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012007
 


마침내 개강이다.
비록 내일 수업은 1개 밖에 없지만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 아니 일부러 잠을 청하지 않는다.
오늘은 그냥 잠들고 싶지 않다. 무언가 새로운 각오를 해야만 할 것 같다는 압박에 짓눌린다.
미리 준비했으면 피해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걱정거리들이 많다. 그렇지만 이렇게 눈 앞에 닥쳤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 그 전까지는 제껴버릴 수 있으니까.

최근의 자취생활은 인생 최저의 삶의 질과 찌질함이었다. 극도의 우울함이 무엇인지, 진짜 혼자라는 게 어떤 느낌인지, 스스로와의 약속을 어떻게 쉽게 져버릴 수 있는지. 이제는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다. 밥을 꼬박꼬박 챙겨먹던 내가 한 끼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기도 했고, 괜히 나 스스로 그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았으면서 종일 집 밖에 나가지 않으며 우울해하기도 했다. 모든 게 다 귀찮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 알겠다. 내겐 늘 모든 것이 흥미로웠고 관심의 대상이기만 했다. 그것이 나를 피곤하게 만들고 망쳤던 적이 많았지만 이제는 정확히 반대편에 서 있다.

2년은 긴 시간이다. 그간 나는 참 많은 사람을 새로 만났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서 사라졌다, 소리없이 참 많이. 다들 변했고 나도 분명 변했으리라. 서로를 잊고, 잊혀져간다. 어쩌면 그것을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보다. 누구보다도 이성적인 나이건만, 이상적이고 소년스러운 것도 역시 나라는 걸 안다, 그렇지만 아는 걸로 모든 것이 끝나진 않는다.

요즘은 타인의 시선에 부쩍이나 신경이 쓰인다. 불쌍해보이지 않을까. 없어보이지 않을까. 촌스럽고 늙어 보이지 않을까. 예전에도 남들이야 못 느낄지 모르겠지만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는데. 지금처럼 패배적이고 회의적으로 다른 사람의 스타일을 좇지는 않았다.

요즘은 타인의 성공에 부쩍이나 관심과 질투가 생긴다.  와. 쟤가 저렇게 됐구나. 나는 지금 뭐하고 있나. 돈도 없고 마음도 가난한 것 같아. 쟤는 저렇게 윤택하게 사는데. 나도 갖고 싶다. 나도 하고 싶다. 나도 가고 싶고 나도 먹고 싶다.  독불장군으로, 피 토하는 열정으로 내 멋대로의 하루하루를 채워가던 내가 이렇게 돌아오지 않는 영양가 없는 메아리에 매달리고 있다니 한심하다.

이런 걸 두고 혹자는 이제 철이 좀 들었다고 말한다.

글쎄 나도 나쁘게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갈 곳 없는 나에게, 나는 차마 모질게 굴지 못한다. 학부생 주제에 연구한다고 깝치고 논문 쓰고, 돈지랄하고, 사랑이고 이별이고 한없이 만끽하던 쾌도난마의 이훈재도 나이지만, 지금 새내기보다 못한 소심함으로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과외를 구하려고 발버둥치는 폭삭 삭아버린 얼굴의 이훈재도 역시 나 란 말이다.

나를 돌아보며 궁상을 떨 여유도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란 걸 알고 있다. 바쁘게 하루하루를 채워가다보면 자기가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른채 그저 “빡시게” 라는 구호 아래 몸을 맡기는 게 마음이 편할 수도 있겠다. 그치만 바보같은 나는 이제 그렇게 하질 못할 거 같다.

나는 끊임없이 뒤를 돌아볼 것이고, 주위를 둘러볼 것이다. 바보같이.

덧.

그렇지만 바보같이. 정말 바보같게도. 이런 내가 조금씩 조금씩 내 삶과 세상에 대한 통제감을 되찾아 갈 것이다.
정신없이 벌려만 놓은,  전공 학업과 웹 사업과 금전과 커뮤니티와 독서와 운동 등 이 모든 것들에 조금씩 집중력을 되찾을 것이고 좋은 성과를 거두리라. 꼭.

일단 학교는 부딪히는거다.
과외를 빨리 구하고
apmap 도 3월 중으로 어서 마감질해서 서비스 런칭하고
운동이나 공부는 꾸준함이 생명이니까 특유의 성실함을 발휘해야할것 같고
밥 챙겨먹는건 본능에 충실하되 조금만 부지런해지도록.
쓸데없이 영양가없이 이상한 여자들한테 찝적거리지 말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할것
연애는 보류. 연애를 하기 위해 사람을 찾지 말자. 물론 좋은 사람이 있다면 지혜롭게 다가가자.
금욕주의.
배려. 너그러움.
여유
계획
돋움 아 돋움 곧 총회네.
새학기준비물

  4 Responses to “개강 전야(前夜), 복학생은 잠이 오질 않아.”

  1. ‘복학생의 비애’라는 태그가 눈에 들어와서 읽었는데.
    왠지 과거의 언젠가 제가 적었다고 해도 믿을 것 같은 글이군요.
    가끔 몰래 들르고 이렇게 뜬금없이 뜬금없는 시간에 흔적을 남겨봅니다.
    잘지내고 계시죠?

    • :-) 가끔씩 이렇게 들러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블로그가 워낙 인기가 없는 곳인데.. 네. 저는 근 한 달의 여행을 마치고 이제 귀국일정을 잡고 있어요^^ 잘 지내시죠?

  2. 잘지낸다는 말이. 참 어렵게 느껴지는 요즘이예요. =) 자꾸 힘이드네요.
    여행이라. 몹시 부럽네요. 요즘들어 어디론가 참 떠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고 있어요.
    지금쯤 돌아와 계시려나 모르겠군요. ㅎㅎ

    • 그러게요… 사적 문제로든 나라 전체의 문제로든 요즘 제 친구들도 “한국에 돌아오면 넌 죽었어! ” 식의 엄포를 놓고 있어요… 저도 이제 진짜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을하니 싱숭생숭하고요… 다음주에 귀국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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