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42003
 

  나도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한다. 특히 정의의 탈을 쓴 불법적이고 일방적인 지금의 전쟁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단지 남의 일 보듯 전쟁, 그 힘의 논리 앞에 한숨만 내쉴 것이 아니라 힘이 닿는 대로 인터넷이나 집회를 통해서 반전 구호를 외쳐야 함은 당연하다.

  문제는 우리가 해야할 일이 순수한 아니 순진한 반전-평화 시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전쟁은 나쁜 것’ 나아가 ‘미국의 속셈 심층 분석’, 아니 더 나아가 ‘폭력에 대한 고찰’ 처럼 명확한 논리와 결론을 갖는 문제만 얘기한다면 걱정이 없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당장 내가 소속된 우리 정부의 입장은 전쟁지지 및 국군파병이다.또 반전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도 각기 의견이 다르다. 일부 의원을 제외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공론이 각각 “전쟁이 끝나기 전에 조기 파병 해야한다”, “전투병도 파병하자.” 라고 말할 정도로 파병 대찬성으로 흐르고 있는 가운데 개혁국민정당과 민주노동당은 국회의 파병결의 저지 계획과 함께 적극적으로 반전 평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또 개혁국민정당의 유시민 씨가 “대통령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다. 국민은 반전 시위를 하고 국회에서 부결시켜야한다”며 역할분담론을 주장하는 데 대하여 민주노동당은 “노무현 정권의 인간방패,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라고 비난하며 헌법소원을 추진하고 있으며 지지자 일부는 인터넷을 통해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서명까지도 추진하고 있다. 어느 것이 가장 현명한 대응인지 혼란스럽다.

  명분없는 전쟁에 국군을 파병하고 우리가 얻는 국익이 무엇일까?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무력사용을 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확고한 약속을 받아낸 것이 아닌 이상 전세계의 여론을 거스르고 몇 개 안되는 전쟁 지지국에 포함돼 파병까지 할 분명한 이유가 있는가? (NAFTA 로 미국 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캐나다와 멕시코도 지지하지 않음) 노무현 정부의 이번 결정은 잘못되었다.

  여러 반전평화단체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학살에 동참하는 파렴치한 전범이 되는 것이기 때문은 아니다. 명분이 아닌 실제의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의 파병은 전황에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군파병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보잘 것 없지만 잃는 것은 상당하다는 생각에서이다. 전문가들도 전쟁 효과로 지금의 경제불황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우리 기업이 전후 이라크 재건 사업에 대거 참여하게 되는 것도 또한 아니다. 북한과의 대화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갖기는 더 어려워지고, 노무현 정부의 지지기반이 분열, 이탈하여 진정한 소수정권으로 전락해 산재한 개혁 과제들의 수행이 지체될 위험도 있다.

  게다가 파병찬성론자들은 지금의 결정이 미국과의 전통적? 동맹관계의 재확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관례화 된 굽실 외교의 측면이 강하다. 친구가 나쁜 짓하며 내게 도와달라고 했다해서 여럿이 보는 앞에서 같이 나쁜 짓 거드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적극적으로 친구를 말리거나 선생님께 말씀드릴 수가 없다면, 약자의 부끄러운 행동이긴 해도 적어도 침묵을 지키는 것이 현명하지 않은가? 정상 간의 전화통화 시에 곧장 전쟁 지지를 거부하기는 어려웠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전쟁은 최후의 선택이니 부디 평화적 해결을 부탁한다고 돌려말하기, 파병이 아닌 (비록 미국의 병주고 약주는 식의 인도주의라 하더라도) 이라크 난민에 대한 여러 물적/인적 지원 등 한미 공조를 깨지 않으면서도 평화적인 다양한 선택항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이미 대통령이 지지를 표명하고 국회의 의결만을 남겨둔 현 시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나마 개혁, 진보 성향 정치인과 지지자들이 세부적인 노선, 방법의 차이야 어떻든 ‘반전평화! 국군파병반대’로 힘을 모으는 현 상황이 다행스럽다. 그간 “양심과 원칙, 소신에 따라 참여 정부의 감시자로서 노사모의 역할을 해야 한다”며 반전 성명을 채택해야 한다는 찬성 입장과 “국익, 북핵 문제 등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며 채택 반대 입장이 내부 논란을 빚어오면서 “노무현 친위대” 라는 비난을 받아온 노사모가 공개적으로 반전평화 성명을 낸 것도 고무적이다.

  모든 생명은 동등한 가치를 지니지만 현실에서 나의 생명, 우리의 생명은 타자의 그것보다 우선한다. 그것마저 거부하는 반전 시위라면 나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런 경우란 흔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를 현실에 대입시켜 “자본주의사회에서 우리의 생존권은 경제문제에 달려있고 따라서 세계화된 사회에서 국제정세에 유연히 대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우리가 항상 반전 시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반전 해야할 때이다! 우리가 전쟁을 지지해야 할 만큼 궁색한 상황일까? 국력이 약하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너무 쉽게 나온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도가 형편없는데다가 미국으로부터의 밀과 옥수수 수입량이 많으니 미국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말이 과연 그토록 현실적인가? 착각하지말자. 전쟁 반대가 미국과의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파병하려면 파병하지 않았을 때 우리 경제가 얼마나 더 어려워지는지, 예컨대 신용등급하락이 미국에 순종하지 않아서인지 북한과의 대치상황에 따른 불안심리 때문인지 먼저 말해보라. 전쟁 반대하면 미국이 당장 미군 철수하고 경제 압박하는지 말해보라. 코 앞의 수치가 아닌 정치 행위의 결과로서의 경제 변화를 말해보라. 이런 이유에서 전쟁지지 및 국군파병이 과연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인지 습관화된 편의주의적 대미 외교정책인지 의심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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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름대로 정말 공을 들인 글입니다. 주말에 사촌누나 결혼식이 있어 집에 다녀오고는 토요일에 초를 잡았던 글인데 이제야 올리는 것이고요^^ 늦어서 미안해요. 실제 현실을 바탕으로 제 입장을 정리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더군요. 아직 투표권도 없는 저이지만 제 정치적 좌표를 설정해보는 일은 흥미로웠습니다. (사실 평소에도 개혁국민정당의 김원웅 대표를 좋아하긴 했지요^^; 대선 때는 노무현 대통령 선거운동 엄청 했고-_-)  

——— 아래는 이 글과 관련된 내가 잘 찾아가는 링크.
 
  한겨레신문 ; http://www.hani.co.kr – 오늘의논객, 토론기상도 애독, 토론방의 네티즌 의견 살핌
 
  오마이뉴스 ; http://www.ohmynews.com – 대안 언론을 지나 이제는 힘도 세진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인터넷 신문. 읽지 않을 수 없다.

서프라이즈 ; http://www.seoprise.com  – 현안에 대한 아마추어 칼럼과 그에 대한 코멘트를 이용한 열띤 토론에 주목

진보누리 ; http://www.jinbonuri.com – 민주노동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 보혁 갈등, 노선 대립 논쟁이 첨예하다.

개혁국민정당 ; http://www.kppr.org – 현 정당 중에서는 가장 인터넷을 통한 활동이 활발한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 청와대 ; http://www.president.go.kr – 많은 사람의 투고

노사모 : http://www.nosamo.org – 기본적으로 노무현을 감싸안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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