 주변영역이 되어버린다.
또 중심/주변이 꼭 절대적인 가치의 위상을 나눈 것도 아니므로, 다만 현재 중요한, 현재 주관심사일 뿐이라는 생각, 중심/주변의 영역을 유연하게 교환시킬 수 있는 자세도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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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MBC ! 의 “효도합시다!” 가 떠오른다. 고마우신 부모님께 전화 한 통, 자주 보지 못하는 친구에게 문자 한 방, 학관에서 밥을 먹을 때도 이왕이면 영양을 생각해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무기질이 고루 들은 돈까쓰 =.=;;;; 를 먹어보는 것도… 당장 눈앞의 일에만, 내가 그냥 나도 모르게 좋아서 열심히 하고 있는 일에만 신경쓰고 있는 내 삶에 균형을 가져다 줄것이다.
[가치: 소중한 것을 먼저하기]
다른 사람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무엇입니까?
지금 내 삶 속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다 갖춰지고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단 한가지 내가 포기할 수 없고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나에게 오늘 단 하루만 주어진다면 이 시간을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하며 보내겠습니까?
제목 : 의외로 안정을 소중히 여기는 나. 작성일 : 200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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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이나 단점을 말할 때, 구체적인 능력이나 취향이 아니라 성품 같이 뭔가 포괄적인 것을 생각해보려니 선뜻 적기가 어렵다. 대학 입시용, 인터넷 커뮤니티 가입용 등으로 수없이 많이 써본 것 같아도 무슨 목적없이 자신과 직접 대면하여 질문을 던져보는 건 또 낯선 기분이다.
장점과 단점은 바라보는 시각의 미세한 각도 차로도 갈리는 것 같다.
대학에 오면서 글 꽤나 쓰는 지기지우한테 물었더니, “박애주의자의 탈을 쓴 위선자이지만 자책을 잘한다” 라고 나를 평했다. 남(모두)를 위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늘 내 멋대로라는 얘기를 담은 것이다. 박애주의? ‘모든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는 정채봉님의 글귀가 나를 위한 것이라면 정말 기분이 좋겠다.
옆에 있던 친구에게도 물었더니 대뜸 하는 소리가 “싸이코” 라서 좋단다. 자세히 캐물었더니 그냥 자기 멋대로 다른 사람 신경쓰지 않고 하고 싶은거 하는 게 좋은 거라고 한다. 내 좌우명이 “나는 나를 사랑한다.” 인 만큼 자신감이나 그에 따라오는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열정이나 집요함이 내 장점이다. 유연하고 자유로운 사고는 지금은 주로 나에게만 적용되는 장점이지만 지기지우의 말처럼 다른 사람에게 되도록 간섭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차원에서 대인관계에도 드러나는 것 같다. 장점인지 단점인지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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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스로의 힘을 생각하면 인내, 성실 같은 것이 지금 제 삶에서는 가장 소중한 것이고, 바깥에서 찾는다면 여자친구가 그 자리에 있다. 막상 방학에 대한 계획을 잘 짜지도 않았지만 학교 다니는게 지겨워서 휴학해버리고 싶고 도망가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그럴땐 신촌의 비싼 물가 속에서 짧은 시간은 정말 빨리 지나가는데 뭔가 내 삶에 대한 통제감을 상실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걸까? 이런 나를 지탱하는 것이 인내나 성실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이 때로는 강박적이긴 하지만 내 장점을 감안하면 그런 장점이 가능케하는 숨은 공로자이기 때문이다. 일탈도 좋지만 무엇이든 욕구를 과감하게 해소하려들고 실제로 저질러버리는 나는 통제감이 없다면 자칫 위험한 일을 할수도 있을 것 같다. 여자친구의 소중함도 그렇다.. 가만히 있어도 소중한 사람, 내 하고 싶은 것, 내 욕심을 접고서라도 잘해주고싶고 신경이 쓰이는 그런 사람이 그녀 말고는 딱히 없다. 부모님만 해도 최근까지는, 아니 지금까지도 뭐라도 더 받아내려고하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여자친구는 좀 다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정말 신경쓰이고 꼭 나에게 하는 것 처럼 작은 행동하나하나에 관심이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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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좀 구체적으로는 인터넷가능한 컴퓨터? 문헌정보학을 이중전공하고 싶은 나는 이것저것 잡학다식하게 관심이 많다. 컴퓨터로는 정말 뭐든 할 수 있다. 독서, 음악, 영화, 그림, 사진, 인간관계, 집단활동, 자기표현, 웹서핑, 관찰, 공부 등등. 정말 컴퓨터가지고 하는 직업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무인도에 컴퓨터랑 여자친구랑 먹을거 가져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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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최근 경험 비슷하게.. 여자친구와 둘이서 배불리 먹고, 또 그렇게 좋아하는 요구르트 따위 디저트를 먹으면서 두런두런 이야기 하거나 TV를 보면서 속닥거리는 여유있는 시간이다. 이건 꼭 하고 싶다. 친한 친구들을 모아놓고 농구를 흠뻑 젖을때까지 미친듯이 하고 맥주 한 캔 마시는 것, 가족과 고기를 구워먹고 어렸을 때 처럼 우리 가족 네 식구가 나란히 누워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잠드는 것, 삶을 요약하면서 뭔가 멋있는 말 하나 남기려고 애써보는 것, 좋아하는 컴퓨터를 제 정신이 아닐 정도로 하다가 여자친구한테 작별의 인사도 하고 영원한 잠에 드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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