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2006
 

유전도 2006-09-17 18:18:38
 
인간은 자유로운가? 이 물음을 둘러싼 논의를 다시 읽다가 문득 확률의 문제와 관련하여 ‘유전도’ 개념이 떠올라 적어봅니다.


0. 시작하며


부모의 형상, 성격, 체질 등이 자손에게 전해진다는 ‘유전’의 개념은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것은 꼭 닮은 생김새만 보더라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간의 믿음에 더하여, 오랜 과학적 연구와 검증을 거쳐 유전은 이제 엄연히 객관적 사실의 지위를 갖고 있다. 그러니 유전은 받아들이면서 진화론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소중한 이성이 단지 영겁의 세월 앞에서 쪼그라들어버렸음을 한탄해야할 것이다. 조물주가 창조한, 위대한 정신을 지닌 인간으로서 우리의 자유와 평등, 의지를 애써 부여잡는 것보다는 우리의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애쓰고, 인과적인 문제에 천착하는 것이야말로 보다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기도를 통해 마음의 안식을 얻어 현상학적 자유를 확보한다하더라도 그것은 순간이다. 내가 수능시험을 보는 날, 어머니는 다른 수험생 어머니들과 함께 열심히 기도를 드렸다. 어김없이 점수대로 줄은 세워진다. 신심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면 세상 만물의 이치는 다 그런 것이며, 우리가 신 앞에 보잘 것 없는 죄인인 탓이리라. 가르침대로 서로 사랑하기라도 하면 좀더 평등한 사회가 이룩될지도 모르겠지만, 요원한 일이다. 운명론 앞에서라면 우리는 작은 자유와 불평등한 사회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될 테니. 종교를 믿는 성향마저도 고대부터 인류의 문화적 보편 현상으로, 유전적인 원인을 갖을 거란 의심이 든다. 아니, 이렇게 의심많은 내 성격은 유전의 영향인가, 교육의 탓인가.

이제 우리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을 던진다. 유전자가 우리의 구체적 행동에 대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

 

1. 어려운 유전 연구

멘델의 대단한 노력 이후 백년 이상 지난 현재에도, 행동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들 중 극소수만 염색체상의 위치가 알려져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그 유전자들이 영향을 주는 발생경로에 대해서도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이는 ‘진화에 관한 잡생각’에도 소개했던 실제적 어려움–하나의 표현형질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여러개, 하나의 유전자가 영향을 끼치는 표현형질이 다양하다– 때문이고, 동시에 인간 행동의 유전적 인과문제와 같은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관해서 그렇지 않아도 엄격한 과학은 한층 더 엄격하고, 윤리적이어야하기 때문이다. 가령 ‘성차性差’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그것이 유전적인지 후천적인지 여부는 실제이상으로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다. ‘양성평등’이라는 지향점에 동의한다면서도, 여남의 차이가 유전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서 남성은 차이는 차별과 다르다며 변화에 맞서 기존가치를 옹호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여성은 사회생물학에 ‘반여성’의 이데올로기를 덧씌워 폐기하려든다.


과학시간에 배웠듯 인과해석을 위해서 우리는 변인을 통제하고, 조작한 뒤 결과를 살펴보는 일련의 과학적 실험절차를 따라야하지만, 인간의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에 묶이기 때문에, 사실상 우리는 유전자와 행동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혀내기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남성을 여성으로, 여성을 남성으로 성전환시키는 조작없이 안일하게 “여성/남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떠하다” 라고 말하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여남의 선천적 차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런 우리가 차선으로 기댈 수 있는 것이 상관연구-확률적경향성이다. 실험심리학에 호적을 둔 나는 개인적으로 상관연구보다 인과연구가 더 가치있고 의미있다는 입장이고, 상관연구 결과를 가져다가 제멋대로 인과해석으로 왜곡시켜버리는 언론에도 이골이 났지만, 그럼에도, 진실에 한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가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확률적 경향은 충분히 의미있다.

 

2. 유전도


현재 유전자가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방법 중에 통용되고 있는 것은 유전도(유전가능성)이다. 유전도는 인간 형질의 변이 중에 유전에 따라 생겨난 것들이 얼마나 되는지를 추정하여 나타내는 척도이다. 수학시간에 배운 통계를 떠올려보면, 인간 개체군 내에서 추출된 개체 표본에서 표준화된 방식으로 형질을 측정, 그 표본 속 개체들 사이에서 변이를 측정하고, 유전에 기인한 변이량을 측정하면 그 부분이 바로 ‘유전도’라고 할 수 있다. (도움: 분산은 표본의 평균에서 각 개체의 값을 뺀 차이값을 차례로 제곱, 그 값들의 평균) 그리고 유전에 기인한 변이량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김청하 – 인간은 자유로운가 (1) – 유전자’에 소개된 것처럼 “쌍둥이 연구”가 필수적인 현실이다. (입양아와 친부모, 양부모와의 유사상 비교 방법도 있지만)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환경을 통제하기 힘든 상황에서, 일란성 쌍둥이는 이란성 쌍둥이보다 더 많이 닮았고 이런 차이는 형질의 전체변이에 유전도가 얼마나 크게 작용했는지를 대략적으로 알려주는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란성 쌍둥이 형제로 태어났지만 서로 다른 가정에 입양되어 다른 환경에 자라나게 된 경우를 연구할 때 더욱 강력해진다.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는 이들이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을 때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알게 되면 유전도의 크기를 좀더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중상관분석이라는 통계적 기법에 대해서는 ㅈ도 모르겠다.)

정리하면,

유전도는 유전으로 인한 변량의 추정치로 0에서 1사이의 범위에 있다.
0이면 검사집단 내에서, 검사한 특성상 관찰되는 변이를 유전적 차이로 전혀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고, 1이면 관찰된 차이가 모두 유전적인 차이에 의해 설명되는 것이다. .5와 같은 중간값이라면 유전의 역할이 중간 정도라고 말할 수 있는 셈이다. 참고로 헌팅턴병은 유전도가 거의 1이고, 지능(IQ test)은 .5, 공격성은 .5, 범죄율은 0에 가깝다.

주의해야할 점은, 유전도는 일차적으로 개체군에 적용되는 것이지 개체에 마구 들이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를들어 “주영준의 우울함은  30$는 유전에 의해서 70%는 환경에 의해서 결정됐다”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고, “한국사람들의 우울함의 차이 중 30%는 유전에 기인한 것이고, 70%는 환경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해야 옳다. (우울증의 유전도는 잘 모르겠지만, 꽤나 유전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유전도 값이 던져주는 의미의 개인차가 크다는 사실(.5의 유전도는 사람에따라 절망을 안겨주기도 하고, 희망을 품게 하기도 하니까)은 개체의 입장에선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유전도는 정확하게 측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1. 쌍둥이가 그렇게 많진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통계적 문제), 2.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이 섞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과 유전적으로 유사한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하는 정도와, 유사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하는 정도를 확실히 알 수 없다. 이는 유전도 측정치가 특정한 환경 하에 있는 특정한 집단에만 적용될 뿐 환경이 달라졌을 때는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작위 추출이 전제되지 않는 통계의 마법은, 사기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를들어 모든 사람이 서로 가까운 친척인 집단에서는 대부분의 행동의 유전도가 낮아지게 된다. 사람들이 유전적으로 차이가 별로 없으면, 그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변이 또한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유전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동일 환경에서 사는 집단의 경우에는 유전도가 높게 나타날 수 있다. 조그만 행동의 변이라도 그것은 환경에 기인하는 것보다는 유전에 기인하는 것으로 추정되기 쉬우니까.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은 더 골치아프면서도 흥미있는 부분이다. 인간은 과연 자유로운가? 자유롭고 의지를 지녔다면, 우리가 부모의 어떤 형질을 물려받았음을 알면, 우리는 그 형질의 발현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오히려 그 물려받은 자질이 마음에 든다면 의도적으로 갈고 닦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분명 우리는 타고난 재능과 성격에 어울리는 역할들만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유전적 성향을 보상해주는 환경에 이끌리기도 한다. 환경 자체가 유전과 독립적이지 않다. 나와 비슷한 유전형질을 가진 부모님은 나를 자신과 동일한 방향으로 자라나도록 환경을 유도하기가 쉽다. (리차드도킨스 스타일로 가면) 어쩜 유전자는 자신이 더 잘 표현될 수 있는 특정 환경을 창조하는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바이올린을 잘 켜는 유전자 같은 건 없다. 손재주, 주의집중력, 리듬,음조 등을 통제하는 능력, 감정표현력 등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 집합이 있을 뿐이다. 스릴을 추구하는,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아이는 부모/환경의 지원과 격려로 카레이서가 될 수도 있고,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공격성의 유전도가 .5 이고, 범죄율의 유전도가 0에 가깝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3. 예시: 유전도로 바라본 사회


유전도의 개념과, 활용/측정법 상의 한계에 관한 이와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의 날카로움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되지 않을까 싶다. 가령 지루하고도 지루할지 모르지만 언제나 중요한 교육문제를 예로 들어 보자.

한 사회가 굉장히 평등한 사회가 되어서, 모든 아이들의 거의 똑같은 환경에서 양육되고, 자신의 능력 내에서 자율적으로 직업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고 가정하면, 인간 행동에 있어서 환경 차이의 요인은 줄어들고 유전적으로 타고난 능력과 성격의 영향이 증가한다. 이런 식의 유전도 증가는 결국 영속적인 사회/경제적 계층의 구분에 대한 유전적 요인을 증가시키는 것이니 바람직하다고 하기 어렵다.

만약 모든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훌륭하게 설계된 평가(시험)제도를 통해 분야별 점수에 맞는 각기다른 교육기관에 들어가게 되고, 재능과 흥미에 적합한 교육을 받아 직업을 갖게 한다면, 그것은 교육의 효과;환경변이를 증가시키면서도 선천적 능력도 동시에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학벌주의와 입시경쟁과열을 둘러싼 대책을 논의함에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결과의 균일성이 최고의 덕목이 될 우려가 있다. 기계적인 지역할당제, 수능을 쉽게 내고 내신반영비율을 높이기, 고교 입시경쟁을 만들어내는 특목고나 영재학교에 반대하는 것 등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으며,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여 섣불리 시행하면 장기적으로 교육을 더욱 망칠 뿐이다.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 홀대받고, 지체아들이 개별적이고 집중적인 훈련을 받는 상황은, 특정목표(국가 이데올로기, 공정성, 획일주의) 달성을 위해 환경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절하여 능력과 성취면에서 동일한 수준을 찍어내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 의무교육이 출범한지 50여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정치/경제적 다툼 때문에 이상적인 교육원칙이 흔들리는 것은 옳지 않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배우는 이들에게 어떻게 만족감과 행복을 안겨줄 것인가에 관하여, 교육의 ‘내용’을 고민하고 거기에 아낌없이 인적/물적 지원을 쏟아붓는 게 핵심이 되어야한다. 돈과 노력을 아끼기 위해서 (아님 보다 음흉한 목적을 갖고) 교육을 시장에 떠맡겨버렸기에 오직 부모의 경제력 차이에 의해 재능을 발현할 환경의 차이가 생겨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4. 맺음말

유전도는 현재와 미래의 환경에서 유전적 변이가 어떠한지 예측하는 도구이지만 틀릴 가능성이 다분하다. 앞서 설명한 이유 외에도, 연구의 진척에 따라 사실 관계가 뒤바뀌는 경우도 많다. 70년대까지는 자폐증이 환경에 의한 병으로 알려졌으나, 지금은 유전의 영향으로 밝혀졌고, 알코올 중독은 90년대까지도 거의 유전적인 줄 알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것이 남성에게는 약간 유전적이지만 여성에게는 유전적이지 않다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 좋은 예다. 이런 유전도가 사회의 예측도구로 사용될 때는 위험이 따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말하고 싶다. 측정의 어려움을 차치하고, ‘유전도’의 참값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할 때 우리는 인간 사회의 유전도를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이다. 유전도를 변화시키는 사회정책을 펴는 것은 위험하다. 희귀 종 멸종을 걱정하며 생태계 보존을 역설하고 종 다양성을 확보하자고 외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는 인간개체군 내 변이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문제에도 꼭 같이 적용할 수 있다. 인간이 전제정이나 파시즘, 획일화에 맞서 자유를 쟁취해 온 역사, 각 개인의 개성을 북돋우면서도 (전쟁 등으로 판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오늘날의 전면전은 옛 기대와 달라서 일어나면 곧바로 인류의 멸종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평등의 가치를 구현하려는 노력 등은 어쩜 이런 다양한 인간군상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말이 있다.  “최선의 결과를 원하거든 집단이 아니라 개인을 교화하라.” (누가 말했는지 기억 안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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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 노지훈
 제대로 칼럼이네요~
흐흐 잘 읽었습니다.

2006-09-18 04:15:44  
상병 김청하
 얏호 어쩐지 아침부터 기분이 좋더라.

2006-09-18 07:15:16  
상병 김청하
 아니 리플 다 어디갔어. (울고싶다)
2006-09-20 07:14:12  
병장 주영준
 청하, 형주씨 어쩜좋아.

2006-09-20 07:26:11  
상병 이승일
 얏호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유전도라는 개념은 1990년대 이후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조군에 의한 변별도 측정이 실질적으로 과학적 정확성을 갖기 힘들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유전은 과거에 멘델이 이해했던 유전과는 매우 다릅니다.  즉 어떤 것은 유전이고 어떤 것은 후천적이냐를 물었을 때, 그 경계가 굉장히 모호하다는 것이죠. (잘 알 수 없어서 모호한게 아니라 근본적인 개념에 있어서. )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인간의 사고과정, 성격, 등등은 분명 신경회로의 페턴에 의해 결정됩니다. 신경 회로의 페턴이란 다시 말하면 뉴런들의 위치 분포와 그들 사이의 연결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뉴런의 위치에 관해서 살펴봅시다.

 태아의 뇌세포가 처음 만들어지는 곳은 뇌실이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이곳은 매우 좁은 영역으로서, 여기서 만들어진 뉴런들은 자리를 옮겨서 뇌의 피질로 이동해야합니다. 마치 지구의 핵 주변에서 만들어져 지표면으로 융기하는 맨틀처럼, 뇌의 중심부에 있는 뇌실에서 뉴런은 뇌의 피질 영역으로 올라오게 됩니다. 그런데 자기 힘으로 올라올 수 는 없으므로 ‘방사교세포섬유’ 라는 물질을 이용해 올라옵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밧줄로서, 뇌실과 피질사이를 연결해줍니다. 이런 방사섬유를 따라 피질로 올라와 자리를 잡는 것이지요.  때문에 각 뉴런의 위치는 방사섬유가 어디로 인도해주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방사섬유의 방향과 길이는 또 어떻게 결정될까요?  그것은 주위의 특정 화학물질들의 안내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말하자면 화학적인 안내판인 셈이죠. 그렇다면 이제 이 화학적 안내판들이 어디있는가를 결정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물어야할 것입니다. 우선은 특정 영역의 DNA 들이 그러한 한내판을 많이 생산해 내느냐 마느냐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그런 안내판을 대량 생산하는 영역이 있다면, 방사섬유는 그쪽으로 자랄테고, 뉴런 역시 그것을 따라 올라가겠지요. 그런데 한 영역에서 안내판들이 많이 생산되었다고 해도, 여러 다른 요소들에 의해 확산되거나 자리를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엔 작은 물리적 충격에 의해서도 그 위치가 달라질 수 있죠. 뿐만아니라 어떤 지역의 DNA 가 그러한 안내판을 많이 생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순수 유전적인 것은 아닙니다. 각 DNA 에서 안내판을 생산해내는 코드를 on/off 시키는 것은 주위의 단백질들이기 때문입니다.

뉴런의 위치 뿐 아니라 뉴런 사이의 연결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뉴런의 연결에 관해서는 선택주의와 지시주의라는 두 가지 학설이 있는데 오늘날에는 둘 모두 뉴런의 연결에 기여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선택주의적인 입장은, 태아 때에 가장 많은 뉴런의 연결이 이미 만들어졌다가, 경험에 의해 어떤 연결은 제거되고 어떤 연결은 살아남는다는 이론입니다. 즉, 일단 다 연결시켜놓고 나중에 쓸모 없는 것을 없앤다는 뜻이지요. (이것이 자연선택과 유사해서 선택주의를 신경다위니즘이라고도 부릅니다.) 지시주의는, 경험에 의해 뉴런의 연결이 새로 생성된다고 하는 이론입니다.  두 이론 모두 유전과 경험에 의한 영역을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선택주의의 경우 꼭 경험만이 뉴런의 배선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더욱 그렇지요. 어쨌건 이 두가지 이론이 모두 맞는 것으로 밝혀졌고, 뉴런의 연결과 관련된 유전의 영향은 더욱 더 파악하기가 어렵게 변화했습니다. 그냥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굉장히 많이’ 영향을 주리라는 것 정도이지, 그 과정을 추적해내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뉴런의 위치와 배선을 결정하는 메커니즘은 너무나도 복잡하게 유전적/ 비유전적 요소가 뒤섞여 있어서 어느 부분을 분리해내야할지 도저히 판단할 수 없습니다.  만약 ‘유전’이라는 개념을 단순히 DNA 의 전수라고 본다면,  유전에 의한 지능, 성격 등의 영향은 매우 낮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DNA 만이 유전에 관여하는 요소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DNA 의 메칠레이션과 에칠레이션,(알콜화)  국소적인 기하학적 상태, DNA의 특정 영역을 활성화되지 못하게 덮고 있는 단백질들의 위치 등등 수많은 화학적 환경이 유전형질의 발현에 관여하며, 이러한 환경 역시 DNA와 함께 전수되기 때문에 형질의 정확한 유전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이런 모든 것을 전부 고려해야한다면, 거기서부터는 생물학의 영역이 아니라 물리학의 영역에 가깝게 됩니다.
 ‘유전도’ 의 참 값이 존재할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유전도라는 개념자체를 명확히 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어쨌건 결론에서는 훈재씨와 다시 만났네요. 유전이라는 것의 범위 자체가 매우 모호하기 때문에 유전도를 기초로 사회정책을 만든다든가 하는 것은 거의 코미디에 가깝습니다.





2006-09-20 07:29:38  

병장 이훈재
 이얏호. 댓글 감사해요. 신경과학적 내용을 상세히 덧붙여주시니 문제가 좀더 명쾌해지네요. 유전연구의 현재를 논하는 데 있어서, 제가 좀 구닥다리 지식을 갖고 얘기한 셈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유전도의 참 값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통계적 처리를 통해 값을 내는 지금의 방식이 유전도 개념의 정의에 포함되는 것이라면 그 참 값을 구하는 건 힘들 것 같아요. 평균값이라는 게 워낙 극단값의 영향에 치명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생물학적 돌연변이나 특수하게 조작된 인위적 환경 속의 개체변이 등이 큰 문제가 될 테니까요. 모호한 개념을 기초로 사회정책을 만드는 것도 위험하지만, 좀더 나아가 명확한 유전 범위를 알 수 있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은 위험하지 않을까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6-09-20 09:37:14  

병장 이훈재
 <리플 백업해둔 걸 몇 개 발견해서 올려봅니다, 청하씨와 형주씨가 원하시지 않으면 자삭하겠습니다>


상병 김청하 – 2006-09-18 23:48:10

“인간의 자유를 말할 때에 유전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부분은 제가 표현을 잘못했군요. 유전도가 정확하게 몇의 수치를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유전도가 0이나 1이라면 그건 분명히 의미를 갖지만 그 사이의 숫자라면 0.2이든 0.75이든 별 상관이 없다는 뜻이었어요. 그리하여, 여전히 저는 유전자가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의식 이전에 의식(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무언가)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우리의 (객관적) 자유를 훼손한다고 생각합니다. (노파심에서 얘기지만 프로이드랑은 전혀 관계없습니다)

[완전히 다른 곳에서 완전히 따로 자란 쌍둥이 형제가 처음으로 만났는데, 같은 차를 타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유머에 웃고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면, 그들에게 자유는 있었던 것일까요?] 그들이 자신의 선택이라고 믿었던 것은 대체 뭐였단 말입니까. 이건 쌍둥이에 국한된 얘기가 아닙니다. 유전자가 이렇게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우리가 우리의 선택이라고 믿었던 것은 대체 뭐였단 말입니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발전이 없는건지 몰라도 저는 아직 이 생각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충격적인 것은 지적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과 같은 추상적인 척도 뿐만 아니라 TV시청시간, 이혼율, 성적 취향, 낯선 사람에게 처음 건네는 말의 주제와 같은 처절하게 구체적인 부분에서까지 유전적이라는 것이지요. 해외로 입양되었을 경우엔 언어가 다를테고, 문화권에 따라 믿는 종교가 다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언어를 얼마나 잘 사용하는가, 그리고 그 종교에 얼마나 독실한가, 와 같은 부분은 유전적이거든요.

예전의 자유 논의는, 새로운 책마을에서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승일 씨와의 논의까지 정리해서 전부 새로 써서 올려볼 생각입니다. 기대하세요. 하하.



물론 행동심리학적으로 얻어진 결과를 그대로 유전자로부터 직접 발현하는 거라고 보긴 힘듭니다. 예를 들면 적극적인 성격과 같은 경우에, 유전자가 만든건 매력적인 외모 뿐이고 거기에서 간접적으로 적극적인 성격이 얻어졌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아마 TV시청시간이나 이혼율 같은 것은 아무리 놀라운 일치를 보인다고 해도 그것이 유전자로부터 직접 얻어진 형질이라고 보는 것은 절대 무리일겁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설마 “하루에 TV시청 두시간 하는 유전자” 같은게 있겠어요?

아마도 이것이 훈재 씨가 지적한 ‘상관분석’의 한계겠죠? 하지만 이런 상관분석에서도 나름대로 환경의 영향을 배재하는 방법의 하나가 바로 따로 자라난 쌍둥이의 연구일테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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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 박형주  2006-09-19 01:25:35

자세한 사항은 교육학도의 몫으로 남겨 두고, 다만 다소 의아한 부분이 있어 지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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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가 굉장히 평등한 사회가 되어서, 모든 아이들의 거의 똑같은 환경에서 양육되고, 자신의 능력 내에서 자율적으로 직업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고 가정하면, 인간 행동에 있어서 환경 차이의 요인은 줄어들고 유전적으로 타고난 능력과 성격의 영향이 증가한다. 이런 식의 유전도 증가는 결국 영속적인 사회/경제적 계층의 구분에 대한 유전적 요인을 증가시키는 것이니 바람직하다고 하기 어렵다.

만약 모든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훌륭하게 설계된 평가(시험)제도를 통해 분야별 점수에 맞는 각기다른 교육기관에 들어가게 되고, 재능과 흥미에 적합한 교육을 받아 직업을 갖게 한다면, 그것은 교육의 효과;환경변이를 증가시키면서도 선천적 능력도 동시에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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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정은 상반된 것 같지만 실은 같은 가정을 통해 정반대의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첫번째 가정은 같은 환경이라면 직업 선택은 유전적 능력의 차이에 기반해 이루어진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사회 계층 구분이 타고나는 능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의미하고 곧 불평등한 결과를 낳기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사회 계층의 구분은 바로 환경 변수를 증가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평등하게 출발했더라도 불평등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회는 고도의 재분배와 공교육 제도를 통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교육의 목적이 체제의 재생산이라는 것, 그리고 교육이 계층 이동의 주된 수단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사회는 유전적 능력으로 인한 결과의 차이가 재분배와 공교육을 제도를 통해 환경 변수를 증가시키는 계층 분화로 이어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결과의 차이가 계층 분화를 일으키고 그것을 영속화한다면 이 사회는 평등한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결과가 타고난 능력이 아닌 환경에 좌우되고 그것은 동일한 출발점을 불가능하게 만들며 더욱 계층 구분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모의 특정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 능력이 같은 수준으로 후손에 계속 전해지는 것이 아닌 이상 계층 구분이라는 환경 변수를 덜 만들어내는 사회는 매우 공정하고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가정에서 평가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유전적 능력입니다. 그런데 첫번째 가정에 의하면 평가 결과에 따라 교육받고 직업을 가지게 된다면 나타나는 현상 역시 환경 변수를 증가시키는 계층 구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이 교육의 목적은 첫번째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능력 내에서 자율적으로 직업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여기서 그 다양한 교육과정이 이루어지는 데 지역의 교육시설 차이, 부모의 경제력 등의 환경 변수가 작용하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첫번째 사회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주 공정한 공교육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겠죠. 만약 작용한다면, 타고난 능력에 의거해 교육을 시작했더라도 환경 변수가 있으므로 결과는 능력에 맞는 교육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계층 구분이고 이는 환경 변수를 더욱 증가시킵니다. 이것은 매우 불평등한 결과를 낳는 교육 시스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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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목표(국가 이데올로기, 공정성, 획일주의) 달성을 위해 환경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절하여 능력과 성취면에서 동일한 수준을 찍어내는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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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위의 첫번째 가정에 의하면 환경 변수가 작용하지 않는다면 결과의 차이는 타고난 능력에 의해 결정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똑같은 교육을 받는다면 능력과 성취면에서 동일한 수준이 나타난다는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첫번째 가정이 타고난 능력의 차이가 있더라도 같은 교육과정에 의해 그 능력이 발현되지 않아 동일한 수준의 성취가 나타나기 때문에 계층 분화를 낳지 않는 결과가 된다거나, 위의 주장이 같은 교육을 하더라도 능력에 따라 다른 성취가 나타난다는 주장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논리의 문제고, 현실의 교육 얘기를 해 봅시다. 제가 알기로는 공교육의 경우 능력에 따른 수준별 학습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학습 효과가 뛰어나다는 주장은 입증된 바 없습니다. 이는 특수한 재능의 계발을 위한 교육제도가 존재하느냐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자면 한국은 고교평준화 지역이 있고 비평준화 지역이 있는데, 비평준화 지역의 학업성취도가 평준화 지역에 비해 뛰어나다는 것이 증명된 바 없다는 거죠. 다만 분명한 것은 사교육과 지역 등 환경 변수가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치고 교육에 따른 계층 분화가 크게 작용하는 한국의 상황에서 수준별 교육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평등의 심화를 의미할 뿐입니다.





리플도 백업해 둔 제 자신이 존경스럽습니다. 으아.

2006-09-20 09:42:25  
병장 이훈재
 <제 것도 찾았습니다>

형주 /


지적하신 논리와 현실 문제, 모두에 있어서 제 생각을 좀더 자세히 말씀드려야할 것 같습니다. 부족한 글이어서 내용 전달이 잘 안 된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같은 가정을 통하여 정반대의 결론을 이끌어 낸 것이라는 지적에 대하여,
  같은 조건을 가정한 것이 아닙니다. “한 사회가~어렵다”문단(편의상 문단1)과 “만약~이상적일 것이다”(편의상 문단2)는 조건도 결론도 서로 다릅니다. 동일 환경에서라면 직업 선택에 유전적 능력차의 영향이 증대될 것이라는 이해는 맞습니다. 그렇지만 문단2가 문단1과 다른, 중요한 부분은 바로 “훌륭하게 설계된 평가(시험)제도” 입니다. 여기서 평가는 개인의 능력과 흥미를 반영하여 각 개인에게 맞춤식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선천적 능력의 차이를 파악하고 그것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북돋아줄 수 있게 됩니다. 문단1의 사회는 (현실에 딱 맞아떨어지기 힘들지만 이해를 돕기위해) 예를들면 천편일률의 교과과정과 수능시험만으로 입시경쟁을 시키되, 사교육이나 기타 교육환경(영양상태,정서적안정 등)에 있어서 차이를 거의 없앤 사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개인의 선천적 능력이 계층구분으로 이어지고, 부모의 특정 능력이 곧바로 (한 세대에서) 같은 수준으로 후손에게 이어지진 않지만, (과거 긴 역사를 지켜볼 때 충분히 그러하고) 장기적으로 볼 때 결코 우리가 추구해야할 교육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저 역시 교육의 공공성을 옹호하는 입장이지만, 문단1의 “모든 아이들의 거의 똑같은 환경에서 양육되고” 가 형주씨가 지적한 “다양한 교육과정”으로 읽히는 바람에, 형주씨는 저와 정 반대의 결론이 가능한 것으로 보신게 아닐까요.
 
“환경변이를 증가시키면서도 선천적 능력도 동시에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환경변이는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계층구분이 아니고 공적으로 제공되는 교육환경이 다양하다는 점에서의 환경변이인 것입니다.
 
 그래서 댓글 말미의 “똑같은 교육을 받는다면 능력과 성취면에서 동일한 수준이 나타난다는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 는 극명한 오해입니다. 저는 능력과 성취를 동일하게 맞추기 위해서 제공되는 교육(환경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절)을 문제삼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정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흥미를 보이는 학생에게 그저 평범한 교육을 제공하여 결과적으로는 해 능력의 수준을 하향시키고, 그 분야에 부진한 학생을 집중적인 훈련으로 끌어올리는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공공성의 가치를 우선에 두고 있어도, 목전의 계층분열과 갈등해결만을 위해서, 현재 공교육 대신에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 특목고를 없앤다거나 사교육을 무조건적으로 제재하는 것은 그래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습니다. 역시나 제 글의 “환경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절하여” 부분이 주는 느낌 때문에 잘못 읽힐 가능성이 큰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실교육에 대하여, 수준별 이동 수업, 속칭 우열반 편성 등과 관련해서는 저도 형주씨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회심리학, 교육심리학자들의 수많은 연구결과도 이를 입증합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비교문화 쪽의 최신 연구들은 동서양의 차이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동양 문화권에서는 개인의 특성을 중시하기보다는 주변의 사람들 사이에서 조화롭게 어울려 사는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다음 부분이 사라졌네요. 뭐라고 열심히 썼는데 다시 쓰려니까 모르겠어요. 형주씨가 읽었기에 그냥 그대로 두겠습니다. 대략 우리가 성적-대학입시-직업선택-사회계층구분의 연결고리에만 집착하느라, 정치/사회적 갈등해결에만 민감하고 근본적인 교육의 개선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말예요.)

2006-09-20 10:06:31  

병장 고계영
 흠. 역시 사이언스학파에서 탈퇴를 해야…
승일씨에 대한 리플달다가 지움. 흑
2006-09-20 10:20:03  

병장 이훈재
 해부학에 해박한 지식을 갖추신 계영씨가 이러심 안되죠.

2006-09-20 10:24:44  

상병 김청하
 나도. 두뇌의 가소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막 정신이 멍해짐.
2006-09-20 10:36:17  

병장 고계영
 ‘생물학’은 환원적인 연구가 계속 이루어질수록 물리+화학적 측면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리+화학=>생물학이다 라는 말까지 나오니까요. 물리적인 측면의 뇌의 구조와 뉴런, 유전자 의 구조적인 측면이라면 화학적인측면. 인체의 구성성분부터 호르몬, 분해효소 어쩌구 저쩌구까지.. 결론은. 승일씨는 대단하시다는거~

2006-09-20 10:58:08  

상병 이승일
 헛 이사람들이 왜이러시나 … 전공이 그거였는데 그것도 모르면 전 나가서 죽으라는 소리 (……..) 청하씨, 어서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자구요. 제가 10월중순부터 당분간 인트라넷을 못쓸지도 모르기때문에 …..
 

2006-09-20 12:52:28  

병장 고계영
 분자 생물학이라고 하셨었나요?

제가 알기로는 창하씨는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하하.
승일씨도 준비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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