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2003
 





현대 사회에서 낙태는 "법적으로는" 허용되어야 한다.



– 영화 [The wall] 감상, "낙태"에 관한 조별 토론과 나의 견해







소속/학번 : 인문계열 / 0310331



이름 : 이훈재



담당교수/과목 : 조은하 / 기독교와 현대사회 2003 여름학기



제출일 : 2003. 7. 14.







1. 영화 [The wall] 의 줄거리 요약 정리1)



  내가 좋아하는 락 뮤지션인 핑크플로이드의 앨범을 영화화했다는 것을 인터넷 조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음반과 같은 제목을 한 영화 <The wall> 은 ‘낙태’에 대한 3가지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된 영화이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벽과 각각의 인물들의 대응방식은 50년대, 70년대, 90년대라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영화는 1952년 작은 마을을 비추면서 시작된다. 도널리 부인은 남편의 전사소식을 듣기 전에는 평범한 가정주부이자 간호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그녀를 그의 남동생이 위로해 준다. 남편의 동생과 가진 한 번의 잠자리로 그녀의 인생은 바뀐다. 시동생의 아이를 가진 것이다. 그녀는 임신 사실을 철저히 은폐하며 낙태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병원에 있는 의사나 간호사는 물론 가족에게도 외면 받고 결국엔 불법 중절 수술을 결심하게 된다. 그녀는 더러운 중절 기구로 수술을 받은 후 계속되는 하혈로 매우 고통스러워하고 그녀의 비명소리와 함께 첫 번째 이야기는 끝이 난다.



  카메라가 도널드 부인이 비명을 지르던 이층집 창문을 클로우즈 했다가 멀어지면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때는 1974년, 단란한 가정이지만, 바타거 부인은 자신이 또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대학까지 다니고 있는 그녀는 이미 네 아이의 엄마였던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임신 소식은 반가울 리 없다. 처음엔 낙태도 생각해 보는 그녀이지만 아이에 대한 책임감과 죄책감 때문에 결국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세 번째 이야기 역시 같은 구조로 시작된다. 다만 시점이 1996년이 된 것일 뿐이다. 대학교수와 불륜관계였던 크리스는 낙태를 하기로 결심하지만 죄책감으로 매우 망설인다. 결국 그녀는 중절을 받으러 병원으로 향하고 중절 수술을 마치자마자 여의사가 낙태 반대주의자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2. 토론과 나의 입장



  나를 포함해 3명의 남성으로 구성된 우리 조는 비록 여성 조원이 없다는 아쉬운 점은 있었으나 강의가 종료된 다음에도 줄곧 그 자리에 남아 다른 어느 조보다도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생각한다.



  우선 다른 두 조원의 입장을 간략히 정리하면 먼저 말을 꺼냈던 체육교육과 한욱현(0265039)의 입장은 낙태에 대한 반대 내지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허용이었다. 내가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자 강간, 기형아 등 현재 우리나라가 취하고 있는 법률적 내용과 상당 부분 일치했다. 인문계열 한슬기 (0210135)는 낙태에 대해 자유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즉, 선택론적인 입장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선택권 보장을 주장했다. 또 낙태 반대론자들에 비해 실제로 낙태를 주로 하는 사람들은 10대나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많다며 약간은 사회 계급론적인 관점에서 현재 낙태의 허용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격의 없는 토론이 진행되어 갈수록 우리의 의견은 거의 제한적 허용으로 모아져 갔고, 논점에서 빗나간 성교육이나 사회적 인식의 문제로 화제가 옮아가게 되었다. 낙태 찬반이 얼마나 논란의 여지가 큰 문제인지, 또한 기본적으로 낙태를 논하기 이전에 예방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모두가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교 정치교과서에 나오는 문구지만 인간의 기본권에는 생명권과 자기결정권이 있는데, 즉 태아의 생명권 존중과 산모의 자기결정권의 기본권 충돌이 문제의 핵심이다. 나는 이 문제가 단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대립으로는 설명이 잘 되지 않고 해결도 어렵다고 생각했다.



  한욱현의 기본 입장인 낙태 반대를 보면 태아를 산모와 분리시켜 새로운 생명체로 인식한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태아의 생명가치를 존중하고 강조하여 낙태를 살인행위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태아의 생명권 이상으로 이들의 입장은 여러 가지를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약자와 힘없는 존재에 대한 보호를 들 수 있다. 강자로부터의 침해를 방지하고 그들의 가능성을 충분히 발달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장애인이나 기형아들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미혼모의 자녀의 행복/불행복을 논하는 ‘주류’ 사람들을 떠올리면 된다. 이 점에서 보면 낙태 반대의 입장도 충분히 진보적일 수 있다. 유전자 감식을 통해 열등한 생명체는 세상의 빛조차 볼 수 없게 한다는 것이 현실화 될지도 모르는 위기 속에 이같은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반대 주장에서 다음으로 볼 수 있는 특징은 기독교적 세계관이다. 성경이 곧 법이었던 것처럼 도덕적인 신념과 원칙을 법제화해야 된다는 생각이 근저에 깔려있다고 생각된다. 또 인간의 실수와 사고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파괴적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찬성이든 반대이든 간에 양쪽 다 진보적이며 동시에 보수적이기도 하다는 생각은 낙태 찬성 의견에도 잘 적용되는 것 같다. 개인의 양심의 자유라는 오랜 전통적 가치를 강조하면서 결국 국가나 권력에 대한 통제로부터 인간(특히 여성)을 해방시키는 점은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이다. 그러나 일면으론 출산의 선택과 억제를 강조함으로써, 출산을 단순한 생물학적 동기나 성적인 불가피성으로 보지 말아야 하는부모의 책임감을 강조하는 등 보수적인 면모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고 과정에서 딜레마에 빠지기 쉬운 낙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나타난다. 지켜야 할 가치는 지키고 바꾸어야 할 것은 바꾸는 것이 참된 보수와 진보의 역할이라고 볼 때, 가장 좋은 해결책은 법적으로 허용하되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여러 가지 사회적 규범과 제약을 통해 생명의 존엄성을 지켜나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적 가치와 입장에서 보아도 법, 제도가 인간 위에 군림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회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 이상이 되질 못한다. 개인의 양심과 자유를 존중하면서 (불법적이고 위험한 낙태수술, 가진 자는 낙태하고 못 가진자는 낙태 못하는 사회적 불평등을 깨면서도) 무엇보다도 고귀한 생명의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태아 성별 감식에 대한 의사 처벌 강화, 미혼모의 자녀 등에 대한 사회 복지의 향상) 이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낙태는 금기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십계명에 살인하지 말라는 금언이 있지만 종교적 신념과 관계없이 현실에서 살인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이는 사형제도 존폐 문제에서도 이미 드러나 있지 않은가. 생명의 가치를 수호하고자 하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인간을 단죄하는 것이 정당화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종교나 수많은 개인의 신념을 초월해서 제도화, 수단화 되지 않은 진정한 인간성을 갖춘 인간존재를 위해서는 낙태를 “법적으로” 허용해야 하는 것이다.





1) 참조 : http://my.dreamwiz.com/ripple31/투르기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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