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82001
 

소설 : 스프링복이라는 양떼들

친구 허승의 고교시절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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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빨리 일어나!”

날카로운 목소리가 방안을 찔렀다.

“5시 50분이다. 빨리 안 있나면 늦고 말아.”

상형은 지금이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언제나 부드럽고 다정스런 엄마의 목소리도 이 때만은 너무나도 징그럽고 듣기 싫은 소리가 되었다. 간밤의 잠에 한창 취해있을 시간에 그 잠의 늪에서 억지로 건져 올려지는, 더더군다나 스스로가 스스로를 뭍 위로 던져야 한다는 것은 하루 일과 중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것이다. 지난날의 피로가 아직 채 풀리지 않아서 축 늘어진 몸으로, 일어나자마자 단 1초도 느슨하게 쉬지 못하고, 세면, 의복, 식사를 논스톱으로 해결해야 한다. 시간적으로 20분이 채 되지 않지만, 몇 시간의 도보를 한 것처럼 발바닥이 쑤신다. 그럴 때마다 현관 앞에서 두 다리를 쭉 뻗고 주저 않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강한 압박감과 공포에 차마 그렇지 못하고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오곤 한다.

일단 밖으로 나오면 피로의 느낌은 한결 나아진다. 길바닥에 주저앉고 싶진 않는 것으로 보아서 말이다. 아파트에서 나와 골목을 몇 번 돌면 스쿨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오늘은 두 명이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정지를 하자 다시 발바닥에 피로가 느껴졌고, 아무렇게나 주차된 승용차 위에 걸터앉고 싶어진다.

조금 있으니 노란 색의 스쿨버스가 왔다. 보이긴 꽤 오래 전에 보였다. 그러나 골목이 워낙 길고 멀어서 버스가 보여도 1, 2분이 지나야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한다. 빠른 걸음으로 버스를 향해 걸어갔으나 다른 두 명이 더 먼저 타려했기에 잠깐 기다렸다. 그리고 상영도 버스에 탔으나 이제야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는 사람이 멀리서 보였기 때문에 버스의 출발은 조금 늦어졌다. 빈자리가 군데군데 보였으나 될 수 있으면 사람이 앉지 않은 자리에 앉고 싶었다. 중간쯤에 아무도 타지 않은 그런 자리가 두어 개 있어서 그 곳에 앉았다. 혹시 누가 자기 옆에 앉을 지도 모르기 때문에 가방을 앞 등받이에 걸지 않고 옆자리에 놓았다.

버스에 타 엉덩이에 무게가 실리자 비로소 안정을 되찾았고 이런저런 생각도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상영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한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것은 대충 거의 모든 아이들이 갖게 되는 불평이고 불만이었다. 상영 역시 즐거운 놀이에 대한, 혹은 편안한 생활에 대한 욕망이 있었고, 그 욕망이 학업이라는 상황에 의해 모두 억눌려지는, 아니 파괴되는 것이 매우 못마땅하였던 것이다.

‘젠장할!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는 거야! 대체 왜 이런 고생을 하는 거냐고! 왜! …………왜? 왜라……’

오래지 않은 과거였다. 그 언젠가 상영은 문득 자신의 이런 고통에 대한 원인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상영은 버스에 탄 이래로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평과 불만만을 속으로 외치고 있었으나 문득 ‘왜’라는 생각을 머리 속으로 하게 되었다. 그것은 실로 기묘한 기적이었다. 평소의 그였다면 결코 신경이 쓰이지 않았을 터이다. 그러나 왠지 그 때만은 ‘왜’ 라는 것이 눈에 띄었다.

‘왜라……..’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이 힘겨운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자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들이 있었으나 그 생각들은 너무나 아득하고 단편적인 이미지 덩어리들이었다. 그 상념의 조각들은 뒤죽박죽 섞여 혼란스러우면 혼란스러운 그대로, 난잡하면 난잡한 그대로 상영의 머리를 휩싸고 돌았다. 상영은 그 파편들을 정리하길 원했다. ‘정리를 해야지.’하고 생각했다기보다는 끝이 날카로운 조각들이 자신의 머리를 쿡쿡 쑤시기에 정리를 하지 않고는 베기지 못할 것 같았었던 것이다.

상영은 그 정리를 지금 다시 한번 하고자 한다. 그때 당시 정리가 덜 되었다거나 모자라거나, 혹은 그 정리를 심화, 확대하여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때 하였던 연산 과정을 다시 한번 그대로 되짚을 터임인데도 불구하고 그저 다시 한번 정리를 원하였다. 그 정리가 흐트러져, 느슨해진 파편들이 그의 머리를 다시 쑤시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머리를 두어 번 흔들고 마음을 편히 하였다. 아무렇게나 엉킨 매듭을 풀 때 무조건 잡아당기거나 문지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차분히 매듭의 끝에서부터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이번에도 역시 상영은 매듭의 끝에서부터 차근히 시작하였다.

‘나의 고통의 원인. 고통, 적절한 용어를 찾아봐야겠지만…………. 아무튼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우선, 정상인의 생활이 불가능할 만큼의 수면이다. 밤늦게 자기 시작하여 새벽 일찍 일어난다. 4시간, 많으면 5시간이다. 이것도 잠자리에 들어서 일어나기까지의 시간일 뿐이다. 진정 수면 시간은 더 적을 것이다. 이 정도의 수면은 딩가딩가 노는 사람도 부족할 형편이다. 하물며 하루종일 스스로를 내달리고 있는 우리 같은 학생들이야 더 할말이 있겠는가? 전날의 피로를 풀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시간이다.

그렇다면 부족한 수면은 무엇 때문인가? 공부, 공부. 공부 때문이다. 아아, 공부가 나쁜 것은 절대 아니지 않는가? 공부 자체를 부정할 순 없다. 역시 그렇다면 공부는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인가?

………………………후우

다른 공부는 몰라도 지금 내가 하는 공부는,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 공부는,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이다.‘

상영은 가슴의 답답함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져 왔다. 고개 하나가 겨우 드나들만한 크기의 창문을 열고 턱을 가까이 댔다. 그러자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강하게 불어와 그의 뜨거운 볼과 목덜미에 부딪혔다. 빠른 공기는 다시 그의 체온을 빼앗아 멀리 사라졌다. 어느 정도 몸이 식고, 가슴이 가라앉자 다시 등과 목을 등받이에 기대고 정자세로 앉았다. 문은 열어둔 채였다.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라…….. 특히, 흔히 말하는 명문대 말이군.’

그때까지 그는 그걸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왔다. 당연히 공부란 대학 가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왠지 그때만은 이런 논리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십 수년간을 당연하다고 보아왔고, 들어왔고, 믿어왔던 그 논리가 말이다.

그리고 다시금 새롭게 깨달았다.

‘대학가는 것만을 목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분명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야.’

“끼이익-”

운전 기사의 실수로 약간의 문제가 발생하였다. 버스 시간은 늦어지고 학생들은 웅성거렸다. 상영 역시 약간 놀랐고, 버스의 사고에 대한 잡념 때문에 사고가 아무런 무리 없이 수습이 되고 버스가 출발했음에도 다시 하던 생각을 이어가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대학을 가는 것은 공부를 하기 위하여 가는 것이야. 맞아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 대학은 우리가 좀더 심오하고 깊이 있는 공부, 전문적인 지식을 쌓기 위한 장소이고, 공간이야. 하지만 사람들(학생이든, 어른이든)은 명문대학이 위인을 만든다(그것도 대학에서의 학습을 통해서가 아니라 출신이라는 명함을 통해서)는 잘못된 생각으로 대학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설정해 버리거든. 대한민국에 학생은 넘쳐나고, 명문대는 한정되어 있거든. 그들이 모두 명문대를 목적으로 경쟁하니 과열될 수밖에…….’

갑자기 부시럭거리는 소리와 웅성거림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버스가 학교에 도착한 것이다. 상영은 생각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통로를 통해 버스에서 내렸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얇은 청남색의 하늘이 볼만했다. 벌어진 와이셔츠의 깃 사이로 찬바람이 감겨와서 몸을 한번 부르르 떨고 느릿느릿 교사로 걸어갔다.

‘처음에는 모두 어느 정도까지만 학업에 열중하겠지. 자신의 취미도 있고, 자기가 진정 하고 싶은 일도 있지 않겠어? 의사가 되고 싶다면 나름대로 의학 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조사도 하고 알아보기도 하겠지. 법관이 되고 싶다면 역시 법전이나 살펴보는 재미를 왜 마다하겠어? 하지만 점점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도 많아지고, 서울대에 가고 싶은 사람도 많아지지. 처음에는 1시간을 공부하면 되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이 1시간을 공부한다면 누군가는 2시간을 공부해야 안전하게 합격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다른 사람은 다시 3시간을 공부할 수밖에 없어. 점점, 조금씩 조금씩 공부를 더 하다보면 어느 샌가 미친 듯이 공부만 하는 거야. 공부를 하지 않으면 서울대에 떨어지거든. 이것이 현실이야.

아! 다 왔군. 첫 시간이 뭐드라?……………. 이런, TAPS인 것 같은데?‘

실제로 첫 시간은 TAPS였다. 상영은 그 TAPS를 몹시 싫어했다. TAPS를 싫어했다기보다는 TAPS 수업을 싫어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교실에 가방을 내려놓고, TAPS교재만을 달랑 들고 특별실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특별실에서 특별반의 수업이 치러지기 때문이다. 교실에 들어가니 이미 기숙사생들이 우글우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상영은 항시 앉는 오른쪽 맨 앞자리에 교재를 놓고 털썩 자리에 앉았다. 시작종이 이미 쳤으나 선생님이 들어오시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상영은 옆자리에 앉아 있는 짝에게 말을 걸었다.

“빌어먹을. TAPS 수업 받기 싫어 죽겠어.”

“왜?”

“이 수업은 오직 TAPS시험 하나만을 치르기 위한 준비잖아.”

“…………….”

“본디 TAPS 시험은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평가하는 하나의 평가 방법 아니냐?”

“………그…렇지.”

“그렇다면 영어 실력이 우수한 사람이 실력을 평가하기 위해 TAPS 시험을 치르는 것이 정석이잖아. 하지만 그 TAPS 시험을 노리고 TAPS 공부를 한다는 것은 왠 삽질이냐.”

“하지만 다 그렇잖아. 모든 게 다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할 공부가 하나도 없어.”

“….. 적어도 교과서는 기본 소양으로써 배운다고 하여도 충분하지만…………..”

선생님이 들어와서 헛기침을 크게 하였다. 평소보다 약간 더 늦은 감이 있기에 무안해서인지, 아니면 교실이 너무 소란스러웠기 때문인지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수업이 시작했으나 한번 이런 방향으로 생각해버린 상영은 계속 사고가 그런 식으로만 돌아갔다. 수업 내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짜증이 나기 시작하였고, 그런 상영도 괴로웠다.

상영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고 짜증, 괴로움, 못마땅함도 점차 사라져 갔다. 그리고 수업의 둔탁한 목소리도 점점 아득해져 갔다.

2

처음 대학 입시에 대해 비관적인 회의를 품은 이래로 변해버린 상영의 태도에 대해 많은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지적해 왔으나 무엇보다도 우선 상영, 그 자신이 의욕을 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날이 거듭할수록 점점 더 많은 수업이 못마땅했고, 교과서는 점점 더 깨끗해 졌다.

몇 교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거의 몽롱한 상태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 날 오전, 물리 수업이 있었다. 원래 교실 분위기가 좋은 것이 아니어서 활기찬 분위기의 수업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었다. 물리 같은 과목은 특히 더 그랬다. 마치 예배하듯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교사의 열띤 강연, 침묵하는 학생들의 수용이 이루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영은 이에 숨이 막혀하곤 하였다.

지금의 선생님도 화가 나고 숨이 막히는지 매우 화를 내면서 말하였다.

“탁! 탁! 잘 들어! 여기는 시험에 잘 나오는 부분이다. 다음 중간고사에서도 이 부분은 반드시 나온다. 탁! 탁! 거기! 야 임마! 시험에 나온다고 말하는데도 엎어져있냐!”

여기저기서 부스럭거리는 소리, 책장 넘어가는 소리, 혹은 옆 친구에게 페이지를 물어보는 소리, 그리고 동그라미든, 별표든, 당구장 표시든, 혹은 ‘중간고사 반드시 출제’라는 문자든 간에 시험 문제를 표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는 수첩을 넘겨가며 수첩에 적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한 문제는 맞았다는 만족감과 함께 다시 침묵 속으로 수업은 빠지고 말았다.

‘흥! 시험에 나온다니까 열심히들 적고있구나. 하지만 그보다도 시험에 나오니 잘 들으라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 소리는 시험에 나오면 잘 듣고, 나오지 않는 부분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소리구나. 그 말은 다시, 시험을 보기 위하여 공부를 한다는 소리이군.

쳇. 그렇다면 수업을 하는 의미가 하나도 없지 않는가. 차라리 시험문제를 가르쳐 주고 말지. 명문대에 많은 학생을 보내기 위해서는 그게 또 안 돼지. 흥. 쳇!‘

“야, 거기! 고개 안 들어! 너 말이야, 너, 뭘 두리번거려. 야이놈의 새끼야. 시험에 나온다고 그렇게 말을 해도 고개 숙이고 앉았냐? 으이그.”

상영을 두고 한 말이다. 물리 시간 내내 시험을 염두에 둔 엉터리 수업이 못 마땅하여 불평을 늘어놓거나 트집거리를 찾아내어 속으로 곱씹어대고 있었으나 선생님의 꾸중이 오히려 상영의 마음을 상쾌하게 해 주었다. 상영은 괜스레 마음이 차분해지고 가라앉았으며, 조금 전만 하여도 무조건 트집만 잡아내었지만 지금은 다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사고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자세를 바로 하고 고개를 들었다. 언뜻 보면 교사 혹은 칠판에 집중하고 있는 듯 하였지만 자세히 그 초점을 맞춰보면 그 초점은 교사가 아니라 자신 내부, 아니면 학교 전체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적어도 초․중․고등학교 교과 과정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 지식이고 소양이라고들 한다. 이 물리도 실생활과는 유리된 필요 없는 수업인 듯 느낄 수도 있지만 실은 실생활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학문이다. 마찰력이라든가 관성이라든가 하는 것은 우리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기본 지식이고 기본 소양인 교과목을 얼마나 열심히 학습하였는가, 현재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혹은 상급학교에 진학하기에 어떤 실력인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 시험이 아닌가?

그런데……………‘

상영은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처음부터 사고를 정리하기로 한 생각을 후회하였다. 그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실은 상영으로서는 더 이상 생각한다는 것이 무의미하였다.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알고 있을 것이다. 허나 그것은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라고 모두들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현실이 지속되는 것이다. 실제와 원리,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라는 것이 너무나 어릴 적부터 머리 속에 뿌리 박혀 왔다. 그것은 기성세대가 심어 주었고(물론 너무나 이상주의적인 사고의 위험성을 알고 충고를 목적으로 한 것이지만), 그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아득히 울려대는 외침 중 명확히 들려온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3

7교시에 방송 조회가 있었다. 우선은 교내외 각종 대회에서 입상한 학생들에 대한 수상이었다. 수학경시대회, …….., 그리고 백일장, 청소년 문학상도 있었다.

노오란 뿔테안경을 낀 학생주임 선생님이, 약간 벗겨진 이마를 덮기 위해 기른 머리가 마이크에 얼굴을 갖다대는 바람에 흘러내리자 다시 손으로 슬쩍 쓸어 올리며, 사회석에서 학생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였다. 그러면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학생들이 그 자랑스러운 육신을 카메라 앞에 노출시키고, 절도 있고도 당당하게, 뚜벅뚜벅 소리를 내며 정중앙으로 걸어 나가 교오장 선생님의 앞에 가 선다. 그리고 허리 굽혀 느릿느릿 정중히 인사를 하면, 다시 학생주임 선생님은 허리를 약간 굽혀 얼굴을 마이크에 갖다대고(두 손은 어떤 종이대기를 들고 있다.) 시상내역을 발표한다. 학생주임 선생님의 말이 끝나면 곧바로, 탐스럽고 욕스럽게 처진 두 볼을 늘어트린 교장 선생님이 약간 뚱뚱한 체구로 손을 교차해가며 학생에게 상장과 경우에 따라서는 상품을 건네준다.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울려대고 수상 학생은 다시 허리를 굽히고 두 손을 머리 위에 올려 상을 받는다. 그리고 다시 인사를 한번 걷어붙이고 속으로 하나, 둘 구령을 외며 뒤로 돌아 그 절도 있고 당당한 걸음걸이를 다시 뽐내며 카메라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모든 학생의 시상이 끝나고, 텔레비전에 교장의 큰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잡힌다. 모두들 속으로 철렁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교장은 이번에도 우리 학생들에게 간단한(내용은 간단한, 구성은 복잡한) 당부를 할 것이다. 상영은 그다지 흥미가 없었으나 그렇다고 꺼리고 피할 것도 없었으며, 그다지 따로 할 다른 일이 없었으므로, TV속 등장인물을 쏘아보고 있었다.

교장은 별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본 모의고사 성적이 나왔습니다.”

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무슨 성적 분석가처럼 도시와 학교 전체의 성적을 분석하여 뭐라고 뭐라고 학생들에게 설명하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성적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대학 입시 제도와 각 명문 대학들의 입시에 관한 설명을 해 주었다. 무엇은 어쩌고 무엇은 어떻고…… 그 내용을 파악할 순 없었으나 교장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수능의 중요성, 즉 수능에 힘쓰라는 말이라는 것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수능의 중요성과 수능 공부를 철저히 하라는 말을 마이크에 침 튀는 소리가 날 정도로 강력하게 역설하더니, 이번에는 서울대에 가라는 말이다. 그 내용인즉, 이왕 고생을 하는 거 서울대에 가라 이 말이다. 그러면서 밑도 끝도 없이 서울대 출신의 인재들은 훌륭한 것이 당연한 듯 말하였고, 서울대에 가서 사회에 환원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라 하였다.

‘흥, 웃기고 있네. 서울대 나온다고 훌륭한 인재고, 사회에 환원하는 훌륭한 사람이더냐? 그런 말도 안 되는 논리가 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느냐.

우리 나라는 매년 수천 명의 서울대 졸업생을 배출하는데, 그렇다면 매년 적어도 수천 명의 훌륭한 인재가 확보되고, 매년 적어도 수천 명의 사회에 환원할 훌륭한 위인이 확보되는 것인데 왜 우리 나라는 이 모냥 이 꼴이냐?‘

라는 사고를 상영은 하였으나, 그 보다 먼저 웃음부터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상영에게는 세 살 위인 누나가 하나 있다. 고등학교를 다닐 당시의 누나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물론 상영도 상위권에 들어간다는 실력이지만 당시 상영의 누나는 한층 더 하였다. 본디 타고난 재능과 두뇌도 있었지마는 그보다는 그 노력이 심상치 아니하였다. 모두 공부 할 때는 다 같이 공부하고, 남이 공부 할 때는 따라 공부하고, 라이벌이 공부 할 때는 역시 공부하고, 다른 이들이 잘 때는 자신만이 공부하였다. 매일 3 시간도 자지 못하여 코피를 흘리기 일쑤였고, 너무나 부족한 수면에 입맛도 없어서 쓰디쓴 약심(力)으로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가 바라던 그 서울대학에 입학하였다.

며칠 전이었다. 상영은 누나에게 사회 탐구에 관한 문제를 하나 물어보았다. 정치 문제였는데 참고서에 분명 기재 되어있었지만 참고서를 학교에 놓고 온 바람에 똑똑한 누나에게 물어본 것이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누나는 그 문제를 알지 못하였다. 그 서울대생이 말이다. 더더군다나 정치는 민주시민의 기본적 소양 아닌가? 입시 공부에서 1년이 넘게 손을 떼었던 누나는 대학에 필요한 것을 빼 놓고는 까마득히 잊어버린 것이다. 사실 그것이 불편하지도 않았고, 당연하게 여겨졌으며, 오히려 편한 것인 지도 몰랐다.

이런 생각을 하니 상영은 대학입시 만을 위한 공부라던가 서울대생이라는 것이 가소로와 미칠 것 같았다. 상영은 지금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큰소리로 박장대소를 하며 비웃어 주고 싶었으나 모두들 미친놈이라 할 것 같아서 참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장 선생님은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에 대하여 말씀하였다. 요즘 자율학습, 보충수업을 폐지하자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학교는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이런 것들이 왜 필요한가를 빼놓지 않고 설명하였다. 좀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이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이 필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충수업을 반대하는 입장에 관해서도 말하였다.

“맞습니다. 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아주 바른 말은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의 교육은 그렇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교육의 이상입니다. 이상향 말입니다. 인성위주의 교육, 이해와 실습위주의 교육, 예절교육, 도덕교육, 다 좋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인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현재 우리 나름대로의 현실이 또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요. 그게 없으면 여러분이 큰 손해를 봐요. 그렇지 않습니까?“

상영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현 시점에서 최선책만을 생각하고, 현 시점에서의 이득만을 생각하면 결국 이상향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만다는 것을. 축구 선수가 공을 드리블 할 때에 선수가 가고자 원하는 방향이 있을 것이다. 그 때에 선수가 공과 자신과의 거리만을 생각하고 가장 차기 편한 곳으로만 공을 굴려댄다면 가고자 원하는 곳과는 영원히 동떨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축구 선구가 원하는 곳으로 공을 몰고 가려면 두세 걸음 더 나아가는 수고는 감수하여야만 한다.

우리는 현 시점에서 보충 수업을 하지 않는다거나 여러 가지 강행군의 고삐를 늦추면 근시적인 시점에서 손해보는 것은 너무나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이 피해가 진정 이상적인 교육현실로 우리를 이끈다면 이 정도는 감수하여야 한다. 그것은 손해라고 말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주번은 TV를 말없이 껐다. 텔레비전은 ‘팟’ 하는 소리를 내며 어두워졌다.

4

청소도 하였다. 특기적성교육도 하였다. 저녁밥도 먹었다.

이제는 10교시다. 오늘 마지막 수업이다. 무론 야간 자율 학습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수업이라는 데에 그저 흐뭇할 따름이었다. 10교시 수업은 특별반 수업이었다.

언어영역 교재를 들고 특별실로 걸어갔다. 이번에는 바리바리 싼 짐이 좀 되었다. 언어 영역 문제집 외에도, 국어 단어장, 어휘록, 국어 사전, 등등등 하니 양손을 가득 사용하고도 약간 불안한 감이 있었다.

특별실을 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지나고도 긴 복도를 지나야 한다. 복도는 상영의 교실 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 졌고, 학교 뒤편으로 가로등이 켜져서 가로등 불빛이 창으로 들어왔다. 그러면서 창틀에 부딪혀 들어오지 못한 불빛이 야속하게 그림자를 그려놓았다. 어두운 복도(다른 교실은 모두 빈 교실이고, 특별실 하나만 불이 켜져 있었다.)에 그림자가 꽤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상영은 별다른 감회 없이 복도를 뚜벅뚜벅 걸어갔다. 확실히 어제보다는 밝았다. 분명 땅 밑으로 떨어지긴 하였으나 아직 태양의 그 미련이 땅 끝을 가르고 있었다. 이 복도를 매일 걷기에 하루하루 낮이 늘어가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교실에 들어왔고, 역시 항상 앉던 그 자리에 앉았다. 상영은 무거운 짐을 들고 먼길을 온데에 약간의 피로를 느끼고 책상에 엎드렸다.

‘자신이 이렇게 무언가를 깨달았다면 어떤 행동을 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무엇이 잘못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명백하지 않은가? 당장이라도 대학 입시만을 위한 공부를 그만두고 진정한 교육과 학습을 몸소 실천하여 교육의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학교를 그만두어야 할까? 아니면 학교를 다니면서도 대학 입시를 무시하고 진정 학문에 매진해 볼까?’

이런 생각에 잠시 공포를 느끼고 있을 때에 그의 목에 무엇이 닿았다. 그것은 강하게 닿았다. 그래서 ‘짝’하는 소리가 온 교실에 울렸고, 그의 목으로부터 시작한 자극이 전달되어 목에 통증을 느끼게 되었다. 보이진 않았으나 그의 뒷목에는 분명 가느다랗고 시뻘건 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을 것이다. 그도 모르는 어느새 수업이 시작하여 선생님이 들어오신 것이다. 그는 그것도 모르고 엎어져서 생각에 잠겨 있었고 그 품은 마치 엎어져 자는 모양새였다. 게다가 그의 위치가 교사들의 입구가 아닌가. 그야말로 ‘나 좀 때려줍쇼’하는 몸부림이었다.

한동안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퍼졌으나 수업은 시작하였다. 오늘은 듣기 수업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큼지막한 녹음기를 가지고 왔다. 거기에는 교무실에서 시작에 딱 맞춰 논 테이프가 삽입된 상태였다. 선생님은 서투르게 녹음기의 버튼을 눌렀으나 그 서투른 손동작에 제대로 재생이 되지 않았다. 물론 여기저기서 간헐적인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겨우겨우 테이프는 재생이 되었다.

듣기 평가는 시작이 되었고, 또박또박 발음하기 위해 억지로 애쓰는 성우의 우스꽝스러운 발음에 다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으나, “슷” 하는 선생님의 눈치에 웃음소리는 멎었다. 나는 내리 두 문제를 맞았다. 답을 확인한 것은 아니나 너무 쉬워서 보고 말 것도 없었다.

“띵, 3번, 이번에는 어떤 강연의 첫 부분을 들려 드립니다. 잘 듣고 물음에 답하십시오.

여러분, 아프리카에 가 보셨습니까? 아프리카에는 스프링복(springbok)이라는 양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 양들은 평소에는 작은 무리를 지어서 평화롭게 풀을 뜯다가 점점 큰 무리를 이루게 되면 아주 이상한 습성이 나온다고 합니다. 무리가 커지게 되면 맨 마지막에 따라가는 양들은 뜯어먹을 풀이 거의 없게 되기 때문에 좀더 앞으로 먼저 나아가서 다른 양들이 풀을 다 뜯기 전에 풀을 먹으려고 합니다. 그 와중에 또 제일 뒤에 처진 양들은 역시 먹을 풀이 없게 되니, 앞의 양들보다 조금 더 앞으로 나서려 하겠지요.

이렇게 뒤에 있는 양들은 뒤쳐지지 않으려고 조금씩 앞으로 더 먼저 나가게 되고, 그 앞에 있는 양들은 뒤에 오는 양들에게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고 더 앞으로 나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맨 앞에 섰던 양들을 포함해서 모든 양들이 뒤쳐지지 않으려고 뛰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풀을 뜯어먹으려던 것도 잊은 채, 오로지 다른 양들보다 앞서겠다는 것만을 생각하여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게 되지요.

한번 뛰기 시작한 수천 마리의 양 떼들은 성난 파도와 같이 산과 들을 넘어 계속 뛰기만 합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해안에 다다르면, 어떻게 될까요? 모두 바다로 뛰어들게 되는 것이죠. 수천 마리의 양 떼들이 굉장한 속도로 달려왔기 때문에 앞에 바다가 나타났다고 해서 바로 정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 번에 수천 마리의 양이 익사하는 사태도 발생한다니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요.“

녹음기에서 문제가 나오고 그 문제를 들으면서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것은 놀라움이요, 두려움이요, 황당함이요, 서러움이요, 당황스럼이요, 슬픔이요, 안타까움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감정은 결코 두려움, 황당, 설움, 당황, 슬픔, 안타까움은 아니었다. 단전에서부터 복받쳐오는 이 감정은 나의 전신을 마비시켜 온 육신이 쭈삣쭈빗하게 저려왔고, 가슴이 답답하게 숨이 콱 막혔으며, 머리는 드릴로 구멍을 뚫은 듯이 멍한 한편, 불안, 초조, 안타까움을 느꼈다.

“아아주 쉽죠오. 정답은 3번 무모한 과열 경쟁의 폐해겠죠? 이거 틀리는 사람이 있을까? 틀린 사람 없죠? 이거 모르는 사람 손 들어봐, 없네. 다 알지?”

이 3번 문제의 듣기 대본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스프링복이라는 양떼들의 어리석은 행동과 바다에 스스로 투신하는 어처구니 없는 종말이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어서 웃음이 터져 나왔을 것이다. 그 웃음은 스프링복이라는 양떼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비웃음이고, 무시고, 경멸이었다.

‘이것이다!

스프링복이라는 양떼들이 그들이 어느새 무모한 경쟁의 과열 상태에 들어갔는지 모르고 바다를 향해 달리고 바다를 향해 투신하듯이, 우리도 모른다. 아는 자가 알려줘도 모른다. TV에 나와 떠들어도 모른다. 이미 아는 사실이라고 하여 무시하고, 진부한 내용으로 취급하고, 더 이상 이해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매스컴에서 너무 떠들어대는 것이 그들을 무감하게 만들어 버렸다. 분명 잘못이고, 모순이지만 그것이 현실이고, 이런 논리를 (현실과 함께)당연하게 받아들여 버린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문제이다. 모르는 것, 알고도 모르는 것, 그리고 무감해지는 것.

우리는 애초에 조금 더 전문적인 공부를 하려던 것이 이제는 애초의 목적인 학문 따위는 잊어버리고, 아니 애초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처음부터 모르고, 오직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미친 듯이 공부를 한다. 공부도 아니다. 문제 풀이다.

이러다가는 우리도 언젠가는 그 양떼들처럼 우리모두 바다에 풍덩 투신할 것이다. 모두, 사회 모두가 말이다. 멈춰야 한다.‘

그 3번 문제의 지문을 듣고 상영은 도저히 나머지 문제를 풀 수가 없었다. 귀는 소리를 들어도 그 뿐, 그의 사고에 끼어 들 틈바구니가 없었다. 그렇다고 상영으로선 더 이상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너무나 분명한 일 아닌가? 더 이상 규명하려 해봤자 시간 낭비고 헛수고일 뿐이다. 다만 자신이 알아버린 그것에 대한, 깨달아버린 그것에 대한 여운과 감회가 머릿속에 가득 차 서로 빙빙 돌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너무나 무섭고 두려운 공포가 그로 하여금 어서 선택을 하라고 재촉하는 것이었다.

너무나 명백한 일, 그래서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조차도 분명히 알았지만, 오히려 행동의 방향을 선택하라고 재촉하는 그 어떤 공포 때문에 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런지 상영은 몰랐다. 머릿속으로는 어떤 식의 행동을 해야할지를 그려놓았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너무나 무서웠던 것이다.

5

이곳이야말로 아프리카의 초원. 잔디부터, 새, 수풀, 그리고 높은 나무까지, 모든 만물들이 먹고 즐길 수 있는 온갖 것이 다 있는 곳이다. 어디서는 가녀린 초식 동물들이 이런 퍼런 것을 평화로이 뜯어먹고, 어디서는 몰래 숨어 이것을 훔쳐보며 그들을 뜯어먹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어디서는 지독한 평화가 아득히 깔려있고, 어디서는 처절한 암투가 남몰래 멈추지 않고 있다.

스프링복이라는 양이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는다. 두 다리를 사알짝 벌리고, 고개를 땅에 푹 숙이고는 가지런히 놓여있는 이빨을 열심히 움직이어 푸르스름한 잔디를 베어먹고 있다. 잔디는 충분했다. 그가 평생 먹다 죽어도 먹었는지 조차 모를 듯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등 뒤, 저기 우거진 풀숲에서 들려오는 암투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장면은 바뀌었다. 수천 마리의 스프링복이라는 양떼들이 정신없이 달리고 있다. 그 중에는 그도 있었다. 그들은 마른 초원에, 잔디 밑에 꼭꼭 숨어 있는 모래와 먼지를 찬다. 그들의 뒤에는 뜨겁고 푸른 초원에 어마어마한 흙먼지만 남아있다.

처음에는 그들이 지나간 후에 아무 것도 남지 않고, 붉은 모래와 시커먼 흙만이 남아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리던 적이 있었다. 그도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자 좀더 앞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빨리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 것도 모른다. 왜 이렇게 내달리고 있는지, 그저 모두들 앞으로 달려간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 달려간다. 그도 앞으로 달려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뿐, 왜 그런지는 모른다.

그러던 언젠가 그가 갑자기 깨달았다. 그가 왜 달리는가, 왜 달리는 것이 무모한가, 그가 처음에 하려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다 알았다. 그리고 그는 점점 속도를 늦췄다. 사실 그는 자신이 달리기를 멈추면서 모든 무리가 이 무의미한 경쟁을 종식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사실 멈춘다 하더라도 원점으로 되돌아갔을 뿐, 새로이 달리기는 시작될 것이다.

어느 정도의 위치로 달리던 그였지만 속도를 줄이니 하나 둘 그를 딸고 앞서기 시작하였다. 그가 완전히 멈추자 모든 양떼들이 그를 앞질러 달아났다. 그는 저 멀리 바다를 향하여 달리는 자신의 무리를 뒤로하고 (수천 마리의 양떼에게 짓밟히긴 하였지만)고스란히 남아있는 풀들을 한가히 뜯기 시작하였다. 그는 속으로 어리석은 자신의 무리들을 비웃고, 묘한 승리감에 도취되어 미소짓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후면 바다에 빠져 집단으로 허우적거릴 자기의 동료들을 상상하고 있었다.

아직도 그들은 그의 시야에서 보였다. 아직도 그 흙먼지의 여운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그 때, 홀로 남은 그의 주위로 무엇이 몰려들었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그는 색색거리는 거친 굶주림의 숨소리를 듣고 그가 무엇인가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시커먼 하이에나들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너무나 무서웠다. 하이에나 중 한 녀석이 그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멀리 사라져 가는 무리들을 향해 다시 냅다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미 무리와는 너무 멀리 떨어진 후였고, 그의 발걸음으로는 날랜 하이에나들을 따돌릴 수 없었다.

술래잡기도 단지 얼마 간. 하이에나들은 어리석게도 홀로 남은 양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지저분하지만 탐스러운, 그래서 거추장스러운 털들을 뜯어버렸다. 그리고 하얗게 드러난 그의 살코기를 잡아뜯었다. 뒤에 있던 하이에나들도 가세하여 그 양을 마구 물어뜯었다. 그래서 고기 조금이나 얻은 녀석들은 그걸 먹느라고 정신없는 틈에 다시 다른 하이에나가 그 빈자리로 달려온다.

그렇게 이 가여운 양은 이 잔인한 장면의 주인공이 되었다. 온몸이 찢기고 입가에서는 한 줄기 피가 흘렀다.

“헉!”

상영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입가에는 한 줄기 침이 흘렀다.

“저 새끼 잠꼬대까지 한다. 하하!”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율학습장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왜 그런지 모르고 공부에 집중해 있던 아이들도 “왜 그래? 왜 그래애?”하며 물었고, 그 상황을 듣고는 같이 웃었다. 전 교실의 모든 학생이 웃었다.

평소의 상영 같았다면 머쓱해하며, 머리카락이나 긁고 같이 “허허”하며 웃었겠지만…., 지금의 그로선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처절한 공포가 그의 온몸을 감싸고돌았으며, 그의 피부를 쓰다듬고 자극하였다. 식은땀이 그의 체내 깊숙한 곳에서 피부 밖으로 스며 나왔다. 그의 속옷과 와이셔츠는 젖어 피부에 찰싹 들러붙었다. 그러나 그런 찜찜함과 불쾌함 따위는 전혀 느끼지 못하였다. 그것은 공포이고 두려움인 동시에 그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처절히, 그러면서도 자세히 알려주는 푯말이었다.

공포라는 이름의 푯말에는 그 지시가 쓰여져 있었다.

“조용히 못해! 이 자식들이 공부하라고 남겨놨더니 웃고 지랄들이야! 고개 숙여! 지금부터 입만 뻥긋하면 맞는다. 화장실도 가지마!”

순식간에 주위는 조용해졌다. 이것이야말로 찬물을 끼얹는다는 표현을 쓰기에 딱인 상황이었다. 감독 선생님의 등장과 함께 떠들썩하고 들뜬 교실에 차가운 얼음물을 탁 끼얹어놓은 그런 꼬락서니였다. 모두들 다시 고개를 숙이고 공부를 하였다. 애초에 공부에 관심이 없던 녀석들은 감독 선생님이 나가나 안 나가나 눈치를 보며 빨리 나가기를 빌었다. 나가고 나면 다시 잡담을 시작할 것이다. 공부를 하는 아이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자기가 하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였다.

그제까지 눈속임으로 노트하나만을 달랑 펴놓고 있던 상영도 다시 책가방에서 수학 정석을 꺼내놓고 공부를 시작하였다. 지난 몇 주간 놓친 진도를 따라잡을 생각이었다. 아직 나가지 않고 있던 감독은 이제껏 책도 펴놓지 않은 상영을 못 마땅한 듯이 흘겨보고는 “쯧쯧”하고 혀를 차며 나갔다. 상영은 한 시간 남짓 남은 자율학습시간을 집중하여 제대로 공부할 생각이었다.

그것이 바로 그가 안 사실과 그가 느낀 공포, 그리고 두려움에 대한 해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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