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42003
 



써 놓고 보니 내 글이지만 참 X 같다.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의 위기는 무엇이고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




 먼저 인문학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인문학은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인간이) 인간에 관해서 전체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으로 정의해 볼 수 있다. 수수께끼와 같은 열려진 가능성의 인간 존재에 관해서 그 삶과 문화 등을 연구하는 것이다. 인문학은
주체가 곧 대상이고 대상이 곧 주체인 반성적 성격을 그 기본으로 한다.




 그런데 이러한 넓은 의미의 인문학은 실제 현실에서 대학과 학문으로 구현될 때는 좀더 좁은 의미를 띤다. 전통적인 고전적
인문학이 지닌 ‘주체를 변화시키고 삶의 지혜를 주는 학문’ 등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것이 근.현대로 오면서 과학적이고
제도적인 인문학으로서 세분화된 학문의 범주 속에 포함되면서 시대사조인 객관주의, 실증주의, 환원주의 등의 영향을 받아 그 본래적
성격마저 잃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것이 분과화, 전문화로 인해 ‘주체가 대상화 되어버린 인문학의 위기’ 의 실체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인간의 자기 인식의 위기이며, 과학적, 제도적 위기이며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위기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내적으로는 앎과 삶이 분리된 ‘겉돔’에 있으며, 외적으로는 학문의 분과화,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자본의 논리에 의한
‘휘둘림’에 있다.




 이러한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여러 방법이 제시될 수 있다.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해법이라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우선 인문학을 하는 사람 각자의 반성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실천을 도외시하고 적당한 중립과 객관을 유지한
채 지식 권력이 되어가는 학자의 태도는 대중을 실망을 시킨다. 외래 사상, 문화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도 나쁘지만 여과없이
유입하여 학문적 시녀가 되는 것도 문제이다. 현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내고 사람들에게 영혼의 울림을 전해주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또한 한편으로는 인문학을 고사시키는 현실 사회의 자본 논리에 대한 비판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사회에 만연한
배금주의의 폐해를 직시하고 있는 우리가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는 평범한 진리를 잊은 것은 아닌지 의문을 던져보아야 할
때이다.






<철학이란? 왜 공부해야 되는가?>




 철학이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한 대답을 한 마디로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람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와 같은 인간과 세계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사유하는 것이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이라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는 哲學, 즉 밝은 배움, 눈뜨는 즐거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지에 대한
사랑”이라는 philosophia 와도 상통하는 것이다. 사람을 ‘삶+앎’으로 파악해본다면 인간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삶에 대한 주체적 반성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즉 ‘철학함’은 인간의 특성인 동시에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철학의 분야를 명확히 재단할 수는 없지만 다음과 같은 그림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즉, 존재론에서는 인간과 세계의 존재 자체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던지며, 형이상학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개념이 여기에 속한다. 또, 인식론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지, 지식을 얻을 수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
경험론, 합리론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옳은가? 어떤 것이 아름다운 것인가? 를 따지는 것은 가치론의
문제이다. 윤리학, 미학 등의 입장에서 실천의 문제를 중요시하는 이 분야는 동양 철학에서 특히 집중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같은 철학을 하는 태도가 한편으로 중요한데, 철학함의 주체는 늘 보다 넓고(전체적), 깊고(근원적), 바르게(논리적, 비판적, 이성적) 으로 사유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동양 사상이 왜 “생태학적 세계관 + 마음공부 ” 인가?




 동양사상은 공통적으로, 우주 만물의 연관성, 우주적 어울림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생태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또 주체의
올바른 삶으로의 변화, 인생을 바르게 사는 수양론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마음 공부’를 그 공통된 특징으로 한다.


 


 중용 1장의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인간의 마음이 중화에 이르면, 천지가 그 자리를 편안하게 여기며, 만물이 삶을
실현할 수 있다.) 등에 이 같은 생태학적 세계관이 잘 드러나있다.  인간을 우주 자연 속의 특별하고 책임을 지닌 존재로 보았던
서양사상과 달리 동양 사상에서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우주 만물의 연관 가운데 놓여있는 하나의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이다.






<유학>




유학은 仁 의 개념을 중심으로 한 仁學이며, 성현이 되는 것을 추구하는 聖學 이다. 仁은 仁: 者. 人也 , 仁: 人之安宅, 義:人之正路 로 정리된다.




유학은 일반에 흔히 알려진 것과 같이 조상님 잘 모시고 부모에 효도하는 데 불과한 예의범절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유학의 愛人 은 존재의 근원에 대한 감사인 孝에서 비롯되며 이는 우주 만물에 대한 사랑인 愛物로 까지 확장된다. 또
克己復禮, 알人欲, 存天理 에서 처럼 ‘나’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天’에 이르는 개념이다. 또 忠恕의 恕 의 개념에 주목하면
仁은 己所不欲, 勿施於人 과 같은 구체적인 실천을 제시한다.



인간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동물에게도 시키지 않는 것, 타자를 살려주고 길러주는 마음이 유학의 핵심인 仁 인 것이다.
이를 잘 실천하면 인간은 우주의 꽃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공생공존은 커녕 우주적 문제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유학은 오늘날에도 “공존과 공생의 철학”으로 그 중요성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강희복 교수는
이러한 유학을 “인터넷의 철학”이라고 까지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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