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의 봄
벌써 지는 꽃들이 눈에 띈다. 지난 주 만해도 본관 앞뜰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 다 어디 갔나. 여의도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열린 벚꽃 축제를 절정으로 꽃구경도 시들해졌나 보다. 그러고 보니 아직 마음 편히 꽃구경 한번 못한 나로서는 조금 억울한 일이다. 사실 내가 꽃이 피기 전에는 봄이 온 줄 모르는 약간 둔한 사람이기는 하다.
꼭 연인이나 친구와 꽃을 뒤로한 사진 한 장을 찍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구석구석 꽃이 핀 캠퍼스에서 나는 나대로 캠퍼스의 봄을 즐긴다. 그것은 보통 넉넉한 공강 시간을 잡아두고는 점심을 천천히 먹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동기들과 함께 우리는 새내기라며 선배들을 쫓아 우르르 몰려가서는 밥 한끼씩 얻어먹는 것도 벌써 한 달이고, 그렇게 해서는 도무지 혼잡해서 봄의 정취를 음미할 수가 없다. 마음에 맞는 친구 한 두 명과 구석진 자리에서 봄나물이 들어간 비빔밥을 천천히, 야금야금 먹어야한다. 날씨가 좋다, 밥 먹다 웬 한숨이냐 하며, 친구의 풋풋한 사랑 얘기를 끄집어내면 그 속에 내 첫사랑의 기억도 스며들어 소화 잘 되라며 뱃속을 따뜻하게 해 준다.
캠퍼스도 식후경이라지만 사실은 식사 후엔 어슬렁어슬렁 강의실로 향해야 한다. 꿀맛 같은 낮잠을 자기 위한 일종의 포석인 느리고 기운 없는 걸음은 필수다. 강의를 잘 듣다가 시간이 꽤 지났나, 꾸뻑 졸고는 다시 깨서 다시 좀 잘 들어 볼까 하면 이내 시계는 50분, 정말 절묘한 타이밍이다. 살짝 실눈을 뜨고 노곤노곤한 몸을 끌어다가 과학관에서 종합관 쪽으로 가는 길 위에 올려놓는다. 오른편을 보면 꽃나무들과 사람들과 고풍스런 건물들이 어지럽게 섞인다. 그렇게 조금만 가다 보면 케이블카 공사를 하는 보기 흉한 종합산 방향으로 진입하기 이전에 샛길이 하나 나온다. 그 길이 단연 나의 봄 놀이의 하이라이트로 꽃비가 내리는 좁은 길에 좌우로 진달래가 있고 군데군데 벚꽃도 있으며 막 피기 시작한 철쭉이나 단풍도 보이는 곳이다. 게다가 알 수 없는 향긋한 내음과 내리막길이 가져다주는 상큼한 바람이란!
그 제서야 맑아진 눈동자를 하고는 책 읽으러 중도로 갈까, 꽃이 제일 먼저 핀 우리 용재관으로 갈까, 흥취에서 깨어나 목적지를 정한다. 물론 쓸쓸한 여운도 남는다. ‘꽃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꽃 가까이 가는 게 괜히 미안할 때가 있다. 꽃이 다 지기전에 꽃을 만나야할 텐데, 꽃이랑 꽃구경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