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32000
 

칠지도와 한일관계

( 국사과 Report )

1학년 8반 20번 이훈재

0. 머 리 말

사용자 삽입 이미지칠지도(七支刀)는 백제(百濟) 왕이 왜왕(倭王) 지(旨)에게 보낸 길이 약 75cm 의 철제(鐵製) 칼이다.

그런데, 이 칠지도는 단순히 ‘고대에 만들어진 칼’ 정도의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일고대관계를 규명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검의 양쪽에 3개의 가지가 달려있는 이 칼의 중앙 칼몸 양면에 적힌 61자의 명문(銘文) 해석을 둘러싸고 백제가 왜에 하사한 것이냐, 헌상한 것이냐에 관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1. 칠지도의 등장

오랫동안 비장되어온 칠지도는 1874년 이소노카미신궁의 대궁사(大宮司) 간마사도모(菅政友)가 명문을 판독하여 발표하면서이다. 곧은 칼 몸의 좌우로 가지 모양의 칼이 각각 3개씩 나와있어 모두 7개의 칼날이므로 칠지도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2. 명문(銘文)의 해석에 대한 한․일의 입장

일본학계에서는 칠지도의 명문을 주로 ‘백제가 왜에 헌상한 것이다’, ‘하사도 헌상도 아닌 동등한 양국관계의 일종의 선물이다’ 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이 대륙진출에 비롯 한반도에 야욕을 보이고 침입했던 과거사를 볼 때에, 일본측에서는 어떻게든 한국의 과거사를 왜곡하고 한국에 있어서의 일본의 우위를 합리화할 수 있는 역사적 증거를 만들려고 노력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며, 실제로 일제강점기에 그들이 행한 민족문화말살정책에 미루어 보아 칠지도의 명문을 억지로 해석하고저 노력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그래서 국내외 학계의 일부에서는 처음 발견하여 명문을 읽은 간마사도모가 일본측에 불리한 몇몇 글자를 삭제했을 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러한 점에서 칠지도 명문해석의 문제는 광개토대왕비문해석 문제, 임나일본부설등과도 통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3. 명문(銘文)의 해석

* 칠지도의 제작연도 연구*

<<일본서기>> 신공기(神功記)의 기록을 보면 “신공(神功) 52년 백제의 구저(久 )가 칠지도와 칠자경(七子鏡)을 비롯하여 각종의 귀한 보물(重 )을 가져왔다” 하였고 응신기에도 “백제국주(百濟國主) 조고왕(照古王)이 횡도(橫刀) 및 대경(大鏡)을 보냈다.” 하여 백제 근초고왕때 이 칠지도가 왜에 전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칠지도가 제작된 백제 근초고왕때는 백제가 크게 성하여 사방으로 영토가 넓어 그 세력이 막강했던 때이다.

이러한 입장을 고려하여 명문을 해석하면,

「泰和四年五月十一日丙牛正陽. 造百練鐵七支刀. 酸百兵.

宜供供侯王.□□□□作.先世以來未有此刀. 百濟奇生聖音.故爲倭王旨造. 傳示世』

泰和四年 ; 369년, 근초고왕 24년 (중국 동진의 연호와 같으나 대륙까지 석권한 백제가 동진의 연호를 빌려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酸百兵 ; 또는 자와 비슷하게 보이는 □ 부분을 문맥상 로 두고 또한 자전에 와 함께 통용될 수 있는 글자이므로 개피벽병으로 읽으면 ‘백병을 어찌 피하겠는가’ (백제의 막강한 군사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임)

宜供供侯王 ; 은 자전에서 찾으면 의 뜻과 함께 – 받들음 의 뜻도 갖고 있으므로 供供은 받들고 받들라는 뜻.

百濟□ ; 백제왕세자로 읽는 데에 별다른 이견이 없음.

奇生聖音 ; 신령스럽게 태어난 샌님, (샌님은 고대국가에서는 더 올린 경칭)

이에 따라 읽어보면

– 태화사년 오월 십일일 병오정양에 백번(百番)이나 쇠붙이를 단야(鍛冶)하여 이 칠지도를 만들었다. 어찌 백병을 피하겠느냐. 마땅히 후왕을 받들고 받들라. 선사 이래로 이와 같은 칼은 아직 없었다. 백제왕세자는 신령스럽게 태어난 샌님이다. 그래서 왜왕이 되는 것이고 그런 취지에서 이 칼을 만들었다. 후세에 전하여 보이도록 하라.

4. 결 론

사용자 삽입 이미지명문의 해석 상 백제가 일본을 지배했거나 동등한 위치에 있었다고는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절대로 일본이 우위에 있었다고는 말할 수가 없겠다.

아울러, 일제의 한반도 통치의 합리화는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느 나라가 우위에 있느냐에 대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두 나라의 끊임없는 발전을 위해 뿌리깊은 민족적 감정을 접고 상호 교류․협력으로서 평화 공존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 참고사항 및 자료의 출처

고대 한일관계에 대한 광개토대왕릉비문, 임나일본부설, 칠지도 모두 조사의 필요가 있음.

주로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었으며 명문의 해석은 ②에서 인용함. ①에는 백제와 일본에 대한 연구자료가 풍부함.

① 서울대학교 홍원탁(http://gias.snu.ac.kr/wthong) 님의 연구물 ‘百濟와 大和日本의 起源’ (http://gias.snu.ac.kr/wthong/publication/paekche/paekche.html) 의 제5장 4. 칠지도

② 해동검도연맹(http://www.haidong.com)의 石上神宮七支刀 (http://www.haidong.com/library/li510.htm)

③ 야후! 백과사전(http://kr.encycl.yahoo.com)

④ 두산세계대백과사전

! , 일본사정리 http://linux.kukje-h.ed.kwangju.kr/~nam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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