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012008
 

  “강의석 까기” 가 인터넷을 뒤덮고 있다. 강의석 관련 기사의 댓글, 블로그 포스팅, 디씨인사이드 등의 공개게시판은 강의석의 행적을 풀어놓은 글, 캡쳐사진, 욕설, 촌평 등 종합해 볼 때; 악플로 넘쳐난다. 병신 까는 데 이유 있나여?  라는게 누리꾼 생리라지만. 시덥지않은 이유로 까대는 건 스스로의 얼굴에 침 뱉는 것이라는 걸 모르고 우르르 몰려 열폭하는 모습을 보면, 괜시리 내가 민망할 때가 있다.

  강의석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꽤 좋았다. 2004년 당시 학내 종교자유를 주장하며 1인시위, 단식투쟁을 벌인 강의석을 나는 마음으로나마 응원했다. 당시 내가 속한 교육실천동아리에서는 그 일련의 사태에서 끄집어낸 사학의 건학이념이나 학생의 기본권을 둘러싼 이슈에 대한 세미나도 했었다. 기억에 따르면, 사립이 싫으면 공립가면 되는 거 아니냐. 미션스쿨 싫으면 다른 학교 가면 되는거 아니냐. 는 말을 쉽게 내뱉을 수 없는 우리 교육환경 덕분에서인지몰라도 강의석에 대한 호의적인 입장이 압도적이었다. 단식으로 삐쩍꼬른 그의 모습도 그런 반응을 이끄는데 한 몫을 한 듯하고. 하지만 이 때 역시 청소년의 기본권이라는 보다 로우레벨의 논의가 이루어지기보다는, 썩어빠진 사학;을 둘러싼 뿌리깊은 앙금, 그리고 당시 사학법 개정이라는 이슈가 강의석이라는 상품으로 포장되어 잘 팔렸던 모양새가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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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 정치의 힘겨루기를 벗어난 근본적인 원칙에 대한 주장.  남들이 절대 안 하거나 못 하는 얘기. 나아가 남 다른 신념을 밖으로 보여주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인생은 다 그런것이고 너는 어려서 잘 모르니 꾹 참고 살아보라는 말은 젊은이들에게 일반적으로 반감을 산다. 반면 살살 불평불만을 내뱉으면서 그 또래, 그 세대와 대충 잘 어울리며 즐기는 것은 권장된다. 이 새끼 똘기가 있어. 재밌어. 라는 말은 재기발랄한 자에게 주어지는 기쁜 칭찬이다. 입시, 취업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만화나 음악 등 예술로 자신을 표출하는 것은 구리긴해도 간지나보일수도 있고, 적어도 그럴싸하긴하다.  (아래는 삼류만화패밀리고전명작 중 불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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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간지나는 만화를 그리는 것을 뛰어넘어

   강의석처럼 진지하게 밥도 안 먹고 학교를 법원에 고소한다던지,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 발가벗고 나가서 탱크를 세운다던지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개싸이코, 쌩또라이, 미친놈, 무슨 꿍꿍이 속이 있나 등의 막말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강의석에 대한 악플 중에는 이 새끼는 변태인가? 욕하는 소리듣고 딸딸이라도 치나?  등과 같은 친절한 분석도 흔히 보인다.  글쎄 강의석 싸이월드 글 하나 방명록 하나하나 뒤져가며, 머릿 속을 헤집어주고 미래 구상까지 해주는 사람들이 더 변태가 아닐까 싶지만. 뭐 나도 변태라서 할말은 없고.  

   ( 강의석의 주장이나 신념과 관련하여 그를 까야하나 말아야하나 문제는;  독자의 의견을 귀담아듣는 메이저블로거 2071 님의 글 (http://avarice.egloos.com/898602) 에 잘 정리되어있다. )
   ( 강의석에 관한 언론보도에 대한 강의석의 해명은 허지웅씨의 인터뷰
http://ozzyz.egloos.com/3915467 에서 대충 확인할 수 있다. )

   아무튼 강의석은 난 놈이고; 강의석의 신념은 꽤 레어하고; 나는 그것을 존중하고, 그의 용기있는 행동, 특히 이번 누드퍼포먼스의 약속을 지켜낸 것에 경의를 표한다.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로).  나는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바뀌지 않으면서도 성장할 수 있고, 그 나름의 모습을 간직한 채로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면죄부만큼을 타인에게 부여하기란 불가능하겠지만,  20대 초반의 후배. 아니 이걸 떠나, 어떤 사람에게 감정실린 저주보다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물론 깔 건 까줘야한다.

   그런데 강의석에 대한 수많은 이들의 열폭과 내가 강의석을 까고자하는 지점은 꽤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다.  몇살 더 먹지도 않은 내 짧은 경험에서 볼 적에, 강의석은 우선 언행에 싸가지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강의석의 미래에 대한 얘기가 자연스레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어떤 언행에 싸가지없다는 딱지를 붙일까.

허지웅 : 택시일과, 호스트일, 모두 “경험을 한 번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건 좀 오만한 태도가 아닐까.
강의석 : 오만한 태도지. 그런데 솔직하고 싶었다. 내가 오만하면, 오만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나는 늘 머릿속에만 뭐가 있었지 실제 뭐가 어떤지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 같다.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와서 절감했다. 내가 아는 사람과 실제 사람은 전혀 다르다는 것. 사람을 제일 모르겠다. 그래서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택시도 호스트바도 해본 거다.

    위의 인터뷰에서 빨강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최우선으로 뿌려지게 되기마련이니 싸가지없다는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다.  가십거리를 찾는 언론과 열폭하는 사람들만을 탓할 수만은 없다. 자신의 공적인 언행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솔직함은 무적이 아니다.  못하는 노래여도 진심을 담아 부르기만 하면 상대방이 감동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뭐..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보통은 지겹지만 돈 받았으니 부르는 가수의 노래가 훨씬 더 감동을 준다.  남들은 정의를 외면하면서라도 공부만 죽어라해도 못가는 서울대에, 강의석은 정의를 외치며 폼나게 그것도 법대로 들어갔는데; 일단 비호감 아닌가?  거기다대고 싸가지 없는 언행이라니.  이걸 솔직함으로 메우려하면 할 수록 넌 싸가지 없는 놈이다.

     사실 나도 평소 싸가지없기로 주변사람들에게 잘 알려진터라 싸가지 얘기를 늘어놓는 게 불편하다.  그리고 “싸가지없다” 는 말도 싸가지가 없는 말이다. 그럼 대신 “예의없다” 정도로 바꾸면(뜻이 완전히 일치하진 않겠지만).  강의석은 정말 예의가 없고 언제나 깔 재료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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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옳은 말이나 한번쯤 고려해 볼만한 말을 할 때에도,  기품이 없고 말버릇이 나쁜 것은 문제가 된다.  달변에 논리도 있고 지적 능력도 뛰어난 유시민씨도 싸가지없다고 까이는 데 (고종석 칼럼: ‘싸가지 있는’ 정치를 위하여 )
강의석이 싸가지를 고치길 바라는 것은 헛된 희망일까?

   사실 싸가지 문제보다 더 까고 싶지만, 강의석 본인의 신념이 그렇다니 그러려니 하려다가도,  매우 찝찝해서 까는 것이 몹시 “이기적인 신념”에 대한 것이다.  혹시 강의석이 하고 있는 생각의 방향 자체가 글러먹은 게 아닌가? 이 놈이 지금 별 생각이 없는 게 아닌가?
   
    중학 시절,  교육청의 모의고사 금지령을 어긴 채, 학생들에게는 영어듣기평가가 있다고 속이며 컴퓨터용 수성사인펜을 내일 꼭 가져오라고 준비시켜놓고, 몰래 모의고사를 실시했던 학교에 대항하여 백지동맹을 주도했던 경험 (나와 반에서 꼴찌1~3위만 백지를 냈다.)
    고교 시절, 학생회를 주축으로 두발자율화를 주장하며 학부모-학생-교사의 민주적인 대화와 토론을 통해 뭔가 타협을 해보자. 했지만 다음날 학생부장의 일방적인 앞머리 3cm 더 늘어난 규제안 발표에 분노하여 교장과 면담하다가, 학생부장이 교장실에 들어와 멱살을 잡혔지만, 결국 두발자율화에 실패한 경험.

    내가 이런 개인적 경험 속에서 뼈저리게 고민했던 것은,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 따른 언행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었다.  시험을 보지 말자고 하면, 두발자율화를 하자고 하면 학생들은 대개 좋아한다. 하지만 모두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흥미롭게도 고3이 되어 입시가 코 앞에 다가왔을때에는 오히려 많은 친구들이 우리 무리와 함께했던 불과 1년도 안 된 행적을 마치 먼 옛날 추억의 반항쯤으로 여기며 웃어넘겼다. 그 친구들은 대놓고 말을 안해서 그렇지 우리 무리 때문에 공부를 안 했던 게 후회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내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단한, 최고의 해답을 얻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강의석은 어쨌든 이런 뿌리깊고, 크리티컬한 문제에 대한 고민이 너무 부족해보인다. 때때로 위험해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운동 좀 해보신 분들에게도 까일 수 밖에 없다.

/*  강의석 의 말 (허지웅 인터뷰 中)
내가 고2 마지막 모의고사 때 시험 보려고 앉아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왜 이렇게 시험의 노예가 되어야 할까. 한 번 빵점 맞아봐야겠다.’ 그래서 시험제도에 엿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부러 오답을 찍었다. 13점이 나왔다. 선생님이 놀라서 부르시더라. “네가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들이라는 걸 아는데, 네가 한 행동이 주변 친구들에게 끼칠 영향을 생각해봐라. 다들 며칠 밤씩 못자고 공부해서 시험 보는데 네가 이러면 다들 얼마나 허탈하겠냐.” 그런데 나는 그 상황이 다시와도 또 그럴 것 같다. 물론 그런 악영향도 있겠지만 최우선은 나 자신인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최대한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할 거다. 물론 남에게 폐를 끼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절충을 해야 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태환아 너도 군대가’ 글 같은 경우는 파장을 고려해 원고 송고 전 주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었다.

              (  …………  )

고3때는 내가 뭔가 바꿀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대학교 가서도 공부보다 종교 자유화 집회에 더 열심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무리 이래봤자 바뀌는 게 없다는 회의에 빠지게 됐다. 사회가 좋아져봤자 정말 사람들이 행복해질까, 이런 생각도 들고. 공부를 열심히 해봤자, 그래서 결국 무엇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뭘 바꿀 수 있을까, 그런 고민에만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결론에 이른 게 나 자신만을 위해 살자, 는 거였다. 군대문제도 결국 내 문제이기 때문에 뛰어든 거다. 지금 주장이 급진적이라고만은 보지 않는다.    

*/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혼자라도 잘 살려고해서는 혼자만 잘 살기도 힘든 것이 세상 이치인 것 같다.  (묘한 문장임)  무슨 성인마냥 전부 보듬어나아가고 아니면 절대 움직이지 않고 이렇게 살자는 건 아닌데.  강의석은 자신에게 보통 이상의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는 사람들을 지금보다는 훨씬 무겁고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 그네들이 “이슈인물”이면서 서울대에 다니는 강의석을 아이돌처럼 추종하는 소녀팬이든,  아니면 군대다녀와서 복학했는데 학벌을 위한 편입은 이미 포기한지 오래고 취업난 속에서 웹 서핑을 즐기는 사람이든 —

    덧불여 자기와 함께  운동을 하는 친구들, 벌써 오래전부터 병역거부운동을 진행해온 진보사회 활동가들을 돌아본다면 제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줄은 알고 있는 것인지 그저 끓는 피로 닥치는대로 해치울 뿐인지 의심스럽다.
 
    결국 지금 꼴사납게도 이런 칼럼 (강의석은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아니다.)  류의 논의와는 백만광년 쯤 떨어져 그저    ” 장래 민노당 대선 후보? 릐을 빨갱이? 국개의원감?  ” 식의 저질 댓글이 온 세상을 덮고 있다.  그간 강의석이 보여준 싸가지 없는 행동의 누적에 따른 자연스런 리액션이겠거니 하지만.

    쉬는 날도 아닌데 국군의 날 행사를 강남대로를 막고 탱크를 행진시키며 해버리는 상황에서 (이게 김영삼 대통령 이후 꽤 오랜만이라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음)  그 탱크를 잠깐이라도 막아준 강의석에 대한 감사의 말은 전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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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Responses to “강의석에 대해서”

  1. 내가 저녀석 깐 글에 트랙백이 걸려있어 반가운 마음에 링크를 타고 날아와 보니~♪
    은근슬쩍 JJJ까고 JJJ깐 사람까지 싸잡아 까는 글이 올라와 있네 어이쿠YA.
    ‘까’와 ‘까까’에 대해 심도깊은 토론을 하고 싶네만.
    내 어휘력이 미진하여 이리 글을 삼가 아뢰나니.
    솔직하게 말하리다 ‘깔려면 까고 말려면 마쇼, 괜히 깐사람 기분 드러워지니’

  2. 뭐어… 그럴 의도가 아니셨다면 별로 할 말은 없지만요…쩝!

  3. 나는 스스로를 늘 의심하고 반박하고 몰아부치며
    사는 인간이라 그런지

    이 새끼가 정말 재수없어.
    세상을 손해 보며 사는 기분이 든달까..-_-

    가장 많이 까이는 레파토리인
    “순수성의 부재”도 비슷한 수준으로 재수없지만.

    • 신념에 따른 행동과. 그로인한 결과들을 몇 번 재반복하다보면 밑바닥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어. 깨닫는 바가 있거나. 아니면 그 신념이라고 했던 걸 버리는 듯 꼬랑지를 내리거나. 예컨대 자기가 더이상 유명해지지도 주목받지도 못하고. 국가권력 하에 꼼짝없이 묶여버리고 (실형을 받는다던지) 외로움을 겪을 수도 있고.

      남의 순수성을 재 보는건 참 어렵지만. 아무튼 재수없으면 끝이니.

  4. 어떤 당황스러운 기독교인;과의 논쟁 보다가 흘러들어왔습니다.

    강의석씨에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만, 강의석씨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감정’을 잘 정리해 둔 글은 몇 못 본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좋은 글이군요^^; 왜 강의석씨의 주장 중 일부분에는 찬성하는 입장인데도 그 행동들이 뻘짓으로밖에 보이지 않는지 좀 정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 감사합니다.

      오. 그 논쟁을 어디서 보셨나요. 거기에 여기 링크가 있었나요. (궁금하네요!)

    • 사실 그 기독교인과 도킨스 관련 문제로 예전에 마찰…이라기보다 일방적인 태클을 받은 적이 있었던지라, 어쩌다가 마주치게 되었고 kinpain님 이글루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기독교인 블로그를 보시면 제 닉으로 작성한 댓글이 하나 있을 겁니다만, 애초에 진지한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임을 깨닫고 그냥 신경 안 쓰기로 했습니다. 사실 부시나 페일린 같은 그냥 일반 근본주의자보다, 저 사람처럼 논리적인 척하는 근본주의자가 더 피곤하더군요. 그냥 신경 안 쓰시는 게 편할 것 같습니다(..)

    • 저도 그 기독교인이 누군지 알 것 같습니다. 저는 직접 만나본 적도 있는걸요 뭐^^

    • …고생 많으십니다.
      저라면 가급적 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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