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2003
 

[인육, 왜 중요한 문제인가?]



[리더십이론] – 영화 Alive 에 대한 쪽글
2003-11-23, 0310331 이훈재
지도교수 : 김형철


극한 상황에 몰린 인간이 생존을 위해서 선택한 행위에 대해서 마냥 비난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생존 본능은 물론, 그것을 뛰어 넘어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화에 바탕한 이 영화를 보고 나는 오히려 그들의 행위를 칭송하고 싶다, 대단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인육문제’가 던져주는 리더십에 관한 함의가 무엇이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리더로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쉽게 얘기할지도 모른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므로” 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렇다면 인육을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왜 중요한가?


나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이 매우 쉽게 “그럴 수 있겠다.” 하고 넘겨버리는 것, 바로 이 부분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인지 사람의 생명이 종이 조각이 되어버렸다. 뉴스에서 늘 보도되는 사건사고를 통해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는 것도 이제 대부분의 현대인에게는 으레 있는 일로 아무런 느낌을 주지 못한다. 설령 사고가 크게 부각되는 경우에도, 논의의 중심에는 ‘생명 본연의 소중함’이 있기보다는 사고의 규모–죽은 사람의 숫자,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생명 경시가 팽배한 이런 시대에서 리더는 자칫 살인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바람직한 리더는 존귀한 인간을 마지막까지 지켜내는 자세가 필요함은 두말할 것이 없을 것이다. 혹자는 소수의 희생을 통해서 다수가 살 수 있다면 좋다는 식으로 사회적 살인을 합리화하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 비극이며,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지금의 사회는 충분한 노력으로 피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행정 편의적으로, 너무나 쉽게 일부의 희생을 요구하고, 사람의 생명을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결론적으로, 교황청에서조차 ‘그것은 필연이었다’ 라고 말하며 조난당한 선수들의 귀환을 축하했다는데, 인육을 먹었던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부당한가를 논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그보다는 그러한 사실을 접한 현대의 우리 (비교적 윤택한 삶을 살고 있으며 극한 상황에 몰릴 경우도 흔치 않은 일상적 삶의 사람들)가 너무도 당연하게 “내가 리더라면 나 역시”,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나 역시” 따위로 쉽게 받아들여버리는 이 상황을 비판해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들의 선택이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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