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31998
 

제  목:[ 공부 ] Windows의 역사 (Win3.1까지)            관련자료:없음  [4]
 보낸이:이훈재  (lhj9612 )  1998-12-23 20:37  조회:23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사(Microsoft, 이하 MS)의 운영체제는 DOS 와 윈도우즈일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의 윈도우즈95 또는 98 역시 윈도우즈의 자손이다.
  이런 윈도우즈를 직접 손끝으로 다루며 사용하다 보면 윈도우즈가 언제 만들어졌고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가가 궁금해 질때가
  있을것이다. 그렇다면 윈도우즈의 역사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자.
  윈도우즈를 논하기 전에 앞서 기반이 되는 GUI이야기가 빠지면 안되므로 먼저 알아보고 넘어가자.


  ? GUI(Graphic User Interface)의 역사


  1960년대 초, 조지 에반스와 이반 서덜랜드는 메인프레임컴퓨터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컴퓨터 그래픽의 사용에 관한 중요한 생각을 해낸다.
  서덜랜드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스케치패드(Sketchpad)’ 라고 스스로 명명한 개념에 대해 기술한다.
  그는 자신의 논문에서 “만일 컴퓨터가 텍스트 대신에 이미지를 나타낼수 있다면 컴퓨터 활용면에 있어서 큰 진전이 있을것” 이라고 주장했다.
  그후 스탠포드 연구소(SRI)의 더글러스 잉글버트 서덜랜드의 연구를 발전시켜 ‘윈도(Window)’ 라는 개념에 이르게 된다. SRI에서 개발된 NLS컴퓨터는 잉글버트가 고안한 마우스를 이용해 원하는 문서를 지시할수 있는 최초의 컴퓨터 였다.
  1970년대 초 제록스는 캘리포니아주 스탠포드 대학교 근처의 팔로알토에 연구소를 설립했는데 일반적으로 ‘제록스PARC’로 알려져있었다. 제록스는 이곳이 창조성이 자유롭게 꽃 필수 있는 연구소가 되기를 원했고 수많은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서 활발하게 연구를 진행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였다. 이런 여건 속에서 연구원들 중 일부는 에반스, 서덜랜드, 잉글버트의 연구를 발전시켜 스몰토크 (Smalltalk)라는 객체지향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스몰토크는 화면에 몇개의 중첩 윈도를 만들수 있었고 유저는 마우스로 특정 윈도를 선택 또는 움직일수 있었다. 스몰토크의 최초 버전은 제록스가 만든 연구용 프로토타입 컴퓨터인 “알토” 에서 시험했다. 알토의 운영체제는 ‘비트-맵(Bit-map)방식’즉 점으로 화면을 계속하여 그려나가는 방식이었다.
  1981년 제록칮 PARC의 연구원들은 좀더 발전한 스타(Star)를 만들어냈는데 스타는 윈도우즈에 없어서는 안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인 ‘아이콘’ 을 소개 했다. 대부분의 컴퓨터는 사용자들이 특정 명령을 키보드로 타자해 넣어야 했지만 스타는 목적과 기능을 상징하는 조그만한 아이콘들을 화면에 나타내 주었다. 제록스는 1980년 초 그동안의 연구를 이용해 스타 워크스테이션(Star workstation)을 내놓지만 너무나 고가였기 때문에 일부 부유층 사용자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렸고 우수한 연구원들은 그들이 개발한 것들을 다른 회사에서 활용하기 위해 하나 둘 제록스를 떠났다. 1989년에 제록스는 자신들의 연구결과들은 1981년부터 목적 등록을 해놓았지만 1980년대에 애플, MS, 아타리, 디지탈 리서치 등은 제록스 PARC가 개발해 놓은것들로 재미를 보았다.


  제록스의 기술이 어디어디에 있었음을 쓰였는지 보기로 하자.
  윈도와 ‘풀 다운(Pull-Down)메뉴’ 의 창시자인 앨런케이는 아타리를 거쳐 애플에 합류해 많은 공헌을 했고, 래리 테슬러는 그가 알고 있던 제록스의 기술을 1980년 애플에 전해 주었으며 애플에서 그는 리자 컴퓨터를 설계했다. PARC 컨퍼런스에 수차례 참석한 경험이있는 제프 래스킨은 후에 애플 매킨토시 계획을 수립한 사람이다. 밥 멧캐프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많은 컴퓨터들이 서로 데이터를 교환할수 있도록 해주는 ‘이더넷 표준’ 을 개발했고 1979년 PC네트워크용 카드를 판매하기 위해 3COM 을 세웠다.
  존 워녹은 1982년 ‘아도비 시스템스’를 설립해 ‘탁상용 출판’ 이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 출판계에 혁명을 일으킨다. 이후 아도비의 포스트스크립트언어는 레이저 프린터에 정보를 전달하는 표준언어가 되었다. 제록스 스타와 스몰토크제작에 참여했던 로버트 카는 1980년대 중반에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인 프레임워크를 만들어냈고 데이비드 리들은 IBM 이 1980년 6월에 소개한 오피
  스 비젼을 설계하는데 일익을 하는등 제록스출신의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다방면에서 활동했으며, 1980년대의 소프트웨어 흐름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1979년 12월 제록스PARC를 방문한 스티브 좁스는 스몰토크가 연출하는 시각적 효과들을 보면서 무척이나 놀라워 했다. 7개월 후 좁스는 몇명의 제록스PARC의 프로그래머들과 자신의 완벽주의(?)를 십분 발휘하면서 “맥켄토시”(이하 “맥”) 라는 실험적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몇개월 후 퀵 드로라는 맥켄토시용 GUI 를 사용한 소프트웨어가 등장했다. 1981년 여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빌게이츠는 좁스와 맥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제프 래스킨을 만난다. 좁스와 래스킨은 32BIT의 고급칩인 모토롤라68000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사용하고자 했다. 빌은 곧바로 맥의 잠재력을 재보았고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컴퓨터는 그것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가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고무된 좁스는 맥의 응용프로그램 개발을 빌에게 부탁했다.
  맥켄토시는 1984년 1월 24일 소개되었다. 2년동안 IBM은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30%을 차지했고 애플은 21%에 머물렀지만, 좁스는 맥이 애플의 점유율에 지대한 영향을 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발표회에서 “난 맥켄토시가 스스로 이야기 하도록 놔두겠습니다.” 라고 하자 조그만 베이지색 상자에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안녕하세요? 저는 맥켄토시입니다. 저는 제가 처음 대형 IBM컴퓨터를
  만났을 때 생각해냈던 격언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이 들 수 없는 컴퓨터는 결코 믿지 마세요.”
  그때서야 관객들은 이 베이지색 컴퓨터가 다른 컴퓨터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맥은 맥라이트와 맥페이트 등 두가지 응용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처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편리한 프로그램이었다. 또한 맥은 32비트 칩인 모토롤라 68000을 중심으로 만들어졌고 128KB 의 메모리를 가졌으며 2500불이 채안되었기 때문에 전에 나온 ‘리자’보다 훨씬 더 구입하기
  쉬웠다.맥의 열렬한 팬이었던 MS사의 빌은 맥의 성공을 예측했으며, 이후 MS사는 맥을 위해 멀티플랜, 워드, 엑셀들을 속속 출시하게 되었다. 엑셀의 경우에는 오디세이라는 암호명으로 제작이되어 맨처음 맥에 인식을 시켜 출시했다.
  엑셀은 로터스사의 통합 패키지인 “째즈”가 나오기 3주전인 1985년 5월 2일 언론에 공개되었고, 이후 치열한 판매 경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엑셀의 개발 책임자였던 더그 클린더는 맥이 아닌 PC용으로 개발하고 싶어했는데, 그 소망은 윈도우즈가 개발되면서 실현되었다.


  ? WINDOWS의 태동


  여기서 다시 1980년대 당시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대해 공부를 하고 넘어가자.
  하드웨어적으로는 거의 IBM PC의 기준에 맞추어져 있었고 운영체제 또한 대부분 MS-DOS 를 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응용프로그램 분야에서는 여전히 제각각인 부분이 많았다. 예를들어, 워드스타에 능동한 사용자가 dbase나 멀티플랜을 사용하고자 할 때, 그들이 배운 지식은 쓸모가 없었다. 서로 사용하는 방식이 틀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린터 생산업자들은 각각의 유명한 응용프로그램을 위한 전용드라이버를 만들어서 일일히 배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이때쯤 MS의 빌은 기존의 텍스트모드의 MS-DOS를 그래픽 모드로 전환하고 GUI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해서 흑백화면에 배우기도 어려운 텍스트의 세상에서 컬러이면서 화려하고 배우기 쉬운 그래픽 환경으로 바꾸려고 구상했다. 그는 이 환경을 궁극적으로 위와 같은 응용프로그램들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까지 포함하여 인터페이스
매니저”라는 이름을 붙였다. 1983년 1월 인터페이스 매니저의 프로토타입 이 완성되었다. 이 프로토타입에는 윈도를 움직이고 메뉴를 선택할수 있는 마우스가 첨가되었다.이즈음, 비지코프는 이미 2년동안 도스용으로 MS가 구상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을 만들고 있었는데 1982년 가을 컴덱스에서 그 모습을 선보였으며 이름은 “비젼”이었다.빌은 이때 찰스 시모니를 라스베가스로 보내 이를 보고 오라고 했다고 한다. IBM도 이에 뒤질세라 1983년 탑뷰라는 제품을 내 놓겠다고 발표했다. 거기에 쿼터덱이 데스크라는 윈도환경을 발표하자 빌은 비젼과 데스크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1983년 10월 서둘러 윈도우즈를 발표하게 되었고 그는 이 일로 몇 년동안 후회를 했다.윈도우즈 발표 후 수많은 회사들이 윈도우즈에 기대를 걸고 MS사로 몰려 왔고 그 중에 로터스사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MS는 고무되었다. 왜냐하면 로터스사는 IBM과 호환기종용 소프트웨어의 가장 큰 공급자이였기 때문이다. 1984년 초에 이르러서는 지지회사가 24개로 늘어나게되었는데 이들은 IBM의 독주에 불만을 폼은 회사들이었다.
  1984년 8월 한달 동안 MS사의 주업무는 운영체제와 사무용 응용프로그램 두 가지로 초점을 맞추어서 재조정되었다. 스티브 볼머가 시스템 부서의 책임자로 애플의 전 영업책임자인 아이디 콜이 응용부서를 맡기 위해 스카우트되었고, 각 부서는 부서 고유의 기술팀과 경영팀을 두었다.
  조직 정비 후 빌은 소프트웨어의 특정한 기능을 정하는 일과 그에 따른 개발방향을 설정해 주는 일로 그 역할이 제한되었다.이샔 닐 콘젠이 윈도우즈 프로그래밍팀에 합류하여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관한 책임을 맡았다. 그는 그때까지의 작업 결과에 대해 스코트 맥그리거와 의견을 달리했고, 프로그램 작성작업을 신속하게 하기 위해 많은 내부 루틴들을 다시 정의했다.
  또 그의 목표중에 하나는 맥용 소프트웨어를 윈도우즈에 더욱 쉽게 적용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1985년 초 MS의 프로그래머들은 윈도우즈의 능력을 실제로 보여주기 위해서 2가지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1983년 라이트와 페인트가 설계되었는데 맥용 프로그램과 비슷한것이었다. 또한 MS의 영업담당자들에 의해 지명된 윈도우즈 제품 관리자인 탠디 트로워는 캘린더, 계산기, 카드매니저와 같은 데스크 쿨의 개발을 시작했고 시계와 리버시게임프로그램을 추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개발기간이 그 만큼 더  길어진다는것을 의미했다.
  각고의 노력끝에 1985년 6월 28일 윈도우즈의 소프트웨어 개발사들에게 시험판을 내놓을 수 있었고 1985년 11월 드디어 윈도우즈 1.03이 출시되었다.  이것은 85%가 C언어로 작성되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어셈블리어로 제작되었다.   이 버젼을 작성하는 데 총 11만 시간이 소비되었다.
  그러나 윈도우즈가 출시됐을 당시의 주기종은 XT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윈도우즈는 최소한 AT급 정도에서 돌아가야 했는데, XT나 2개의 디스크 드라이브를 가진 PC에서 윈도우즈는 정말 사람을 열받게 했다. 또한 기다리기에 지친 소프트웨어 개발업자들이 하나둘 이탈하는 와중에 로터스사가 윈도우즈용 로터스 1-2-3과 dbase Ⅲ의 윈도우즈 버젼은 없다고 발표를 해 이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어 갔다. 맥용프로그램을 만들던 회사들은 윈도우즈로의 이식이 수월할 것을 기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고, 그 중 마이크로그래폭스는 많은
  희생을 감수해 가면서 윈도우즈를 예찬했지만 그 회사의 프로그래머들은 윈도우즈의 사양이 변경될 때마다 다시 프로그램을 작성해야 하는 고생을 감수해야했다.1987년 후반 윈도우즈 2.0의 출시와 함께 1백만 카피가 나가고 이어 맥용 엑셀을 PC버젼으로 내놓자 윈도우즈는 하룻밤 사이에 잃었던 신용을 되찾게 되었다. 2.0버젼은 많은 면이 맥과 비슷했는데 이는 윈도우즈 1.01 이 소개되고 얼마 후인 1985년 11월 22일에 애플이 엑셀과 같은 제품들에 맥의 몇몇 영상 특징들을 MS사가 사용할수 있도록 허락하는 문서에 서명을 했기 때문이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윈도우즈가 히트를 하자 위협감을 느낀 애플의 경영진은 1987년 3월 17일 윈도우즈 2.03과 윈도우즈 환경에 근거해 만든 뉴웨이브의 HP사를 고소했고 지리한 공방전 끝에 MS사가 일부 승소를 하는 것으로 윈도우즈는 위기를 모면했다.
  1987년 6월 보스턴 컴퓨터 소사이어티라는 단체의 한 모임에 참석한 빌은 25만 카피의 윈도우즈가 배포되었다고 발표했다. 1989년 초까지 윈도우즈의 판매는 2백만 카피를 돌파했고, 매달 5만 카피가 팔리면서 이 프로그램은 MS사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엑셀, 페이지 메이커, 디자이너, 옴니 등의 성공적인 윈도우즈용 응용프로그램들이 제때 출시가 되었고, 또 윈도우즈 자체도 그 기능들을 대폭 수정하여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1989년 한해동안 윈도우즈용 응용프로그램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고, 또 MS사도 자사의 제품들을 윈도우즈 버젼으로 재출시 했다. 워드의 경우 2.0은 3만5천라인의 코드로 작성되었고, 4.0은 7만 8천라인을 가졌으나 윈도우즈용 워드의 코드는 40만라인을 넘었다.
  1990년 5월 22일 윈도우즈 3.0이 발표됐다. 3.0은 윈3팀이라 불리운 25명의 개발팀이 2년반동안 노력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3.0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확장메모리를(EMS) 의 지원인데 이는 도스의 한계인 640KB를 넘게 해주었다.
  그후 윈도우즈는 3.1로 변신을 하여 좀더 안정적인 프로그램으로 발전하고, 윈도우즈 3.1은 MS사를 받치는 든든한 기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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