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원주민과 100도씨. 최규석의 단행본을 연거푸 두 권이나 읽었다. 둘리 원작 20주년을 기념하며  2003 공룡둘리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 가 나온 뒤 벌써 7년여가 흘렀다. 당시 넷심(마치 民心처럼)의 큰 중심축이었던 딴지일보를 통해 이 작품이 소개되고 일파만파 '펌질'이 되던 때가 기억난다. 일요일마다 아기공룡둘리를 보며 자랐던 나도 소문을 듣고서 이 슬픈 오마쥬를 봤었다. 귀여운 캐릭터들이 주었던 어린시절의 웃음을 뒤덮는 암담한 현실 묘사에 나는 온 몸의 털을 쭈뼛거리며 소름이 돋았다.  대학원에 입학한 뒤, 우연히 선배의 책꽂이에서 발견한 "습지생태보고서" 는 잊고 있던 최규석의 만화였다. 작가 자신을 포함한 캐릭터 하나하나가 비록 혼자 살지만 역시 자취를 하고 있는 내 마음을 후벼팠다. 특히 늘 똑똑한 듯 합리적으로 상황을 정리하는 가상의 캐릭터 녹용이가 인상적이다. 속물적이지만 제 꾀에 당하고 있는 어쩔 수 없는 녹용이의 모습에 최규석도, 나의 내면의 목소리도 비추어 보게 된다는 점이 인상깊다. (연구실에서 이 선배가 정한 캐릭터도 녹용이다.)

  만화를 잘 안 보는 나도 자꾸 만나게 될 수 밖에 없게 되는 만화라면, 최규석은 세상이 말하는 소위 성공한 만화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에게 이런 타이틀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도 그가 그런 성공을 바라보며 살 것 같지도 않고, 또 그렇다고 그가 부와 명예를 누릴 만큼 한국만화계가 좋은 형편이 아니라고도 한다. 꼭 그런 성공이 아니더라도 무엇보다 그가 스스로 마음먹고 그릴 중장편을 기대하는 의미에서, 그에 대한 찬사는 조금 미루고만 싶다. 차갑게 말해 데뷔작과 대회출전작 등을 모아담은 단편집 하나와 자신의 청춘일기를 옮겨담은 습지생태보고서, 가족사를 기록한 대한민국 원주민, 민주화 교육서적으로서 100도씨. 그의 재치와 기지가 온전히 담긴 큰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그래서 최규석이 어떻게 읽히는지가 문득 궁금하다. 사람들은 흔히 최규석의 강점이 그가 그려내는 가난과 궁핍에 비하여 감상주의로 흐르지 않고 절제의 균형을 뽐내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는 담담하고 여유있어 보이고, 유머와 위트도 결코 잃지 않는다. 그의 이런 시선은, 스스로 고백하듯 최규석 본인 나이 또래의 주류의 삶을 '모른 채로' 어려서 대한민국 원주민의 삶을 체험했기에 가질 수 있는 독특함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런 위치의 자신이 자기 자식을 마주하게 될 장면을 상상하며 다음과 같이 걱정한다.

"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없지만 내 마음 깊숙한 곳에는, 도시에서 태어나 유치원이나 피아노학원을 다녔고 초등학교 때 소풍을 엄마와 함께 가봤거나 생일파티라는 걸 해본 사람들에 대한 피해의식, 분노, 경멸, 조소 등이 한데 뭉쳐진 자그마한 덩어리가 있다. 부모님이 종종 결혼을 재촉하는 요즘 이전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어쩌면 존재하게 될지도 모를 내 자식을 상상하게 된다.

  상상하다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 아이의 부모는 모두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고 어버지는 화려하거나 부유하지는 않아도 가끔 신문에 얼굴을 들이밀기도 하는 나름 예술가요 아버지의 친구라는 사람들 중에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인사들이 섞여 있어 그 아이는 그들을 삼촌이라 부르며 따르기도 할 것이다. 엄마가 할머니라 놀림 받지도 않을 것이고 친구들에게 제 부모나 집을 들킬까봐 숨죽일 일도 없을 것이고 부모는 학교 선생님과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할 것이며 어쩌면 그 교사는 제 아비의 만화를 인상 깊게 본 기억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간혹 아버지를 선생님 혹은 작가님 드물게는 화백님이라 부르는 번듯하게 입은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들 것이고 이런저런 행사에 엄마아빠 손을 잡고 참가하기도 하리라. 집에는 책도 있고 차도 있고 저만을 위한 방도 있으리라.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지도 않을 것이고 고함을 치지도 술에 절어 살지도 않을 것이고 피를 묻히고 돌아오는 일도 없어서 아이는 아버지의 귀가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 아이의 환경이 부러운 것도 아니요, 고통 없는 인생이 없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니다. 다만 그 아이가 제 환경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 것으로 여기는, 그것이 세상의 원래 모습이라 생각하는, 타인의 물리적 비참함에 눈물을 흘릴 줄은 알아도 제 몸으로 느껴보지는 못한 해맑은 눈으로 지어 보일 그 웃음을 온전히 마주볼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

  나는 이 지점에 최규석이 읽히는 지점과 고민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미 100도씨라는 6월항쟁 기록만화를 중고생들에게 선보였다. 그리고 이 90년대생의 눈에 만화는 어쩌면 그저 교과서나 학습서처럼만 느껴질 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정말 모르는 일이다. 그가 몇 장 덧붙인 정치참여교육 부록처럼 요즘 아이들은 때로 천진난만하게 광장에 모이기도 한다. 정말 문제는 이들의 눈에 만화는 그런 옛날 이야기로만 느껴질 것이라고 믿는 나 자신, 작가 자신의 모습이다. 최규석은 부모와 형제자매에 빚진 마음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작가의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데, 작품이 갖는 독특한 아우라가 있다. 도시화, 산업화의 역군이었던 부모 밑에서 도시생활을 하며 자라나 지금도 도시에 살지만 여전히 이 사회시스템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채워가는 소시민의 입장에서..... 수긍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힘, 읽는 이로 하여금 과거를 기억할 역사적 사명이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 딱 이 정도에 최규석이 놓여있는 게 아닐까.

  한 사람의 독립적인 인간은 제 삶의 역사에 대한 집요한 조사와 성찰에 의해 점차 완성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때 중요한 것이 담담하고 의연한 태도가 아닐까 한다. 부유한 가정에서 부족함 하나 없이 구김없이 자라났다는 것이 자랑이 아닌 것 처럼 가난과 궁핍함도 분명 자랑이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때때로 왜 나는 간지나게 좀더 가난하게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을까 하는 철없는 생각을 품어본 적이 있다. 여유롭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쪼들리지도 않았던 내 삶은 부모님의 무한 희생에 기댄 점이 크다는 것을 안다. 1학년 입학등록금부터 마련하기에 바빴던 친구 부모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런 식의 나 또한 딱히 잘 난 것도 없으면서 어설피 나보다 '못한' 친구들을 배려해야한다는 도덕적 강박은 꽤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고, 지금도 나는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스스로 느끼기에 정말 우스운 일 중에 하나다.

  제 삶의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냐는 말에 대한 주변의 생각들을 종합해보면, 어떤 친구는 그건 니가 출세라도 하고 나서야 자서전적으로 너의 불우한 환경과 그걸 극복한 아름다운 얘기를 정리하는 것 같은 거겠지. 하는 냉소적인 반응과.., 너 정도면 얘깃거리가 없어 뭐 특별할 게 없는 건데. 평범함의 범주에 있지.. 하는 무사안일함 정도로 요약된다. 나는 이런게 조금 더 웃긴 것 같다. 내 삶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나는 1학년 사학입문 강의시간에 과제로 이런 일을 글로 남겨본 적이 있지만. 대개는 부모님과 마주한 밥상머리에서, 명절 때 모인 가족친지들의 옛날 이야기와 그들 현재 삶의 모습에서 나의 과거 조각을 하나씩 하나씩 모으고 곱씹게 되기 때문이다.

2010/02/14 16:40 2010/02/1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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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삽질/책 Posted at 2010/01/24 23:11

  우리 출판계에서 공지영처럼 많이 파는 사람 찾기도 힘들다. 또 그만큼 많이 까인다. 지인 중 하나는 베스트셀러 작가 치곤 글을 너무 못 쓰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하지만 내가 문학에 영 젬병이라서 잘 모르겠다. 기억에 한국 문학작품들을 늘 열심히 읽던 김현동의 평을 듣고 싶다. (김현동이 보고 싶다.) 감상평이 아니라 그냥 문장력이나 문학성에 대한 촌평같은 게 궁금하달까. 사실 나는 그냥 많이 팔려서 그래서 좀 까고 있다. 물론 "공지영 까지 마라. 우리나라에서 결혼 3번, 이혼 3번 하고 이렇게 멋있게 살고 있으면 평생까임방지권 정도는 줘야되는 것 아니냐." 는 말에는 반쯤 동의한다. 마누라가 집에서 공지영 책보는 게 싫다는 가부장적 남편 (어쩌면 이혼 당할까 두려워하는) 들이 제법 된다는 소문도 있다. 그네들에게는 그래도 전혜린보다는 낫지 않냐는 게 위로처럼 들리려나 비아냥으로 들리려나 알 수 없다.

  돈이 많다고 까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지, 비슷한 맥락에서 책이 잘 팔린다고 욕하면 되나?  그런데 타겟을 미묘하게 조정하여, 공지영에서 공지영의 책만 잘 팔리는 세상을 욕하는 것이라면 보다 옳아보인다. 몇 권 안 읽었지만 공지영은 그래도 스스로 삶을 살면서 보고 느낀 만큼, 딱 그만큼을 솔직하고 쉬운 이야기로 풀어낸다. 도무지 잘 읽히지 않는 어려운 글 -- 대개는 작가가 그 거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역량이 안 됨에도 억지로 글을 짜내기 때문인 듯 하다-- , 괜히 어설프게 파격을 시도하는 글들과 비교하면,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책을 내놓기만 하면 몇십만부, 통산 출판한 모든 책의 판매량이 근 1000만부에 달한다고 하니, 평단에게 섭섭할지는 몰라도 그녀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굉장히 후한 셈이다.

  공지영 이름만으로도 책을 팔 수 있을 정도라고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큰 딸 위녕 (위? 아마도 위기철과 낳은 딸인듯) 에게 쓴 편지를 묶은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는 제목부터 딱 잘 팔리는 카피다. 비슷한 걸로 류시화의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희경의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 등이 떠오른다. 예전에는 가지각색의 사랑 얘기를 쿨하게 또는 무덤덤하게 보여주던 일본 편의점 소설들이 상종가였다면 요즘은 치열하고 뜨겁게 현재를 살고 사랑하라는 일침들이 인기를 끄는 양상이다. 이러나저라나 20~30대 여성에게는 '사랑'이 들어가면 잘 팔리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부모-자식 얘기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등과 함께 여러 버전으로 나와 잘 팔리는 모양이다.

  한편으로 '88만원 세대' 라는 말로 부각됐던 세대론이 책 시장에도 어느 정도는 통한다는 생각을 한다. 취업도 연애도 잘 안 되는 힘겨운 젊음들에게, 386 작가들, 특히 잘 나가는 여성 작가들이 마구 던져대는 삶의 지혜와 구호들은 정말 간지나게 들린다. 이들이 입을모아 강조하는 카르페디엠, 방황할 지언정 상처받을 지언정 겁먹고 도망치지 말라는 당부들은,  각박한 현실에 위로가 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다시금 희망을 가져보는 계기가 되기도 할 것이다.
 
  "위녕, 힘들다고 했지? 그래 힘들지. 누구나 그 시절을 다 힘들게 보냈어. 그런데 너의 힘듦은 진정 어디서 오니? 그래 이왕 힘든 거, 힘든 시간을 나를 분발시키고 나를 향상시키는 기회로 삼아 보면 어떨까? 미안하다. 그것이 더 힘든 걸 알면서도 또 이렇게 지당한 소리를 늘어놓게 되었구나. 그러나 위녕, 사실을 말하면 엄마는 네가 이 시기를 좀 잘못 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도 돼. 너는 아직 젊고 또 많은 기회가 있을 거야. 이 한해로 너의 모든 것을 판단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도 안 되고...사랑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엄마의 미안한 사랑을 보낸다." (공지영,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사랑할 것이다, p. 110)

  고3인 딸에게 이런 편지를 적는 엄마의 마음은 분명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하지만 냉소적으로 바라보면 그만큼 부담스러운 관심이자 부모, 인생의 선배로서의 과한 자기현시욕이 되기 쉽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다, 실패를 많이 해도 괜찮아.  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엄마 그래도 상처 안 받고 잘 되는 게 더 좋은 거 아니냐?" 고 묻는 딸 위녕의 질문은 그래서 영리하고 이런 문제를 잘 드러내준다. 실패를 각오하고 뻔히 보이는 불구덩이에 뛰어들라는 어른들이 어찌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자꾸 실패하고 상처받아도 그걸 밑거름으로 잘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은, 적어도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하지 않고, 젊은 욕심과 어리석음, 멋있게 포장해야 용기와 패기로 나도 모르게 무모한 일들을 벌여참담한 실패를 맛보고 그제서야 깨닫게 되는 고생한 뒤의 훈장과도 같은 게 아닐까. 망할 줄을 모르고 제 뜻대로 한번 확신에 차서 도박을 걸어보고 실패를 맛 보는 것과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엄마는 겁먹지 말랬으니까 애써 두려움을 참아보며 그 길을 걷는 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아래는 공지영의 딸 위녕이, 고등학생 시절 미니홈피에 적었던 글이라고 한다.


이런 남자

첫번째. 커피와 차를 즐기는 남자가 좋다.
단, 커피는 블랙커피를 마셔야한다. 설탕이 들어간 단 커피라던가, 프림이 들어가 콜레스테롤이 높은 커피를 마시는 남자는 싫다. 차는 향이 좋고 투명한 차로. 과일차도 좋지만 허브류의 차가 좋다. 단순한 녹차도 좋지만 민트티나 국화차를 마시는 남자가 좋다.

두번째. 책을 읽는 남자가 좋다.
단, 인터넷 소설은 당연히 안된다. 싸구려 연애소설도 안된다. 남들이 좋다니까 읽는 소설도 안된다. 자신만의 문학관을 가진 남자가 좋다. 신을 믿지 않아도 성경을 한번쯤 읽어본 남자가 좋다. (성경은 존재하는 최고의 문학작품이다) 진지한 작품을 읽으며 좋은 귀절에는 색연필로 밑줄을 그어놓는 남자가 좋다.

세번째. 글을 쓰는 남자가 좋다.
단, 욕설이 들어간 글은 사절이다. 잘난척 하기 위해 앞뒤도 안맞게 유명한 말들만 조합하는 남자는 더욱 질색이다. 조용하고 나긋한 글을 쓰는 남자가 좋다. 시가 아니라도 좋으니 시적인 글을 쓰는 남자가 좋다.

네번째. 담배피는 남자가 좋다.
단, 지나친 골초는 싫다. 입이나 몸에서 담배냄새가 확확 끼치는 남자도 싫다. 하루에 반갑정도만. 엑스포 피는 남자도 사절이다. (엑스포 향기는 최악이다) 담배를 뻑뻑 빠는 남자도 안된다. 여유로운 담배를 즐기는 남자가 좋다. 연기로 도넛도 만들줄 안다면 더 좋겠지.

다섯번째. 맥주와 와인을 즐기는 남자가 좋다.
단, 소주는 절대 안된다. 소주의 맛을 아는 사람은 인생의 쓴 맛을 아는 사람이다. 그 쓴맛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은 안된다. 가벼운 맥주나, 식사 전 분위기 있는 와인을 마시는 남자가 좋다. 와인의 향을 느낄줄 아는 남자가 좋다.

여섯번째. 신을 믿는 남자가 좋다.
단, 사이비 종교는 안된다. 자기 종교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않고 겉멋으로 신을 믿는 사람도 질색이다. 모든 종교의 목표인 '선'을 실천하는 남자가 좋다.

일곱번째. 센스있는 남자가 좋다.
단, 눈치없는 남자는 센스없는 남자보다 더 싫다. 옷입는 센스는 봐줄수 있다. (내가 골라주면 되니까) 두뇌의 순발력이 있는 남자가 좋다. 재치있는 말로 나를 즐겁게 해주는 남자가 좋다.

여덞번째. 진보적인 남자가 좋다.
단, 보수적인 남자는 위의 모든 조건을 갖춰도 싫다. 정치적으로, 사상적으로 진보적인 남자가 좋다. 진보적인 사람만이 진정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할수 있다. 그래 아무래도 좋으니 제발 한나라당이 좋다고만 하지 마라. 여자가~ 로 시작하는 말도 하지 마라.

아홉번째. 서울 남자가 좋다.
단, 그냥 서울남자가 제일 무난하다는 것 뿐이다. 솔직히 상관 없다. 하지만 서울남자가 제일 무난하다. 그래, 전라도 사람도 좋고, 충청도 강원도 다 좋은데 경상도 사람은 아니면 좋겠다. 경상도 남자는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보수적이고 (다 그렇다는건 아니지만) 꽉 막혀있다. 경상도 사람들은 진보적인 사람조차 깊은 내면에 막혀있는 무언가가 있다. 그게 날 답답하게 한다.

열번째. 내 남자가 좋다.
단, 너무 나한테만 매달리는 남자는 매력없다. 나에게 적당히 매달리는 남자가 좋다. 바람피는 남자는 트럭 열대로 가져다 줘도 사양이다. 나를 위해 해주는 무언가가 있는 남자가 좋다.



------위녕은 어떤 여자, 어떤 사람일까.


덧.

  공지영의 옛날 작품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인간에 대한 예의 이런 책들과 비교해 볼 때  공지영이 확실히 이야깃거리가 떨어져보인다. 눈물 짜내려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나 사랑후에 오는 것들 (흔히 냉정과 열정사이 재탕간지라고들하는) 등 내가 본 최근작들도 다 실망스러웠다. 그런 의미에서 공지영은 정말 재능이 뛰어난 작가는 아닐 듯 하다. 작가적 상상력이나 여행, 독서, 견문 등을 통한 2차 체험, 세상에 대한 놀라운 관찰과 통찰력으로 새로운 작품을 내놓기에는 역량부족일지도 모른다. 자기 삶과 주변의 얘기를 재주껏 늘어놓다보니, 즐거운 나의 집 이라는 소설은  전 남편이 짜증나서 태클도 걸었다. 하긴 괜히 사람들이 개인사를 들먹이는게 아니긴 하겠지.   이렇게 보면 결국 공지영의 '르포'식 소설 '도가니'가  우행시 때와 마찬가지로 계속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공지영은 계속 험하게 까이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도가니도 영화로 만든다는데.


참고 링크

http://photohistory.tistory.com/4140
http://www.ablenews.co.kr/News/NewsContent.aspx?CategoryCode=0006&NewsCode=000620090804015038171875


2010/01/24 23:11 2010/01/24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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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penID Logo http://starting90.idtail.com/ [2010/01/27 16:50]  수정/삭제  댓글쓰기

    굿굿 // 165.132.110.***

    • ㅈㅡㄹㅍㅔㅇㅣㄴ [2010/01/27 23:20]  수정/삭제

      ㅎㅎ초딩^^ // 121.16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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