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072004
 

2004-1 적응과 심리학 (김만권) – 0310331 심리학과 2학년 이훈재



<왜 살아야 하는가?>




 궁극적으로 살아가는 데는 이유가 없습니다. 수많은 철학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이 이성과 신이라는 이름하에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만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삶을 전체적으로 설명하지도,
이롭게 하지도 못한다고 믿습니다.




 물론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흔한 대답을 정리해 볼 수는 있습니다.




—-


성공 (외적: 권력, 금력, 명예) 또는 행복 (내적: 상대적, 주관적) 을 얻기 위해 (새내기)




성공한 다른 사람 (더 가진 사람)을 보며, 상대적 행복마저 객관화시키며


나는 행복할 수 없는가? 그렇다면 내 삶의 의미? 부정의한 사회, 불공평한 사회. (염세주의)




지금껏 (성공 또는 행복의 목표 아래)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것을 성취한 뒤,


이것이 삶의 의미가 아니었던 것 같다. (허무주의)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나요? 나의 탄생은 내가 경험 이상의 것인데


그런 내 삶의 이유를 내가 알 수 있을까? (불가지론)




삶의 의미를 고민하다가 삶이 다 지나간다. 인생 뭐 있나!


그저 나 기분 좋은 것 하며 사는 거지! (쾌락주의)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 세상에 나는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예: 죽지 못해 산다.)  – (실용주의)




우리는 동물이고 대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생존 경쟁


보이지 않는 본능으로 인해 진화를 거듭해 삶을 이어갑니다. (생물학적, 과학적)


——–


 역시 어떤 이유이든 완전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나보다 더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생각하고 열심히 살자, 못 해본 일이 많아 억울하니 살자, 태어났으니 살자 등 저마다의 변명이 많을 뿐.


 


 결국 인간 삶의 목적은 없는 것인가? 실존주의 철학에서 말하는 “(인간)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 을 생각하면 본래 인간에겐
목적이 없습니다. 뭔가를 기록해야했기 때문에 연필과 종이가 있게 되었고, 멀리 가야했기 때문에 자동차와 기차가 있게 되었지만
인간은 왜 태어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르트르가 “인간은 목적이 없기에 자유롭다.” 라고 했듯 인간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목적이 없으니까 뭐든지 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그 가능성을 어떻게 끌고 가느냐는 삶의 이유에 대해 각기 다른 대답을 하듯이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열려있는 가능성과 선택의 순간들이 있기 때문에, 마땅한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고민하고 심하면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자신만의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도록 삶의 자세를 바꿔보도록 도와주는 방법이 있겠지요. 아래는 그러한 인터넷에서 검색한 [삶의 이유를 찾으며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삶의 정신 자세와 구체적인 행동 조언입니다.


 


—– 김혜성, (http://egalite.new21.net)


 (전략) 사람이란 자기가 속한 삶의 범주 속에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이며, 어떤 거시적인 담론이 한 필부가 하루 노동 후
느낀 보람보다 훨씬 적은 행복을 가져다 주는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적어도 그의 가족을 위해 헌신했고, 직장에서 동료들과
부딪히며 보람을 나누었으며, 작지만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에 뿌듯한 걸음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내가
내 삶에 있어서 만족감을 느끼고 의욕을 느끼는 데는 어떤 거대한 운명론이나 삶의 절대 의미론 따위는 필요치 않습니다. 오히려 내
삶이, 또는 내가 속한 이 작은 환경이 얼마나 관심을 필요로 하는지, 그 안에서 얻어지는 행복이 얼마나 소중하고 당당한 것인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절대적인 운명론을 찾아나서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당장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못하고 거시적인 담론을 추구한다면 그건 한낮 지적인 유희나 공상에 불과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집착으로 변하고
벗어날 수 없는 허무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당장 우리 스스로의 삶의 토대를 바라보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어쩌면 우리가
처해 있는 작은 삶의 범주가 너무 버겁고 힘들어서 좀더 넓고 거대한 담론으로 우리의 눈을 옮겨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덧없음을 한탄하기 이전에, 왜 내 인생이 덧없어졌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당장 내게 주어진 이 삶의
토대, 삶의 범주는 어떻게 생겼으며, 내가 그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것을 하잖게 보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최선들을 찾고 만끽하십시오. 일일 수도 있고, 사람과의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 둘 다일 수도 있고요. 그러나 어느덧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이 충분히 ‘의미있어져’ 있는 것을 발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때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수단으로서, 다시 말해, 안주하는 삶보다 조금 더 원대한 바다로 나아가는 삶을 이루기 위해 보다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삶의 의미를 추구해보십시오. 그래야만, 그제서야 삶의 의미에 대한 허탈한 물음이 실제론 얼마나 충만하고
즐거운 물음이 될 수 있는지 알게 되시리라 믿습니다.


——


1. 생활에 질서를 부여하자, 2. 용모를 단정하게 가꾸자, 3. 절망감이 생기더라도 하던 일을 포기하지 말자. 4.감정, 특히
분노와 같은 감정이 치받칠 때 억누르지 말자. 5.날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공부해 보자. 6.할 수 있는 한 많은
도전을 해보자. 7.일정 기간 동안만 자기 문제에 대해 얘기하지 말고 지내 보자 8.주변의 인간 관계에 성실하자. 9.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자. 10.인생이라는 커다란 강물에 흘러가는 뗏목처럼 그렇게 스쳐지나는 모든 계기를
포착하자.  — 조지 와인버그의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사는 법이 달라진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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