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2006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한다.  정말?


목적과 의도, 그에 따른 행동과 효과까지 살펴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어렵다. 법과 현실, 윤리와 도덕, 철학과 종교 등을 넘나드며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칫 논의가 잘못을 줄이고자하는 구체적 삶을 떠나 잘못의 본질이나 기준에 관한 백가쟁명에만 치중할 우려도 있다. 물론 그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으나, 아무래도 “잘못이랄게 어딨나, 생각하기 나름이다.”, “보이지 않는 사회규범이 분명 존재한다.”, “모든 사람은 원죄를 갖고 태어났다.” 등의 이야기가 먹고 자고 싸는 일상에서 쉬 피부에 와 닿기까진, 돌머리라도 좀 굴려주어야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어쩜 오해와 실수, 범죄 등 각종 잘못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인간다운 것 아니냐며, 속 편한 소리를 하면 그만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순간의 사소한 실수가 불러온 결과에 맞딱뜨리고 나면, 엄청난 재앙이든 소소한 불행이든 대체 인간다운 결과라곤 없음을 알게 된다.


예를들면, 브레이크를 밟아야하는데 엑셀레이터를 밟아서 사람이 죽었다든지, 쓰레기통 앞에서 사탕을 까서 껍질을 먹고 사탕을 버렸다든지,


아, 진짜 인간적으로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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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이런 얼척없는 잘못을 저지르는가. 인지심리학, 넉넉하게 잡아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은 이런 인간의 잘못에 대해 비교적 명쾌한 정리를 제공한다. 일단 복잡한 ‘죄’의 문제는 접어둔다. 영단어로 보면 crime, blame, sin 등이 아니라 mistake, error 의 문제를 다루어 객관성을 확보한다. 결국 인간의 잘못Human error은 “기대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 행동을 말한다. (간혹 결과적으로 좋다 느낄 수 있지만 대개 나쁘다고 느끼는-)
그리고 이 책에서는 이를 다시 두 종류의 잘못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mistake-의식수준의 통제처리에서의 오류와 slip-무의식 수준의 자동처리에서의 오류가 그것이다.


mistake, 그러니까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줄 알면서, 판단의 착오나 목표와 방법을 잘못 선택한 탓에 예기치않은 결과를 낳았을 경우이다. 이는 대개 어떤 규칙이나 사실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되곤 한다. 제 딴에는 활용가능한 정보를 동원해서 나름대로 주의를 기울였는데,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이니 어쩜 굉장히 억울한 상황이다. 하지만 대개 “my mistake~” 하고 웃어넘기면 사람들도 몰라서 그랬거니하여 쉽게 봐 주는 경향이 있어,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이 문제를 지나치게 너그럽게 생각한다. 그러다 군대같은 곳에 오면 잘못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후임병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 보겠다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전 형식을 참고해서 잔뜩 일을 끝내놓고 칭찬을 바라며 선임병에게 자랑했을 때, “열심히 하려다 그런건데 뭘, 괜찮아.” 는 말 이전에 “누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래 이 개x끼야! 모름 물어보든가!” 가 바로 튀어나온다. 그리고 말투나 욕설을 제외하면 그것은 적합한 반응이다. 무식한데다가 센스까지 없는 게 잘못이냐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일에 관해서는 꾸짖어서 알게 해주고, 최적의 코스를 밟아 합리적 판단을 하도록 가르쳐여한다.


그런데 사실 정말 괴로운 건 우리가 서두에 예로 든 것과 같은, 나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르는 어처구니 없는 잘못slip을 범하는 것이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도무지 내가 왜 그랬는지 알 길이 없다. 다른 사람이 보아도 또라이 소리나 이제 노망이 들었다는 말 밖에 구체적인 지적거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잘못의 결과가 흔히 겪는 생활재앙인 경우에는 “조심성”을 탓하는 것으로 대략 마무리가 가능하지만, 대형사고로 이어졌을 때는 필요이상의 좌절로 깊은 상처를 입고 폐인이 되기도 한다. 이들에게야 말로 진정 위로가 필요하다. 그리고 James Reason이라는 심리학자가 이 책<Human error>을 써서 이미 1990년에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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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지체계 상 누구나 그런 실수를 하기 마련이라는데, 학자들의 권위에 기대지 않아도 우리가 잘못들을 열거하고 그 기제를 살펴보는 것은 유용하다. 그래서 자동처리와 관련된 잘못slip을 다양하게 분류하고 셜명해놓은 건 단연 이 책의 하이라이트다.


Capture error : (무의식적)자동처리가 (의식적)의도행동을 사로잡아 자동화 루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
즉, 안 하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늘 하던 대로 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예> PT체조 끝낼 때 마지막 구령은 붙이지 말라고 해도 꼭 붙이는 놈


Omissions : 자동화 루틴의 방해로 의도행동의 한 두가지 과정을 빼먹는 경우.
당초 하려고 하던 일을 잊고 늘 하던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예> 집에 들어오면 컴퓨터부터 켜는 습관이 있는 사람-내가 그렇다- 이 , 어느 날 외출을 하다가 핸드폰을 집에 두고 와서 다시 집으로 들어가서는 핸드폰은 찾을 생각을 안하고 컴퓨터를 켜는 짓거리.


Perseverations : 무의식 수준의 자동화처리 때문에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경우.
자기가 그 일을 이미 했다는 것을 모르고 또 하는 것이다.
예> 부엌에서 커피를 만들 때 이것저것 넣으며 실컷 설탕도 다 넣고선, 그걸 모르고 테이블에 가져와서 얌전히 앉아서는 설탕을 또 넣는 짓


Description errors : 잘못된 사물을 가지고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경우.
예> 사탕을 까서 껍질을 먹고 사탕을 버리는 짓, 바디클렌져가 아닌 샴푸를 샤워타올에 짜는 짓거리.


Data-driven errors : 들어오는 감각정보가 의도행동을 압도하는 경우.
즉, 주위영향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집중을 못하고 다른 일에 휘말려버리는 것.
예> 음식점 딱지를 보고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는데 옆에서 친구가 다른 전화번호를 떠들어대면 그 번호랑 섞어 누르는 짓, 깜지를 쓰며 TV를 보다가 TV에서 나오는 소리를 적는 것.


Associative-activation errors : 강한 연합(학습된)이 상황에 부적절한 자동화 루틴을 불러일으키는 경우
달리 말해 익숙한 상황이 부르는 자동화된 반응이다.
예> 군기 바짝든 휴가나온 군바리를 툭 건드렸는데 “이병! 이훈재!” 하는 거.


Loss-of-activation errors : 자동화 루틴의 불완전한 활성화.
늘 하던 행동이 갑자기 막히는 일.
예> 냉장고 문을 열고 그저 멍-  하니 서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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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실수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의식 수준에서 범하는 잘못은 자세히 알고 있어도 쉽게 피할 수가 없다. 인간의 정보처리기제란 복잡할진 몰라도 생각보다 보잘 것 없는, 결점 투성일 뿐이다. 그리고 인지과학은 여기서 실용성을 한껏 발휘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얼척없는 잘못에 좌절하지도, 하늘을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의 특성을 간파하고, 이에 맞추어 잘못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로 인간을 둘러싼 시스템/인공물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다. 예를들면 장병들이 애용하는 저속(!)열차-KTX-에도 나름 세심한 배려가 숨어있다. 고속열차의 운전시스템에서, 처음에는 운전자가 열차의 속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페달을 밟고 있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이 경우 페달 위에 적당히 무거운 걸 올려놓고 딴 짓을 해도 무방하므로 급박스런 상황에 대처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페달을 밟았다 떼었다를 반복하도록 했다. 그랬더니 초기에는 운전자가 꽤 집중력을 보였지만 역시 얼마지나지 않아 페달을 꾸준히 밟아주는 게 자동처리단계로 이행하여, 졸면서도 운전이 가능했다. 마침내 프로그램에 의해 불규칙하게 통보되는 신호에 맞춰 페달을 밟거나 버튼을 누르게 하는, 흡사 비트에 맞추어 드럼 연주를 하는 것과 같은 방법이 고안되어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이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 우리는 인간에 대해 더 많이, 더 자세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애꿎은 사람이나 운명을 탓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 그리고 이는 비단 인지과학 전문연구자들의 과제만이 아니다.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HCI)을 향상시키기 위해 좋은 User Interface를 개발하는 데 벌써 오래전부터 “학제적”인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어딜가나 유행했던 “학제적 연구”, “연계 전공”이란 말은 소속감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의 표현일 뿐이다. 문헌정보학을 하는 사람이 더 좋은 검색엔진을 개발해내고, 국문학자가 문자/음성인식 연구에 참여하고, 시각디자인 전공자가 뇌과학 프로젝트에 일원이 되는 걸 두고 다재다능하다 감탄하기보다는 차라리 자기 전공의 최전방에서 분투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요컨대 이제는 경계가 허물어진 세상이다.(관련링크:박진우님 글) 전공학문의 역사를 꿰뚫고 전체 그림을 조망하는 힘이 다소 약해져가는 대신 소재나 주제 중심의 무차별적 결합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요컨대, 샴푸통과 린스통과 바디클렌져통은 같은 브랜드라는 통일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사용자가 구분하기 쉽게 디자인될 수 있다.(제발!) 언어학자는 통사론을 지루하다 느끼는 이들에게 명료하고 정확한 문장을 통해 오독(誤讀)을 줄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 문체에 따라 읽고 듣는 사람의 판단력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도 인간을 위한 중요한 연구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이러한즉 지극히 평범한 내가, 일상에서 노력을 기울일만한 것도 도처에 널려있는 셈이다. 열쇠에 눈에 잘 띄는 열쇠고리를 달아, 출입시 동선을 고려하여 적절한 곳에 걸어두도록 하면 “열쇠”와 관련된 실수를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고, 쓸데없이 솟아 난 문턱을 없애버린다면 그 위에 올라간다고 나무라는 할머니의 잔소리를 피할 수 있을 뿐더러, 단지 TV를 보며 밥을 먹으려고 밥상을 들고오다 문턱에 걸려 넘어지는 동생의 실수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조심하란 말 한마디가 아무리 허접해보일지라도, 인간의 주의(attention)를 환기시켜 많은 실수를 줄여주는 좋은 방법이 된다.  (관련링크:실수하지 않는 방법에 관한 댓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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