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082003
 

[사실을 인정하는 리더]


[리더십이론] – 영화 Bicentennial Man 에 대한 쪽글


2003-11-09, 0310331 이훈재


지도교수 : 김형철

역사적으로, 리더가 새로운 패러다임이나 원칙을 앞세워 어려운 사회 개혁이나 혁명을 이끈 사례가 많다. 리더는 어떻게 해서, 그때까지는 현실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그러한 새로움에 바탕을 둔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대답은 여러 개가 될 수 있다. ‘용감했다, 결단력, 추진력이 있었다. 치밀했다.’ 등등. 하지만 나는 그 무엇보다도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다윈과 같은 과학자들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실’은 분명 ‘사실’로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 들 과학자들의 신념에 따른 행동은 그렇게 ‘사실’을 받아들일 줄 아는 지적 정직성과 공정성 때문에 가능했다. 리더가 바보, 어린애가 아닌데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리가 없다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여전히 사실을 그대로 보지 않고 기존의 ‘가치’의 틀에서 믿을 수 없는 것 내지 비정상적인 예외 결과로 밖에 보지 않는 리더들이 얼마든지 있다.


영화의 상황도 이와 유사하다. 그동안의 수많은 인문과학-자연과학 의 연구에 의해 밝혀진 인간임을 규정하는, 인간만의 특성들을 로봇에서 인간으로 전환을 시도한 마틴이 이미 지니고 있다. 그러면 그를 인간으로 인정해주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치밀한 논의에 앞서 ‘하나님이 내려주신 절대 만들 수 없는 고귀한 인간 생명, 순수’ 와 같은 편견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리더는 그 사회의 가치나 문화를 인정하고 감안한 판단을 내려야한다. 그러나 이 경우 마틴이 인간이라는 사실 그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고, 그가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한 뒤에는 그에 상응하는 권리와 의무를 지게 만드는 것이 합당하다. 기존 가치에 얽매여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당장은 사회 안정을 유지할 수 있지만 훗날 더 많은 ‘사실’의 파도에 휩쓸려 사회는 불안을 넘어서 뿌리부터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인간만이……’ 는 아직도 우리들 대부분이 지키고 있는 하나의 주요 관점이다. 인간의 이성이란 것도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 유일무이하게 있는 것이 아니며, 결국 모두 생물학적으로 생겨난 것이라는 입장도 있다. 리더는 과학 기술에 유식해야 한다고 했던가? 나는 단지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 것들을 사실로 인정하자는 말은 아니다. 또 ‘가치’를 버린 채 ‘사실’만으로 세상을 재단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이 믿고 있는 사실 역시 하나의 관점에 불과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서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리더의 유연한 판단은 여기에서 가능하다고 본다.


영화 속의 마틴은 분명히 보통 ‘사람’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떤 특성의 ‘사람’으로서, 현재는 분명한 ‘사람’으로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이다. 시대를 선도하여 사람들의 굳은 편견을 녹일 수 있는 재판장의 현명한 판단이 요구된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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